[스토리&]윤윤수 휠라-아쿠쉬네트 회장의 끝없는 도전

동아일보

입력 2012-11-08 03:00 수정 2013-01-07 20:07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伊 휠라 본사 인수→골프용품 세계 1위 美아쿠쉬네트 인수…
“타이틀리스트 골프채, 주말골퍼들 치기 쉽게 만들 것”


지난해 8월 윤윤수 휠라 회장이 인수한 글로벌 1위 골프용품업체인 미국 아쿠쉬네트가 보유한 타이틀리스트 골프용품(아래 사진). 2일 서울 서초동 휠라 본사에서 만난 윤 회장이 아쿠쉬네트 인수 후 향후 경영전략을 밝히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윤윤수 휠라·아쿠쉬네트 회장(67)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본사 집무실 책상 옆에는 기내 사이즈의 여행용 캐리어가 늘 놓여 있다. 지난해 8월 글로벌 1위 골프용품업체인 미국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뒤 미국과 주요 시장인 중국 등을 정신없이 다니는 윤 회장이 짐 꾸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아예 필요한 서류를 한데 담아 놓은 것이다.

2일 휠라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윤 회장은 명함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서초동 주소가 적힌 휠라코리아 명함, 나머지 하나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페어헤이븐 주소의 아쿠쉬네트컴퍼니 명함이었다. 한국지사에 불과했던 ‘휠라코리아’가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집어삼켜 2007년 화제의 중심이 됐던 그는 아쿠쉬네트 인수로 경영자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22일에는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이 매년 국가별로 한 명씩 뽑아 시상하는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수상한다.


○ 아시아 공략 위해 ‘아시아형 제품’ 개발


1974년 사업을 시작한 윤 회장은 지금까지 국적기인 대한항공만 1300여 번 타는 글로벌 경영을 펼쳐왔다. 휠라에 이어 아쿠쉬네트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출장 빈도는 두 배로 늘었다. 그는 “한 달간 미국에 체류하다 중국 베이징 출장을 다녀온 지 이틀밖에 안 됐다”며 “장거리 출장이 늘어나면서 시차적응 때문에 항상 ‘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점만 빼놓고는 인수 이후 회사가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어 신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출장 목적은 아쿠쉬네트가 보유한 타이틀리스트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를 낼 곳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접대식 선물문화가 강한 중국에선 관공서가 집중된 베이징이 명품 및 유명 글로벌 브랜드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로 꼽힌다.

타이틀리스트 플래그십스토어는 3년 내 중국에서 200개 이상의 매장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모델하우스’다. 이곳을 통해 소비자뿐 아니라 대리점 사업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타이틀리스트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뜻이다.

골프공과 클럽으로 유명한 타이틀리스트 브랜드의 의류 부문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한편 고급 취향을 가진 아시아의 골프 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타이틀리스트 골프의류는 내년 3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한국 같은 좁은 땅에선 M&A가 필수적, 풋조이-타이틀리스트 고유 DNA 유지” ▼

타이틀리스트 골프채는 ‘일반인이 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다. 또 체구가 큰 서양인에게 맞게 설계돼 동양인에게는 조금 무겁다는 평가도 받았다. 윤 회장은 인수 직후부터 아시아인의 몸에 맞는 클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올봄 모습을 드러낸 신제품은 특히 일본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VG3 프리미엄 클럽’ 시리즈는 골프공이 맞는 중심 부위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의 면적을 넓혀 관용성을 높이고 무게를 줄였다.


○ 경영엔 ‘한국식’ 아닌 ‘글로벌식’ 도입

지난달 17, 18일 미국 뉴욕에서 휠라의 대륙별 지사 대표와 실무진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협업회의(GCM)가 열렸다. 마케팅 전략과 신상품 개발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로 휠라코리아가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을 따낸 2007년부터 매년 2회 열리고 있다. 휠라코리아 제공
가격에 민감한 미국 시장에선 골프화로 유명한 ‘풋조이’ 브랜드의 골프웨어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평생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하느라 영어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영어가 저절로 늘었다”는 윤 회장은 현지인 수준의 영어 발음을 자랑한다. 그는 풋조이의 미국 내 판매성적을 묻자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로 “위 아 해피(We're happy)”라고 답했다.

한국인들은 유명 미국 기업을 한국 자본이 인수한 것을 놓고 “타이틀리스트가 한국 브랜드가 됐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오히려 이런 생각을 글로벌 경영의 걸림돌로 생각했다. 미국의 정서와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한 브랜드는 철저히 그 DNA를 살릴 수 있게 해야 명품이 된다는 것이다.

아쿠쉬네트 본사에 가면 윤 회장은 직원식당에서 미국인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문화를 융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인수합병(M&A)을 잘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특히 영어 구사력을 강조하고 있다. 협상 대상자나 직원들에게 리더의 ‘직접소통 리더십’은 다양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최근 타이틀리스트가 오랫동안 후원해온 세계 랭킹 1위 골프선수 로리 매킬로이(21)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나이키로 메인 후원사를 갈아탄 것은 윤 회장으로선 분명 아쉬운 뉴스였다. 그러나 윤 회장은 “타이틀리스트가 열네 살 때부터 후원했던 ‘특별한’ 선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의 선택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그는 최근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M&A가 활발해지는 데 대해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경제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는 M&A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이미 더 큰 자본력을 가진 중국 업체들이 좋은 매물을 선점하고 있어 국내 기업에 주어진 기회는 길어야 5년”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 휠라, 런던 올림픽으로 ‘뜨다’

묵묵히 스포츠 선수와 행사를 후원해온 그의 뚝심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올해 처음 대한체육회(KOC)의 공식파트너가 된 휠라는 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팀의 공식 스포츠 단복 디자인을 총괄했다. 휠라는 이번 올림픽에 협찬하며 얻은 홍보효과를 3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윤 회장은 “회사 규모에 비해 무리하게 돈을 좀 썼지만 그만큼 휠라에 더없이 좋은 홍보효과를 가져다줬다”고 평가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았던 손연재 선수와 박태환 선수를 모두 휠라가 후원했다. 박 선수는 지난해부터, 손 선수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9년부터 휠라가 후원하고 있다.

휠라코리아는 2007년 이탈리아 회사이던 휠라의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을 인수하며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인수 후 매년 2회 글로벌 협업회의(GCM·Global Collaboration Meeting)를 열고 있다. 전 세계 대륙별 지사와 파트너사 대표, 실무진이 한자리에 모여 마케팅 전략이나 신상품 개발 정보를 공유한다.

제12회 GCM은 10월 17, 18일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27개국에서 온 150여 명의 ‘휠라 가족’과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왔다는 그는 “아쿠쉬네트 인수와 런던 올림픽 등으로 휠라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뿌듯해했다. 이번 GCM의 성과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단기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온 러시아의 한 스포츠 관련 기업이 파격적인 계약기간 연장을 제안해 왔다. 요즘처럼 세계 경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장기 라이선스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휠라라는 브랜드를 믿고 따라가겠다는 의미다.

윤 회장은 경제 상황이 불투명해지며 아웃도어 및 스포츠산업에 대한 전망이 어둡다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특유의 낙관론을 내놓았다. “두 배 어려우면 세 배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