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기업도 못 믿겠다”… ‘케미컬 불신’에 빠진 소비자들
김현수 기자 , 김호경 기자 , 박은서 기자
입력 2017-09-06 03:00 수정 2017-09-06 03:00
살충제 계란 이어 유해 생리대 논란
소비자들이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충제 잔류 계란과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연이어 확산하면서 정부, 시민단체, 기업 누구 하나 믿을 대상이 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이 와중에 생리대 유해성을 둘러싼 정부와 시민단체 간 진실 공방까지 벌어지면서 ‘불신의 악순환’이 사회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20∼30일 생리대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6.8% 줄었다. 반면 화학제품 처리가 적은 면 생리대 등은 50.4% 이상 더 팔렸다. 직장인 이모 씨(36·여)는 “생리대를 안 살 수는 없고, 면이나 컵 생리대는 써보질 않아 두렵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 이후 생활용품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이 높아졌는데도 정부의 위기 대응력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외부 문제 제기→정부의 소극적 대응→또 다른 문제 제기→정부의 전면 조사’라는 틀이 반복되면서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살충제 잔류 계란과 유해 생리대 논란이 커진 과정도 똑같이 닮아 있다.
불신의 덫에 빠진 소비자들은 “안전하다”는 정부의 발표조차 믿지 못하고 있다. 올해 2월 프랑스에서 유해 논란에 휩싸인 P&G의 팸퍼스 기저귀가 대표적이다. 당시 프랑스의 국립 소비자연구소에서 발행하는 ‘6000만 소비자들’이란 잡지가 이 제품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는 일단 팸퍼스 기저귀의 판매를 중단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팸퍼스 제품을 조사한 결과 다이옥신은 검출되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해당 제품 판매를 재개했지만 소비자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국내 A 대형마트에 따르면 이 기저귀의 월 매출은 7개월째 전년 동기 대비 50∼70% 줄었다. A 대형마트 관계자는 “매출 감소폭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논란 이전과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계란, 햄버거 등 먹을거리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살충제 잔류 계란의 경우 정부가 전수조사 후 문제가 없는 계란만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계란 포비아’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17∼23일 계란 매출은 전년 대비 36.0% 감소했다. 8월 24일∼9월 4일 기준으로 비교해도 전년보다 매출이 4.9% 줄었다. 계란은 대체품이 없는데도 회복세가 더디다.
애초 유럽에서 살충제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던 정부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사전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정작 큰 문제는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의 대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이어 “정부는 매번 책임을 회피하면서 미봉책을 내놓다가 크게 터지면 근본적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며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 측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모양새다. 식약처가 4일 여성환경연대의 3월 실험결과를 발표하면서 “신뢰할 수 없다”고 한 데 이어 5일에는 여성환경연대가 반박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를 받아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방출 실험을 진행한 김만구 강원대 과학융합학부 교수는 “시험 방법과 결과에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약처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생리대안전검증위원회’의 자질 문제를 꺼냈다. 식약처 검증위에 분석과학 전문가가 1명뿐이고 나머지는 약품 분석만 해 본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이들이 분석과학 자료를 검증하는 건 난센스”라고까지 했다.
식약처는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식약처 관계자는 “학회에서 추천받은 인물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누가 전문가라는 말이냐”며 “자신이 전문가라고 시험 결과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건 비논리적”이라고 했다. 현재 식약처 검증위원 18명 중 분석과학 전문가는 김 교수 주장대로 박정일 서울대 약대 교수뿐이다. 하지만 표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명승운 경기대 화학과 교수도 각각 한국분석과학회와 환경분석학회가 추천한 인사다.
양측은 모두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눈총을 샀다. 이날 김 교수의 기자회견에서는 유해성분이 검출된 11종의 생리대 중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이 먼저 공개되면서 혼란이 가중됐던 사실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깨끗한나라는 5일 김 교수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늑장 대처로 일관했던 정부도 ‘검증 자격’과 관련한 공격에는 어느 때보다 신속한 자기방어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성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오해와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이 과도한 불신과 공포를 부른다고 지적한다. 류재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화학물질은 자연과 우리 몸속에도 있다. 공기 중에 다이옥신도 있다. 결국 용량, 용법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을 두고 논의해야 하는데 무조건 유해물질이라고 해석하면서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김호경·박은서 기자
소비자들이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충제 잔류 계란과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연이어 확산하면서 정부, 시민단체, 기업 누구 하나 믿을 대상이 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이 와중에 생리대 유해성을 둘러싼 정부와 시민단체 간 진실 공방까지 벌어지면서 ‘불신의 악순환’이 사회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20∼30일 생리대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6.8% 줄었다. 반면 화학제품 처리가 적은 면 생리대 등은 50.4% 이상 더 팔렸다. 직장인 이모 씨(36·여)는 “생리대를 안 살 수는 없고, 면이나 컵 생리대는 써보질 않아 두렵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 이후 생활용품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이 높아졌는데도 정부의 위기 대응력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외부 문제 제기→정부의 소극적 대응→또 다른 문제 제기→정부의 전면 조사’라는 틀이 반복되면서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살충제 잔류 계란과 유해 생리대 논란이 커진 과정도 똑같이 닮아 있다.
불신의 덫에 빠진 소비자들은 “안전하다”는 정부의 발표조차 믿지 못하고 있다. 올해 2월 프랑스에서 유해 논란에 휩싸인 P&G의 팸퍼스 기저귀가 대표적이다. 당시 프랑스의 국립 소비자연구소에서 발행하는 ‘6000만 소비자들’이란 잡지가 이 제품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는 일단 팸퍼스 기저귀의 판매를 중단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팸퍼스 제품을 조사한 결과 다이옥신은 검출되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해당 제품 판매를 재개했지만 소비자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국내 A 대형마트에 따르면 이 기저귀의 월 매출은 7개월째 전년 동기 대비 50∼70% 줄었다. A 대형마트 관계자는 “매출 감소폭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논란 이전과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계란, 햄버거 등 먹을거리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살충제 잔류 계란의 경우 정부가 전수조사 후 문제가 없는 계란만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계란 포비아’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17∼23일 계란 매출은 전년 대비 36.0% 감소했다. 8월 24일∼9월 4일 기준으로 비교해도 전년보다 매출이 4.9% 줄었다. 계란은 대체품이 없는데도 회복세가 더디다.
애초 유럽에서 살충제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던 정부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사전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정작 큰 문제는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의 대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이어 “정부는 매번 책임을 회피하면서 미봉책을 내놓다가 크게 터지면 근본적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며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 측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모양새다. 식약처가 4일 여성환경연대의 3월 실험결과를 발표하면서 “신뢰할 수 없다”고 한 데 이어 5일에는 여성환경연대가 반박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를 받아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방출 실험을 진행한 김만구 강원대 과학융합학부 교수는 “시험 방법과 결과에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약처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생리대안전검증위원회’의 자질 문제를 꺼냈다. 식약처 검증위에 분석과학 전문가가 1명뿐이고 나머지는 약품 분석만 해 본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이들이 분석과학 자료를 검증하는 건 난센스”라고까지 했다.
식약처는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식약처 관계자는 “학회에서 추천받은 인물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누가 전문가라는 말이냐”며 “자신이 전문가라고 시험 결과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건 비논리적”이라고 했다. 현재 식약처 검증위원 18명 중 분석과학 전문가는 김 교수 주장대로 박정일 서울대 약대 교수뿐이다. 하지만 표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명승운 경기대 화학과 교수도 각각 한국분석과학회와 환경분석학회가 추천한 인사다.
양측은 모두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눈총을 샀다. 이날 김 교수의 기자회견에서는 유해성분이 검출된 11종의 생리대 중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이 먼저 공개되면서 혼란이 가중됐던 사실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깨끗한나라는 5일 김 교수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늑장 대처로 일관했던 정부도 ‘검증 자격’과 관련한 공격에는 어느 때보다 신속한 자기방어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성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오해와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이 과도한 불신과 공포를 부른다고 지적한다. 류재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화학물질은 자연과 우리 몸속에도 있다. 공기 중에 다이옥신도 있다. 결국 용량, 용법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을 두고 논의해야 하는데 무조건 유해물질이라고 해석하면서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김호경·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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