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보다 본질이 중요… 코로나, 영성으로 극복하자

동아일보

입력 2020-11-13 03:00 수정 2020-11-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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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교회

14년째 이어진 6·25 참전용사 초청 행사. 올해는 코로나19로 화상 줌과 유튜브를 통해 진행됐다. 새에덴교회 제공
소강석 목사
사람은 살기가 힘들면 둘 중 하나를 떠올린다고 한다. 하나는 극단적인 생각이다. 스스로 삶의 벼랑 끝으로 걸어간다. 거기서 자신의 삶을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고 싶어한다. 다른 하나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때 붙잡는 게 신(神)이고 종교다.

사람은 누구나 신을 찾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신은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울 때 신을 찾는다. 정말 힘들고 삶이 벼랑 끝에 몰릴 때 본능적으로 신을 찾고 종교에 귀의한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했던 아닥사스다 왕도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졌을 때 오히려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며 자신과 왕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에스라6:9-10).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는 코로나 블루와 포비아라는 기나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사람들이 종교를 찾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거부하고 교회를 향해서 분노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왜 그럴까.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은 이런 예견을 한 적이 있었다. “21세기, 즉 미래로 갈수록 현대인은 기존 교회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더 나타나겠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심과 종교적 욕구, 또한 영성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질 것이다.”

그의 예견대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영성의 본질과 목마름을 보여주는 교회가 아니라 제도나 경영 측면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교회들 역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것이 매너리즘으로 고착됐다. 그러다가 일부 교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진원으로 지목되면서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 것이다. 코로나 상황일수록 교회가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를 기피하고 거부하는 사태를 맞은 것이다.

중세 교회도 흑사병이 창궐할 때 그런 실수를 하였다. 오늘날도 같은 예배라 할지라도, 예배를 향한 견딜 수 없는 사모함과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영적 목마름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과, 중세적인 사고와 전통적인 매너리즘에 젖어 맹목적으로 현장예배를 강행하려고 한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정말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면, 방역당국이 요구하는 식사나 소그룹 모임 금지 같은 방역지침을 따라야 한다. 예배가 소중한 만큼 이웃의 생명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한국교회는 중세적 사고를 가지고 종교적 전통만 지키려고 했던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일부의 현상을 보고 종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회를 스스로 취소한 타 종교와 교회엔 무조건 호감을 갖게 되고, 현장예배를 강행한 교회를 향하여는 집단적으로 분노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교회를 향한 집단적인 분노나 비난은 평소 교회나 그리스도인을 향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 안에 잠재된 종교적 본성과 영성이 미움과 증오, 분노로 투사되어 일어났는 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코로나 포비아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영성의 갈증으로 더 목말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마른 영성이 오히려 제도권 교회를 향한 분노로 투사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영성을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다(마태복음9:17). 따라서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고착화된 기존의 제도와 외형적 전통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제도에서 본질을, 의식에서 콘텐츠를 추구하고 종교적, 제도적, 교권(敎權)적 욕망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순수한 진리, 생명, 영성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이웃과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도 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예배의 형식보다 본질을 더 붙잡았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이웃의 생명을 좀 더 배려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더 사랑하고 안식처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중세적 사고가 교인들마저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였고, 현장예배보다 온라인예배를 더 선호하는 여론을 높아지게 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가 전통적 제도나 공간의 권위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교회는 예배의 본질과 숭고하고 존엄스러움을 회복해야 한다. 새로운 영성의 붐이 일어나게 하며 영적 생명을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바로 이 일이 코로나를 극복하는 영적인 방역이고 정신적, 영적 항체가 될 것이다.

정부도 깨달아야 한다. 물리적 방역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 영적 방역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무조건 물리적으로 예배를 제재하고 제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고 예배를 숭고하고 존엄하게 잘 드릴 수 있도록 오히려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진정한 영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참된 영적, 정신적 방역의 지킴이가 되도록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 ‘메디컬 처치’ 만들어 코로나 방역과 의료사역 ▼

교회 내 ‘메디컬 처치’ 개소를 기념한 감사 예배. 새에덴교회 제공
새에덴교회는 코로나19가 광풍처럼 몰아칠 때 현장예배를 지키면서도 한국교회 최초로 화상 줌(Zoom) 온라인예배를 도입해 교회에 오지 못하는 성도들과 영적 팬덤을 이루는 홀리 트라이브(Holy Tribe), 새에덴 공동체를 유지했다. 유튜브로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은 유튜브 예배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교회와 현장예배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교회는 정부의 코로나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도 모든 예배를 온·오프라인으로 드리게 된 것이다.

새에덴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교인 수는 줄지 않았고 헌금도 마르지 않아 변함없이 구제와 선교 등 각종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교회 운영뿐만 아니라 교단 총회를 준비하고 한국교회와 사회를 섬기면서 14년째 이어온 참전용사 행사까지 멈춤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

코로나 위기 속에 소강석 목사는 클래식한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으로 설교의 온도와 몸짓, 눈짓을 다하여 몸부림치며 영성 있는 ‘파워 설교’를 했다. 그러자 2%의 골수 팬덤 성도들이 20%를 움직였고, 그 20%가 100%의 성도들을 움직여 한국교회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예배 때면 100개 화면의 화상 줌과 유튜브를 통해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웃고 울며 감동하는 게 요즘 모습이다. 새에덴교회 성도들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서 언택트와 온택트 코로나 시대에 더 응집력이 강한 영적 공동체로 성숙한 것이다.

코로나19로 교회 내 감염 예방과 보건 대책이 대두되면서 이 교회의 ‘메디컬 처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교회는 올 8월 의료봉사위원회를 조직하고 교회 내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선포했다. 위원회는 의사, 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30여 명의 전문 의료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예배당 보건방역을 책임지면서 의료와 사역을 접목한 의료목회상담까지 담당한다.

소 목사는 “새로운 미래사회가 오고 있다”며 “한국교회는 ‘위드(with) 코로나’에 영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코로나 이후 역설적 슈퍼 처치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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