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면 바보되는 세상”…‘LH 사태’에 2030 분노한다

뉴스1

입력 2021-03-18 06:06 수정 2021-03-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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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한국토지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접한 2030 청년층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에서 공공 종사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섰다는 의혹에 젊은이들은 큰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흔히 ‘MZ세대’(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세대’가 합쳐진 말)로 불리는 이들은 특히 최고 가치로 여기는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점에서 절망감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다세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사는 대학원생 한모씨(32·여)는 “서울 집값이 대부분 10억을 넘고 대출도 못받는 상황인데 누구는 정보를 미리 알아 수십억을 번다니 박탈감이 크다”며 “공익을 앞세워야 할 LH 임직원들의 투기는 양심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빛투’(빛내서 투자)로 간신히 집을 마련한 2030 직장인들도 분통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결혼해 어렵게 집을 마련한 김모씨(35)는 “열심히 살면 바보되는 세상”이라며 “편법을 써야 부자가 될 수 있는 걸까”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른 공기업과 공공기관도 비슷할 것 같다”며 “국민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조롱하거나 “LH로남불 시전 중” “나도 LH 직원들처럼 돈 받으면서 땅테크 배우고 싶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젊은이들은 말만 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으로도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는 17일 LH 진주 본사 앞 도로에 ‘LH 내부고발·자진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신전대협은 “LH 투기 사건은 비겁한 반칙”이라며 직원들에게 내부고발을 당부하고 투기 가담자들에게 자수를 촉구했다.

앞서 15일 오후에는 서울 강남구 LH 서울본부 앞에서 2030 중심의 시민단체인 한국청년연대 등이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 과 같은 구호가 현장에서 터져 나왔다.

충북 청주에선 청주청년회가 LH 충북본부 앞에서 ‘LH 땅투기 전수조사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했다. 임지연 회장은 “LH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임직원이 땅 투기를 했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불공정 등 사회 부조리의 총집합체로 규정하면서 특히 2030의 분노가 거셀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정유라 특혜 논란, 금융권 채용비리, 인국공 사태, 조국 사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군복무 논란 등을 겪으며 사회의 공정성이 이미 무너졌다고 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갑질과 수저계급론, 공정성 훼손 등 모든 요소가 모인 것”이라며 “조국 사태나 갑질 논란 등 이전부터 있었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LH 임직원들은 정보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일종의 갑질을 한 셈”이라며 “많은 사람이 우린 집도 못 샀는데 권력과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문제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2030이 기성세대보다 공정성 훼손에 더 민감한 이유로 경쟁을 꼽았다. 10대의 치열한 입시 경쟁, 20대의 취업 경쟁, 입사 후의 승진 경쟁 등 끝없는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공정한 규칙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층일수록 부의 세습과 공정,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점에 불만이 크다”며 “취업을 앞둔 데다 결혼하고 집도 사야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LH 투기에 더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젊은 세대는 사교육 지출 수준에 따라 학력이 달라지고 취직이나 대학원 진학에도 부모의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상류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세습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공정성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혁과 윤리의식 고취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불법이나 편법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내부 기밀은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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