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정부 지원금 받지 않았던 예술거장의 유작, ‘개선문, 포장’[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김민기자

입력 2021-10-02 12:00 수정 2021-10-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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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공공 지원금은 어떤 의미일까요?

공공 기관은 시민들에게 좋은 예술을 제공하기 위해 작가에게 지원금을 줍니다. 이 지원금으로 작가는 컬렉터의 취향에만 맞춰서만은 하기 어려운 심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요. 지원금을 중심에 두고 작가와 기관은 각각 공공의 이익을 위한 예술을 생산한다는 것이 원칙이지요.

한국의 미술 현장을 취재해보니 공공 지원금이 우리 미술계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작품 판매만으로는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작가나 기획자는 매년 때가 되면 지원 사업에 신청하고, 그 지원금으로 전시를 엽니다. 특히 한국은 미술 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가지 않고, 컬렉터의 취향도 비교적 획일적이어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원금이 있어야만 작품과 전시가 이뤄지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생태계일까요?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돼 화제를 모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개선문, 포장’은 이런 점에서 신선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 “터무니없는 꿈도 현실이 될 수 있다”



2021년 9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 설치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품 ‘개선문, 포장’ / Christo and Jeanne-Claude, L‘Arc de Triomphe, Wrapped, Paris, 1961-2021 ─ 사진: Benjamin Loyseau ⓒ2021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9월 18일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 프랑스 파리 개선문의 모습입니다. 높이 50m, 폭 45m로 파리 시내대로 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개선문이 앞면은 은빛, 뒷면은 푸른색의 천으로 온통 뒤덮였습니다. 이 작품에 쓰인 천의 크기는 2만5000㎡. 이 천을 3km 길이 붉은 줄이 꽁꽁 감쌌습니다.

작품은 당연히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차량도 통제하고 있죠. 평소라면 개선문을 둘러 싼 회전 교차로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던 곳인데요. 만약 서울에서도 매일 보는 광화문이 거대한 천으로 감싸진다면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개선문을 둘러 싼 은빛 천에 기대보는 아이들의 모습 / ,Christo and Jeanne-Claude L’Arc de Triomphe, Wrapped, Paris, 1961-2021 ─ 사진: Andre Grossmann ⓒ 2021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개선문을 감싼 천은 10월 3일이면 철거됩니다. 딱 보름 남짓한 기간.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이 작품을 실현시키는 데 무려 60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말이죠. 심지어 두 사람은 작품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무모하고 지난한 작업을 왜 두 부부는 예술 작품이라며 실행했던 걸까요?

이 작품이 공개됐을 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서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던져 주었습니다. 마크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꿈이라도 실현 가능하다.’

우리가 믿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술적 도전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이 작품이 프랑스는 자랑스럽습니다.”

누구도 엄두내지 못하는 일을 과감히 시도하는 것.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려도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것. 이 단순함이 우리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 바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가 해주는 이야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릴게요.

● 결과 아닌 과정 자체가 예술



우선 ‘개선문, 포장’이 실현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결과만 보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유명 작가니 쉽게 정부 허가를 받았겠지. 지원도 좀 받아서 포장 기법을 이용해 작품 설치를 했을 거야.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주니까. 그래서 뭐가 그렇게 대단한거지?’

저도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예술 세계를 알기 전까지는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미국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개선문, 포장’을 설치하기 위한 드로잉을 들고 서 있는 크리스토의 모습. 2019년 9월 20일. ─ 사진: Wolfgang Volz, ⓒ2019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그런데 두 부부가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것은 그들이 파리의 플랫에서 살던 1961년 이었습니다. 왜 60년이 걸렸냐고요? 작품 설치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시 당국과 정부, 시민들의 허가를 받는 모든 절차를 거쳐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그렇게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고요. 또 비용 마련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설치에 소요된 비용은 전부 작가 측이 지불했다고 하네요. 저도 파리시나 프랑스 정부 지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대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게다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공공 미술 작품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두 부부는 평생 공공 지원금이나 후원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엄청난 세월이 걸렸겠지요.


독일의 패브릭 제조 공장에서 ‘개선문, 포장’을 위한 2만5000㎡ 크기의 천을 준비하는 모습. 이 천들은 재활용할 수 있는 폴리프로필렌이다. 2020년 7월 독일 뤼벡 ─ 사진: Wolfgang Volz, ⓒ2020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그러면 어떻게 비용을 마련했을까요? 간단합니다. 부부는 큰 설치 작품을 할 때에 발생하는 작은 드로잉이나 모델, 스케치 등 작은 작품을 컬렉터나 미술관에 판매합니다. 이 판매로 모은 자금으로 대규모 공공 작품을 하는 것이죠. 즉 작품 제작비를 직접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작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만의 독특한 방식은 아닙니다. 많은 유명 작가들이 컬렉터를 위한 소품을 제작하고, 이것으로 작품 제작비를 마련해 야심 찬 작품을 만들곤 하죠.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도 퍼포먼스 작업의 비용을 이런 식으로 마련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서 컬렉터는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를 후원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럼 작품을 팔아서 비용만 마련하면 다 된 걸까요? 아닙니다. ‘개선문, 포장’은 크리스토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20년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도 많은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우선은 프랑스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이것은 2019년 마크롱 대통령과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의 도움으로 비로소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이 때는 이미 아내 잔 클로드가 세상을 떠나고도 10년이 지난 뒤였죠. 크리스토도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마침내 ‘개선문, 포장’이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표현을 했죠.


개선문의 앞 뒤에 설치된 조각상을 보호하기 위해 스틸 구조물이 설치되고 있는 모습. 2021년 7월 20일 파리. ─ 사진: Wolfgang Volz, ⓒ2021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그 다음엔 환경 단체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2020년 4월 작품 설치를 하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이 때 개선문 상부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크리스토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작품 설치를 가을로 미뤘습니다.

그 다음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설치가 다시 1년 미뤄집니다. 그 사이인 2020년 5월, 크리스토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두 부부가 수십 년 동안 준비한 작품은 이들의 조카이자 오랫동안 작업을 도와 온 블라디미르 야바체프가 이어 갔습니다.

● “누군가에게 의존하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1962년 프랑스 파리 Quai de la Tournelle 앞에 서 있는 젊은 크리스토의 모습. ─ 사진:Jeanne-Claude, ⓒ1962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야바체프는 ‘개선문, 포장’ 언론 간담회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삼촌(크리스토)는 항상 저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하면 결코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평생 후원이나 공공 지원금을 받지 않은 것은, 그 돈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음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19세기 이전 예술 작품의 대부분은 왕이나 종교 권력이 주문해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그 가운데서 예술가가 천재성을 발휘한 것을 두고 걸작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 작품은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예술이 이런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일부 지역, 그리고 19세기 쿠르베의 사실주의와 뒤 이은 근대 미술, 현대 미술에 이르러서죠.

크리스토의 성장 배경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릴 적 그가 태어난 불가리아는 공산 독재 국가였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예술적 재능을 갖고 태어난 크리스토는 예술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은 주말마다 국가가 주문한 그림을 그려야했죠.

조카 야바체프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삼촌이 미대 학생일 때, 그림 속 농부들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곤 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을 삼촌은 자주 이야기했지요.”

1956년 소련군이 독재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제압하는 걸 본 크리스토는 불가리아를 탈출합니다. 그리고 1958년 파리에 가서 초상화를 그리며 돈을 벌었죠.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아내 잔 클로드와 3년 뒤 개선문을 바라보며 ‘개선문, 포장’을 구상합니다.

● 이기심 아닌 이해와 배려에서 나오는 개인의 자유



‘개선문, 포장’이 이뤄지기까지, 크리스토 잔 클로드 부부가 함께한 삶의 수많은 궤적들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아니,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뿐 아니라 이 계획을 반대했던 이전의 정부 관료, 새들을 걱정한 환경단체, 그리고 작품이 실현된 뒤 구경하러 온 시민들의 의견이 모두 작품의 일부인 셈이지요.


2005년 2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설치한 ‘더 게이츠’ 앞에 선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 ─ 사진: Wolfgang Volz, ⓒ2005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크리스토, 잔-클로드의 또 다른 유명 작품인 ‘더 게이츠’도 1979년 드로잉으로 시작했답니다. 1981년 뉴욕 공원 관계자는 이 작품에 반대하는 이유를 거의 책 한 권의 문서로 적었다고 하는데요, 크리스토는 이 문서도 작품에 포함 시킵니다. 그리고 2005년 블룸버그 시장의 허가로 ‘더 게이츠’는 비로소 실현되고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지요.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크리스토는 참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는 너무 난해하고 아방가르드한 예술이 관객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잖아요. 마치 ‘알아서 해석해’하고 내 앞에 던져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끈질기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 끝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한 것이죠.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을 자유를 추구했지만, 그 자유는 결국 이기심이 아닌 타인에 대한 인간적 이해와 배려에서 나온다는 메시지가 저는 작품에서 느껴집니다. 이렇게 보면, 개선문을 감싸고 있는 흰 천이 참 따스하고 포근하게 다가오네요. 여러분도 아래 영상을 통해 감상해보세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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