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론스타에 3100억원 배상 판정 수용못해”

장은지 기자 , 박종민 기자 , 김도형 기자

입력 2022-09-01 03:00 수정 2022-09-0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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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에 3100억원 배상 판정]론스타, 韓정부 상대 6조원대 소송
ICSID “외환銀 매각지연 일부 책임”
10년만에 ‘청구액 4.6% 배상’ 판정
한동훈 “취소신청 등 적극 후속조치”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2900억 원·31일 환율 종가 1337원 기준)와 이자 약 185억 원 등 약 310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결정이 나왔다. 론스타 측이 청구한 배상액 46억7950만 달러(약 6조3000억 원) 중 4.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국 정부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불복 방침을 밝혔다.

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판정부는 31일 오전 9시경 론스타 측 주장 일부를 인용해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약 2900억 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이 담긴 판정문을 법무부에 송부했다. 또 2011년 12월 3일부터 배상금을 모두 지급하는 날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도 배상하라고 했다. 법무부는 “추정 이자액은 현재 기준으로 약 185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날 판정은 2012년 11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6조 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 나온 것이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이나 정책 때문에 손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핵심 쟁점은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외환은행 매각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매각을 지연시키며 매각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했는지였다. 이에 대해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책임을 모두 인정했다. 한국 정부가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상의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면서도, 동시에 론스타가 유죄 판결을 받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매각이 지연된 책임도 있다고 본 것이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측 50% 과실상계를 인정해 인하된 매각가격의 절반인 2억1650만 달러만 배상금으로 인정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과 부당 과세 등의 쟁점에 대해선 론스타 측 주장이 모두 기각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8월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정부입장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번 중재판정부의 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단 한 푼도 유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로 취소 신청 등 후속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120일 안에 판정에 불복해 취소 신청을 내면 ICSID 내부에 취소위원회가 구성돼 판정 취소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韓, 외환銀 매각승인 지연’만 인정… 론스타 청구액의 4.6% 배상



론스타와 10년 분쟁 판정
“韓, 매각가 내릴때까지 승인 미뤄”… 중재판정부, 공정-공평 위반 판단
주가조작한 론스타도 50% 책임… 배상액, 인하된 가격의 절반으로
‘불공정과세’ 론스타 주장은 기각… “국제기준 부합, 차별대우 아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에 외환은행을 5조9000억 원대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금융당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승인을 지연해 이듬해 매각이 불발됐다고 주장했다. 또 2011∼2012년 하나금융지주와 매각 협상을 할 때도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지연하고 매각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해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 아울러 국세청이 자의적으로 과세해 부당하게 세금을 냈다는 주장도 폈다.
○ ‘외환은행 매각 지연’ 일부 패소
그동안 법조계와 금융계에선 쟁점 중 하나금융에 매각하는 과정이 가장 ‘약한 고리’라는 평가가 나왔는데, 중재판정부도 바로 이 부분에서 한국 정부의 잘못을 인정했다.

중재판정부는 당시 금융위원회가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이는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당시 김승유 회장이 이끌던 하나금융은 2010년 11월 말 4조6888억 원에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론스타에 은행 대주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여러 차례 연기했다. 하나금융은 2011년 7월 인수계약을 연장하면서 인수가격을 4조4059억 원으로 낮췄다. 금융위는 2012년 1월에야 매각을 승인했고 인수 가격은 최종적으로 3조9157억 원으로 결정됐다.

당시 금융권 안팎에선 론스타의 ‘먹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 금융당국이 승인을 늦추면서 매각 가격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재판정부는 인하된 매각 가격인 4억3300만 달러(약 5800억 원) 가운데 론스타 측의 과실을 50% 인정해 배상액을 절반인 2억1650만 달러로 결정했다. 당시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매각 지연에는 론스타에도 절반가량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그 밖에 △론스타가 2007, 2008년 외환은행을 HSBC에 매각하려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시켰고 △국세청이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위반하고 자의적·차별적 과세를 했다는 론스타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재판정부는 HSBC 관련 청구 부분에 대해선 2011년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 발효 이전에 발생한 행위에 관한 것이므로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국세청의 과세 처분에 대해선 “국제기준에 부합하며 자의적·차별적 대우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 중재판정부 첫 구성 9년 만에 판정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론스타는 부실 우려가 불거진 외환은행 지분 51.02%를 1조3834억 원에 사들였는데, 인수 직후부터 론스타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산업자본(비금융 주력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매각 가격을 두고 ‘헐값 매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론스타는 이후 여러 차례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했고 2012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매각 및 배당 이익 약 4조7000억 원을 챙겼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해 손해를 봤다”며 46억7950만 달러(약 6조3000억 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ICSID는 2013년 중재판정부를 구성하고 2016년 6월까지 심리를 진행했지만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020년 3월에는 의장중재인이 사임하면서 다시 결정이 미뤄졌다. 서면 심리에서 양측이 제출한 증거자료는 1546건, 증인전문가 진술서는 95건에 달한다.

소송이 길어지자 2020년 11월 론스타는 당초 청구 금액의 5분의 1 수준인 8억7000만 달러(약 1조1600억 원)를 배상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며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31일 브리핑에서 당시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공식 제안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대리인 자격이 있는지부터 불분명한 사람과 정부가 협상할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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