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스님 “수많은 마음의 채널… 분노보다는 기쁨의 채널을 켜자”

배수강 기자

입력 2021-05-19 11:31:00 수정 2021-05-19 13: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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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기자]
바람과 볕이 좋은 5월 9일 서울 양재동 구룡사 마당에서 만난 정우 스님(구룡사 회주)은 불자들을 배웅하며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스님이 소개해 준 한 무리의 사람들은 전직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장군 출신 불자들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스님을 찾아온 것이다.

정우 스님은 홍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8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1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5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를 맡아 도심포교당을 세웠고, 1994년 총무원 총무부장, 2007년 통도사 주지, 2013년 군종특별교구장, 2017년 총무원 총무부장을 지냈다. 무엇보다 정우 스님은 도심 포교의 대명사다. 1980년대 구룡사를 창건해 통도사 서울포교당으로 등록하고 고양시 일산 여래사 등 30여 년간 직접 건립한 포교당만 20곳에 달한다. 인도, 미국, 캐나다, 호주 등 해외 10여 곳에 포교당을 건립했고, 2004년부터 뉴욕 원각사 건립 불사를 시작해 이제 개원을 앞두고 있다. 정우 스님과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 예비역장성들이 대거 찾아오셨네요.

“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찾아오셨어요. 그분 들 중에는 제가 사병 때 중대장을 하신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리워 절로 돌아오면 탈영”


- 아 그랬나요? 스님은 조계종 제3대 군종교구장을 지냈고, 과거 군 복무 중에는 군종으로 활동하며 법당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1973년 경기 양주 26사단으로) 군 입대한 이후 매일 저녁 30분간 신앙 활동을 했는데 주로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불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중대장, 소대장이 제 신상명세서를 보고는 ‘스님이 어떻게 교회에 가느냐’고 물어요.”


- 그래서요?

“‘평소 한식(韓食)을 좋아해도 먹을 게 없으면 양식(洋食)도 먹는 거죠’라고 답했죠(웃음). 그랬더니 ‘불교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시기에 ‘시간을 주시면 하겠다’고 했어요. 스님과 도반에게 불교 서적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어떻게 법당을 운영할지 연구했죠. 한번은 부대에서 태권도를 해야 하는데 도복을 마련하지 못해 스님들 보시를 받아 도복을 구입해 중대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스님이 군 복무하던 시절은 군승 제도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교회와 달리 군법당은 군단 정도는 돼야 설립돼 있었다. 정우 스님은 중대장에게 군종으로 활동할 것을 허락받고 빈 막사를 고쳐 ‘호국 황룡사’를 창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단장이 사단에도 법당을 마련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해 결국 ‘호국 일월사’를 창건했다. 스님이 대한불교조계종 제3대 군종특별교구장(2013~2017)으로 활동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군 복무 중 부처님이 그리워 절로 돌아오면 탈영이라고 하고, 부처님을 군부대로 모시면 법당이라고 하지요(웃음).”

정우 스님은 교구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경기도 파주시 남북공동경비구역(JSA)에 무량수전(유엔사)을 세운 일을 꼽는다. 유엔사는 2016년 7월 착공해 2017년 3월 낙성된 목조 건축물(법당 82.32㎡, 종각 9㎡)로, 고려시대 양식인 수덕사 대웅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참고했다.

“고려시대 맞배집 구조로 무량수전 법당을 짓고 ‘평화의 종’을 달았어요. 법당 외벽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 국기를 그려 넣었고, 16개국 전사자들의 위패와 군인, 경찰, 학도병과 민간인 희생자들 위패도 모셨습니다. 참전국 대사관에 일일이 연락해 위패마다 각국 언어로 써 넣었어요. 그들의 희생에 한국 불교가 감사한 마음을 표함으로써 호국불교의 의미를 되새기고 값진 인연을 성숙시키는 거죠. 그리고 빈 위패도 하나 모셨습니다. 먼 훗날에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 때가 오면 북한군이나 중공군 등의 이름도 표기했으면 좋겠어요.”


남대문시장에서 산 천막으로 세운 구룡사

서울 양재동 구룡사 1층 벽에 부착된 미국 뉴욕 원각사 사진 을 보고 설명하는 정우 스님. [배수강 기자]
- 스님은 1985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직접 천막을 사서 이곳에 천막 법당을 세우고 1989년 지금의 구룡사를 낙성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도심 포교당이 익숙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통도사 구하 노스님은 일제강점기에 도심 포교당 38곳을 세웠고, 광덕스님도 불광사 등 많은 사찰을 세워 포교 활동을 했으니 제가 포교당 만든 건 일도 아니죠. 강남 신도시 개발 등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을 뿐입니다. 불자 한분 한분을 정성껏 맞았습니다. 큰 시주보다는 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불사를 했는데, 그 에너지가 모이는 게 바로 포교입니다. 한삽 한삽 뜨면서 포교 했지 ‘포클레인’은 없었어요.”


- 미국 뉴욕에서도 원각사를 건립하고 있는데요. 뉴욕 외에도 워싱턴 연화정사, 캐나다 대각사, 인도 설산사 등 해외 불사를 하면서 한국 불교 세계화에 앞장섰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제3대 해외특별교구장에 임명됐는데요.

“임명장 받던 날 당시 원행 스님께 그랬어요. 나를 고무풍선으로 만들지 말고 쓰려면 제대로 써달라고요.”


- 고무풍선요?

“네. 고무풍선은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리거나 가시에 닿으면 터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고무풍선이 아니라 쓰려면 제대로 써달라고 한 거죠(웃음). 군종교구는 스님(군법사)이 150명 정도 활동하고 있지만 해외 교구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해외 종교법인은 한국의 그것과 다르거든요. 기독교에서는 담임목사 보다는 장로가 일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해외 사찰에서도 주지 스님보다 사찰의 이사들이 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나는 현지에서 ‘융단폭격’을 하면서 가끔씩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니까 무시하지 못하죠(웃음). 사실 원각사는 2004년부터 미국 뉴욕에 세우면서 무거운 짐을 졌어요.”

원각사는 뉴욕주 오렌지카운티 샐리스베리밀스의 32만 평(105만 7850㎡) 대지에 세워진 미국 동부 최대의 불교사찰이다. 법안 큰스님이 1986년 현재의 부지에 세계불교대학을 세우겠다는 뜻을 품었으나 과로로 쓰러진 이후 2004년 정우 스님과 인연이 닿을 때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정우 스님이 통도사 주지 취임 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원각사 곳곳에 쌓인 폐차와 쓰레기를 치웠다. 2010년에 부처님진신사리탑과 청동석가여래좌상을 건립했고, 이듬해 대웅보전 기공식을, 2017년 무량수전 상량식이 이어졌다. 건립 비용만 1200만 달러. 해외 한국 불교사상 최대 규모다. 대웅전은 수령 900년 전후의 최고급 캐나다 밴쿠버산 전나무와 더글라스포 나무를 사용해 1200년 전 고려시대 공법을 재현했다. 조경 등 후속 작업이 진행 중으로 2023년경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님은 일화를 소개했다.

“미국인 가정에서 집사 역할을 하면서 1년 동안 그 미국인 부부를 위해 등을 켜주신 거사님이 96세로 돌아가셨는데, 매주 일요일 재(齋)를 지낼 때마다 그 미국인 부부가 참석했어요. 뭔 말인지는 몰라도 경건한 분위기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하니 매주 찾아왔어요. 어느 날 원각사 주지 스님과 차를 마시다가 미국인 보살님(아내)이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건넸다고 해요.”


‘스노마운틴’과 ‘보림화’ 그리고 160만 달러


- 그래서요?

“주지 스님이 그 돈을 원각사를 짓는 데 쓰겠다며 현재 공사 개요를 ‘브리핑’했더니 미국인 남편이 선방(禪房) 건립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 자리에서 100만 달러 수표를 또 건넸습니다. 이후에 제가 원각사에 가서 용마루를 타고 공사를 진두지휘하는데 마침 그분들이 오셨더군요. 그때 처사님(남편)이 커 보여서 ‘스노마운틴(雪山)’이라는 이름을, 보살님은 ‘보림화(普林華)’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선방 중 동방은 ‘보림원’, 서방은 ‘설산당’으로 이름 붙일 거라고 했습니다. 50만 달러를 더 기부하시더군요. 두 내외가 모두 160만 달러를 시주한 겁니다. 중요한 건 현지 스님들이 신심과 원력으로 진지한 삶을 살아가면 그 자체가 수행이고 제도(濟度)인 거죠. 수행과 포교가 둘이 아니라는 것은 스님들도 잘 알고 계시죠.”


- 교구장으로서 해외 포교에 어려운 점도 많았겠어요.

“저는 해외 스님들과 가교 역할을 하면서 자긍심을 심어줄 일을 하고 싶어요.”


- 스님은 국내외 구호 활동에도 열심입니다.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불교가 이 시대에 필요한지 읽을 수 있었는데요.

“(2017년 9월 20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가 허리케인으로 초토화됐는데 구룡사에서 3000만 원을 내고 워싱턴 주재 무관의 도움으로 300명에게 1000달러씩 전달했죠(정우 스님이 3000만 원을 쾌척하며 시작된 모금 운동은 3억 원이 넘게 모였다). 푸에르토리코에는 6?25전쟁 당시 참전용사 2000여 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그중 300명에게 1000달러씩 전달한 거죠. (2019년 4월) 강원도에서 산불이 났을 때는 1억 원을 후원했는데, 내가 머리로 계산하고 후원금을 냈다면 1000만 원 정도였을 겁니다. 당시는 재정이 어려웠거든요. 그저 가슴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1억 원을 냈죠.”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 결국 마음이 하는 대로 하신 거네요.

“우리 마음엔 수없이 많은 채널이 있는데, 리모컨으로 분노라는 채널로 돌리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평화와 기쁨의 채널로 돌리면 평화와 기쁨을 느끼듯 그것은 끊임없는 나의 선택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일어나고 저녁에 누울 때는 오늘밤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야죠.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이듯이 오늘을 열심히 사는 마음으로 언제 가도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도 많고, 특히 부동산 폭등과 일자리 문제로 청년들 어려움이 큰데요.

“코로나바이러스도 생명체여서 변이 현상을 일으키며 진화하고, 인간은 백신접종을 통해 면역체계를 만들어 적응합니다. 우리의 의료시스템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잘 극복하고 있어요. 다만 젊은이들은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꿈이요?

“제가 군대 가서 보니 절이 그렇게 좋은 곳인 줄 그때 알았어요.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인데,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이죠(늘 매 순간 청정하고 깨어있는 마음을 간직하면 바로 그 자리가 안락한 극락, 화엄경).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청년들이 희망이 안 보이니 코인 투자 등 일확천금을 좇아요. 안타깝죠. 꿈속에서 꿈꿀 때는 꿈인 줄 모르다가 깨고 나서 보면 아무것도 없죠. 클로버가 있는 곳에 가면 사람들은 네잎클로버를 찾아요. 네 잎클로버는 ‘행운’을 뜻하고 세잎클로버는 ‘행복’을 뜻합니다. 주변에 행복이 널렸는데 거기에 더해 행운을 찾아 헤맵니다. 행복하면 족하지, 무엇을 더 바라는지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정우스님 #구룡사 #부처님오신날 #신동아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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