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목숨 건 베르테르 생각에… 술 먹다 혼자 울었어요”

김기윤 기자

입력 2020-10-22 03:00:00 수정 2020-10-22 18: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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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니어 규현, 뮤지컬 ‘베르테르’ 20주년 기념 공연 출연
호소력 짙은 가창력이 주무기
‘삼총사’ 등 10년간 9개 작품 출연
“캐릭터 너무 몰입해 주변서 깜짝”


극 후반부 베르테르 역의 규현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있다. 규현은 “콘서트와 달리 커튼콜 때 가슴이 더 뜨거워지는 희열, 감동이 있다”고 했다. CJ ENM 제공
“눈물이 없는 저를 술자리에서 혼자 울게 만든 게 ‘베르테르’입니다.”

케이팝 아이돌의 ‘꿀 성대’가 짝사랑의 아픔을 노래한다. 콘서트에서 팬의 흥을 폭발시키던 목소리는 극장에서 객석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아이돌 최상급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 규현(32)은 올가을 베르테르가 됐다.

슈퍼주니어 15년 차, 뮤지컬 배우 10년 차. 뮤지컬 ‘베르테르’ 2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하는 ‘규베르’(규현+베르테르) 규현을 20일 서울 강남구 광림BBCH홀에서 만났다. 규현은 “자체 팬 투표에서도 다시 보고픈 작품 1위로 뽑혔다. 20주년 공연은 무조건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능, 뮤지컬, MC, 드라마와 웹툰 OST 등 분야를 넘나드는 대표 올라운드 플레이어 규현은 뮤지컬 안착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아이돌이다.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주무기로 2010년 뮤지컬 ‘삼총사’부터 올 초 ‘웃는 남자’까지 9개 작품을 거쳤다.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를 두고 일부 팬은 “뮤지컬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될까 우려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며 호평했다.

여인 ‘롯데’만을 그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의 주인공 베르테르의 감성은 발라드 가수 규현과 찰떡이다. “반항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착한 배우”라 자처하는 그는 2015년 첫 출연보다 캐릭터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의 베르테르 출연을 마뜩지 않아 했단다.

규현이 상대역인 ‘롯데’의 김예원 배우와 손을 잡고 마주하고 있다. CJ ENM 제공
“캐릭터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친구들과 술 마시다 베르테르가 슬퍼져서 혼자 울었다. 극중 술에 취한 채 넋두리하는 ‘돌부리 장면’을 갑자기 연기하거나, 새벽에 자다 벌떡 일어나 ‘롯데!’를 외치니 친구들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뮤지컬은 기 세고 개성 강한 슈퍼주니어 멤버 사이에서 돋보이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는 “데뷔 초창기 슈퍼주니어 말고는 스케줄이 없었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매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 연습하러 다니던 시절이 지금의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와도 싸웠다. 뮤지컬 ‘삼총사’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무열은 그에게 친절했지만 엄기준은 유독 냉정했다. 하지만 몇 년씩 묵묵히 무대에 오르는 규현을 본 엄기준은 “계속 뮤지컬 할 거지?”라고 묻더니 그때부터 애정을 쏟았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여전히 일반인은 ‘규현이 뮤지컬을?’이라며 의문부호를 붙입니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능과 공연장을 오가는 중에도 본업은 놓지 않았다. 8일 발매한 싱글 앨범 ‘내 마음을 누르는 일’의 감성과 가사는 베르테르와 묘하게 닮았다. 함께 공연하는 배우 유연석을 섭외해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성과도 얻었다. 규현은 “일부러 기분 좋게 밥 먹을 때를 노렸다. 제가 아끼던 신곡을 들려주면서 뮤비 출연을 요청했더니 ‘좋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지금 새 1인 예능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와 ‘신서유기8’에 나온다. 유튜브 ‘규티비’와 게임방송 플랫폼인 트위치 채널도 개설했다. 골수팬들은 “노출이 잦아 ‘덕질’ 떡밥이 너무 많다”며 행복한 고민을 늘어놓는다. 그는 “어떤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라디오스타’ MC로 복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저를 성장시킨 방송이지만 캐릭터 설정상 누군가를 희화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고 설명했다.

‘가늘고 길게.’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인 그의 목표다. “거대한 한 획을 긋고 싶지는 않아요. 좋아해주시는 팬들 곁에 머물면서 가늘고 길게 살아남고 싶습니다. 앞으로 15년은 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어느덧 ‘열성 숭배자’보다 ‘동반자’가 된 팬들에게 그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요즘 시국에 ‘퇴근길’(공연을 마친 뒤 공연장 뒷문이나 주차장 가는 통로에 진을 친 팬들이 배우와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오시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렸어요. 팬들도 저랑 오래 같이 가야죠.”

11월 1일까지, 광림BBCH홀. 6만∼14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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