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속 또 다른 주인공? 초록색 파스타 ‘페스토 트레네테’ 먹어볼까[씨네맛]

김재희 기자

입력 2021-07-01 18:52 수정 2021-07-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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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 ‘루카’ 스틸컷
지난달 17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루카’에서 두 주인공 루카와 알베르토 만큼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제 3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파스타다. 파스타가 처음 나오는 장면은 바다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이탈리아 해안가의 한 마을로 나온 루카와 알베르토가 인간 친구 줄리아의 집에서 줄리아의 아버지 마시모가 해 준 페스토 트레네테를 먹는 장면이다. 인간의 음식을 처음 맛본 이들은 포크 대신 손으로 기다란 면을 집어 허겁지겁 입 안에 우겨 넣는다. 황당해하는 줄리아, 의심스러운 표정의 마시모는 개의치 않고 순식간에 소스 흔적도 없이 접시를 싹 비웠을 정도로 페스토 트레네테는 맛있었다.

● ‘루카’의 또 다른 주인공, 페스토 트레네테
디즈니·픽사 ‘루카’ 스틸컷
이후에도 페스토 트레네테는 자주 등장한다.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가 자전거, 수영, 파스타 먹기 세 종목으로 구성된 ‘포르토로소 컵’ 경기에 팀을 이뤄 출전하게 되기 때문. 이들은 접시에 수북이 파스타를 쌓아 놓고 빨리 먹는 연습을 한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파스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닿으면 바다괴물로 변하는 루카와 알베르토는 경기 도중 비가 내리면서 정체가 드러난다. 바다괴물을 잡은 이에게 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바다괴물에 적대적이었던 마을사람들. 그럼에도 친구가 된 줄리아와 루카, 알베르토가 한 팀이 돼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걸 보고 사람들은 바다괴물에 대한 적대감을 거둔다. 경기 후 바다괴물들을 초대해 페스토 트레네테를 대접한 마시모, 처음 이 음식을 맛봤을 때처럼 신난 표정의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정을 넘어 다양성의 포용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마시모는 바다괴물 모두를 초대해 트레네테를 대접하죠. 음식을 나누는 건 진정한 포용을 나타내는 따뜻한 제스쳐에요.”

디즈니·픽사 ‘루카’ 스틸컷
유년시절의 우정을 그리고자 했다는 카사로사 감독은 왜 영화의 핵심 소재로 파스타를 활용했을까? 이탈리아 북서쪽 리구리아주의 주도 제노바 출신인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와 함께 자랍니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파스타를 먹죠. 우린 매일 독창적인 방식으로 파스타를 만들고, 일요일이나 기념일에는 신선한 재료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를 먹습니다. 이탈리아 각 지역마다 그곳 고유의 파스타 면 모양과 소스가 있어요. 파스타가 얼마나 이탈리아의 정체성과 문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지 상상이 가시죠?”

● 생각만 해도 허기를 부르는 리구리아주 음식들
이탈리아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리구리아주를 방문한 ‘루카’ 제작진
페스토 트레네테는 카사로사 감독의 고향인 제노바의 전통 파스타다. 페스토의 주 재료인 바질과 잣이 제노바에서 잘 자라 처음 이 소스를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제노바와 가까운 해안가 마을이기에 다양한 이탈리아 파스타 중 페스토 트레네테를 택했다. “제노바 문화를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페스토는 한국에서도 비교적 대중적이지만 트레네테를 들어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파스타 면 종류 중 하나인 트레네테는 면발이 얇고 판판한 게 특징이다. 통상 리구리아주에서는 페스토에 얇고 꼬인 ‘트로피’ 면을 사용하는데, 감독이 이 영화에선 트레네테를 선택한 이유도 재밌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요리 중 하나가 ‘Troffie al pesto’(페스토 트로피)였어요. 처음엔 영화에 트로피를 사용하려 했지만 모양이 짧고 꼬불꼬불해서 가늘고 긴 파스타만큼 재밌지 않을 것 같았어요. 루카와 알베르토가 아주 지저분하게 파스타를 손으로 집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기에 국수와 같은 트레네테를 선택했죠.”

카사로사 감독
카사로사 감독은 페스토 트레네테 외에도 리구리아주의 전통음식들을 잔뜩 추천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리구리아주 파스타 중 하나라는, 손수건처럼 얇고 넙적한 모양의 파스타 ‘Mandilli’,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즐겨 먹었다는 ‘Pansotti al sugo di noci’(시금치, 리코타 치즈로 안을 채우고 월넛 소스를 뿌린 파스타), 리구리아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먹어보라는 ‘Spaghetti allo scoglio’(새우, 칼리마리, 홍합, 조개 등이 들어간 해산물 파스타)까지. 마지막으로 그가 추천한 건 리구리아주 전통 빵 포카치아다. “제노바 인근 소도시 레코의 ‘Focaccia al Formaggio’는 부드럽고 달콤한 크레셴차 치즈가 들어갔다”며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감독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지금 너무 배가 고파요! 진심으로 음식들을 끝 없이 소개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제노바식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에노테카오토’
우리나라에서 제노바식 페스토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자리한 ‘에노테카오토’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에 있는 ‘ICIF’(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공부하고 1년 간 리구리아주 키아바리의 식당에서 일한 강성영 셰프(62)가 2014년 차렸다. 메뉴 이름부터 ‘바질페스토 파스타’가 아닌 ‘제노베제(’제노바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바질페스토’인데다, 감자와 줄기콩도 들어간 데에서 제노바 향이 물씬 난다. 감자와 줄기콩을 넣는 건 제노바 페스토 파스타의 특징이다. 영화에서 파스타가 클로즈업될 때도 줄기콩과 감자가 눈에 띈다. “해산물에 관심이 있어서 해안가 마을을 찾다가 리구리아주를 택했다”는 강 셰프는 “내가 일한 식당의 셰프가 제노바 음식의 장인이라 자연스럽게 제노베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아쉽지만 트로피나 트레네테 면을 사용하진 않는다. 그 대신 강 셰프는 직접 만든 생면을 쓴다. “트로피는 식감이 딱딱하기도 하고,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차별화하기 위해 당시 드물었던 생면을 택했다. 생면은 소스가 잘 묻어서 페스토 맛이 더 잘 느껴진다. 소스를 잔뜩 묻혀야 맛있는 볼로네제 파스타도 생면을 쓰는 게 좋다.” 강 셰프의 설명대로 생면에 덧입힌 페스토의 맛은 입안에 더 강하게 퍼진다. 면을 입에 넣은 뒤 감자를 함께 씹으면 감자 특유의 단맛과 푸석한 식감이 어우러지면서 기존에 맛보지 못한 페스토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
※씨네맛은?
‘올드보이’의 최민수가 감금방에서 먹어야 했던 음식은 왜 하필 군만두였는지, ‘황해’의 하정우가 입을 쫙 벌려 김을 우걱우걱 씹어 먹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는지 궁금했던 적 없으신가요? ‘기생충’을 보고 채끝 등심을 올린 짜파게티가 문득 먹고 싶었던 적, ‘줄리 & 줄리아’를 보고 나서 비프 부르기뇽을 잘하는 레스토랑이 궁금했던 적은요.

‘씨네맛’은 관객들의 이런 호기심을 해결해드리는 코너입니다. 해당 음식이 선택된 이유와 연출 의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국내외 레스토랑까지 영화 속 맛에 대한 모든 걸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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