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바다에 미래있어”…김재철 명예회장, KAIST에 500억 기부

대전=지명훈 기자

입력 2020-12-16 15:57 수정 2020-12-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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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선을 했다. 작열하는 태양의 밑에서 또는 폭풍우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 마리 한 마리 가슴을 졸이며 낚아 올린 고기가 이젠 어창에 그득히 차서…어렵게 낚은 다랑어를 흉측한 돌고래나 모진 상어 떼에 빼앗긴 적도 많지만….”

1975년 판 실업계 고교 2학년 국어교과서(문교부 발행)에 실린 ‘거친 파도를 헤치고’란 글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가 떠오르는 이 글은 ‘참치’하면 생각나는 동원그룹의 김재철 명예회장이 썼다. 1966년 고려원양 광명호 선장 시절에 일기 형식으로 쓴 글로 문장이 빼어나 교과서에도 실렸다.

대양을 누비며 동원그룹을 일군 그의 열정은 이제 고기의 바다에서 ‘데이터의 바다’로 바뀌었다. 김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엔 세계의 푸른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찾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데이터의 바다에 새로운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AI 인재 육성에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 KAIST에 사재 500억원을 출연했다.

16일 오전 대전 KAIST 본원 학술문화관 정근모콘퍼런스홀에서는 KAIST 교수 및 학생과 김 명예회장 가족인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부 약정식이 열렸다. 기부금은 앞으로 10년간 연차적으로 현금으로 제공된다.

김 명예회장은 “AI 물결이 대항해시대와 1·2·3차 산업혁명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큰 변화를 이끌 것”이라며 “오늘 이 자리는 대한민국이 AI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출정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우리 국민이 국력을 모아 경쟁에 나서면 AI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며 “과학영재들과 우수한 교수진들이 집결해있는 KAIST가 선두주자로서 우리나라 AI 개발 속도를 촉진하는 플래그십(flagship)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KAIST가 AI 인재 양성 및 연구의 세계적 허브가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명예회장은 동원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은 지난해 경영 일선에 물러난 뒤 AI 인재 양성과 기술 확보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인 동원산업이 지난해 한양대에 30억 원을 기부해 ‘한양 AI솔루션센터’를 세우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동원그룹은 전 계열사에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 프로젝트를 도입해 AI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KAIST는 지난해 8월 문을 연 AI대학원의 명칭을 ‘김재철 AI대학원’으로 바꿀 방침이다. 203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역량을 갖춘 교수진을 40명까지 늘려 AI 융복합 인재 양성과 연구에 주력한다. 이 대학원에는 현재 구글과 IBM 왓슨,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기업의 AI 연구소 출신 전임교수 13명과 겸임교수 8명 등으로 교수진을 구성하고 석사과정 79명, 석·박사 통합과정 17명, 박사과정 42명 등이 재학 중이다.

KAIST는 우수 인재와 교수진 확보를 위해 현재 대전 본원의 AI대학원을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서울캠퍼스(홍릉)로 이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2023년부터는 AI 관련 기업들과의 공동연구 및 산학협력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양재 R&D(연구개발) 혁신지구’에 교육 및 연구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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