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엔低’ 날개펴고 中 중간재시장 잠식… 설땅 좁아진 한국
강유현기자 , 박형준 특파원 , 정세진기자
입력 2014-10-09 03:00 수정 2014-10-09 07:30
[벼랑끝에서 선 수출코리아]<2>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치이고…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6월 차세대 친환경차로 꼽히는 수소연료전지차인 ‘도요타 FCV’를 공개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성과를 거둔 것처럼 친환경차의 결정체인 수소연료전지차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보다 8.6% 늘릴 예정이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저소비,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투자에 주저했던 일본 기업이 엔화 약세로 축적한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는 것이다.
석유화학 및 철강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해 온 중국은 최근 최첨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 따라오려면 몇 년은 걸릴 것”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던 사이 휴대전화 분야에서 이른바 ‘샤오미 쇼크’가 현실이 됐다.
한국의 수출형 경제 구조가 일본과 중국 양쪽에서 몰려오는 삼각파도의 위기에 직면했다.
○ 진짜 ‘엔저 쇼크’는 일본 기업의 혁신 이후
지난해 초 북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쏘나타의 주력 모델(2013년형 SE)을 경쟁모델인 도요타의 캠리(LE)보다 865달러 비싼 2만3545달러(약 2512만 원)에 내놨다. 2014년형 쏘나타의 가격은 2만4300달러까지 올랐다. 반면 캠리 가격은 2만2870달러로 190달러 오르는 데 그쳤다. 엔저로 일본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동안 현대차는 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 업체들은 딜러에 대한 인센티브도 과감히 늘리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로 쌓은 ‘현금 보따리’로 연구개발(R&D)과 제품 혁신에 투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물량은 아베노믹스로 엔저가 본격화된 지난해 이후 크게 늘지 않았다. 자동차 분야의 수출만 봐도 지난해 전년보다 오히려 7.5% 줄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글로벌 금융 위기 전인 2007년보다도 13.2% 늘었다. 일본 SMBC닛코(日興)증권이 발표한 458개 상장기업의 실적 분석에 따르면 265개 기업이 지난해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기업의 수출 물량이 늘지 않은 것은 엔저로 물량을 늘리기보다 이익을 축적했다는 의미”라며 “R&D에 투자한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면 한국 기업은 진정한 의미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지적했다.
○ 중국 기업의 급성장
한중일 3국의 무역 구조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것도 위기의 원인이다. 한국은 일본에서 부품소재 및 기계류를 수입해 중간재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해왔다. 중국은 한국에서 수입한 중간재를 싼 인건비를 활용해 완제품으로 만든 뒤 미국 등으로 팔면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지난 10여 년간 매년 평균 250억 달러씩의 대일 적자를 봤지만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워낙 많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기술력을 축적해 자체적으로 중간재의 생산을 늘리면서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이 급격히 줄고 있다. 반면 중국산 철강의 한국 수출은 2009년 41만900t에서 지난해 113만 t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일본도 직접 중국으로 고부가가치 부품소재를 수출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어 기존의 한중일 삼각무역에서 한국의 이익 창출 모델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의 굴기는 단순히 중간재 제품의 자체 생산을 넘어 소비자 대상의 완제품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최근 중국 전자기업은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중국 저가폰에 비해 기능이나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도 가격은 비싸다고 소비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 산업 체질의 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이 수출 주도의 경제를 유지하려면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홍 센터장은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중저가 차량부터 럭셔리 슈퍼카까지 12개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모델을 투입하고 있다”며 “한국 수출기업도 이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IT 업계의 거인들처럼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동력을 발굴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기업에 밀려 스마트폰과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시장에서 철수한 일본 파나소닉은 전기차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과 주택용 전자기기 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다. 이 회사는 2012년 7540억 엔(약 7조330억 원)의 적자에서 지난해 1200억 엔 흑자로 전환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주력산업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과정에 있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이 문제”라며 “환율과 같은 외부 변수를 통제하고 기업의 혁신이 뒤따라야 수출주도형의 한국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강유현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6월 차세대 친환경차로 꼽히는 수소연료전지차인 ‘도요타 FCV’를 공개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성과를 거둔 것처럼 친환경차의 결정체인 수소연료전지차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보다 8.6% 늘릴 예정이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저소비,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투자에 주저했던 일본 기업이 엔화 약세로 축적한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는 것이다.
석유화학 및 철강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해 온 중국은 최근 최첨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 따라오려면 몇 년은 걸릴 것”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던 사이 휴대전화 분야에서 이른바 ‘샤오미 쇼크’가 현실이 됐다.
한국의 수출형 경제 구조가 일본과 중국 양쪽에서 몰려오는 삼각파도의 위기에 직면했다.
○ 진짜 ‘엔저 쇼크’는 일본 기업의 혁신 이후
지난해 초 북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쏘나타의 주력 모델(2013년형 SE)을 경쟁모델인 도요타의 캠리(LE)보다 865달러 비싼 2만3545달러(약 2512만 원)에 내놨다. 2014년형 쏘나타의 가격은 2만4300달러까지 올랐다. 반면 캠리 가격은 2만2870달러로 190달러 오르는 데 그쳤다. 엔저로 일본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동안 현대차는 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 업체들은 딜러에 대한 인센티브도 과감히 늘리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로 쌓은 ‘현금 보따리’로 연구개발(R&D)과 제품 혁신에 투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물량은 아베노믹스로 엔저가 본격화된 지난해 이후 크게 늘지 않았다. 자동차 분야의 수출만 봐도 지난해 전년보다 오히려 7.5% 줄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글로벌 금융 위기 전인 2007년보다도 13.2% 늘었다. 일본 SMBC닛코(日興)증권이 발표한 458개 상장기업의 실적 분석에 따르면 265개 기업이 지난해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기업의 수출 물량이 늘지 않은 것은 엔저로 물량을 늘리기보다 이익을 축적했다는 의미”라며 “R&D에 투자한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면 한국 기업은 진정한 의미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지적했다.
○ 중국 기업의 급성장
한중일 3국의 무역 구조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것도 위기의 원인이다. 한국은 일본에서 부품소재 및 기계류를 수입해 중간재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해왔다. 중국은 한국에서 수입한 중간재를 싼 인건비를 활용해 완제품으로 만든 뒤 미국 등으로 팔면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지난 10여 년간 매년 평균 250억 달러씩의 대일 적자를 봤지만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워낙 많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기술력을 축적해 자체적으로 중간재의 생산을 늘리면서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이 급격히 줄고 있다. 반면 중국산 철강의 한국 수출은 2009년 41만900t에서 지난해 113만 t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일본도 직접 중국으로 고부가가치 부품소재를 수출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어 기존의 한중일 삼각무역에서 한국의 이익 창출 모델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의 굴기는 단순히 중간재 제품의 자체 생산을 넘어 소비자 대상의 완제품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최근 중국 전자기업은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중국 저가폰에 비해 기능이나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도 가격은 비싸다고 소비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 산업 체질의 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이 수출 주도의 경제를 유지하려면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홍 센터장은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중저가 차량부터 럭셔리 슈퍼카까지 12개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모델을 투입하고 있다”며 “한국 수출기업도 이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IT 업계의 거인들처럼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동력을 발굴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기업에 밀려 스마트폰과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시장에서 철수한 일본 파나소닉은 전기차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과 주택용 전자기기 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다. 이 회사는 2012년 7540억 엔(약 7조330억 원)의 적자에서 지난해 1200억 엔 흑자로 전환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주력산업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과정에 있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이 문제”라며 “환율과 같은 외부 변수를 통제하고 기업의 혁신이 뒤따라야 수출주도형의 한국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강유현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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