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위원 대다수 ‘검찰 수사 법리-사실관계 불명확’ 판단한듯

황성호 기자 , 장관석 기자

입력 2020-06-27 03:00 수정 2020-06-27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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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수사중단-불기소 권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26일 수사 중단과 불기소 처분을 의결한 것은 1년 7개월간 진행된 검찰 수사가 균형감과 적정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고, 외부전문가로부터 구성된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까지 받았다. 검찰은 결국 수사를 중단하고, 이 부회장을 기소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10명가량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에 동의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15층 회의실에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위원으로 위촉된 각계 전문가 15명 중 14명의 위원이 참석해 9시간 동안 검찰 수사의 적절성과 기소 타당성을 논의했다.

수사심의위원들은 양측이 제출한 기록 검토와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계속 여부와 기소 여부를 놓고 표결을 했다. 표결에는 위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김재봉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했는데,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에 10명가량의 심의위원이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양측 의견이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이 절반을 훌쩍 넘긴 것이다.

수사심의위는 예정된 시간을 넘긴 오후 7시 50분경 불기소 권고 보도자료를 통해 “과반수 찬성으로 이 부회장,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피의자 삼성물산 주식회사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 “중대범죄 뒷받침할 법리와 사실관계 불명확”
수사심의위의 최대 쟁점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법적으로 합병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를 부풀렸다는 검찰의 수사 내용이 근거가 있는지였다.

수사심의위원들은 이 부회장과 검찰 측 50쪽 분량의 의견서를 자세히 검토한 뒤 양측으로부터 각각 30분가량의 프레젠테이션(PT)을 받았다. 주임 검사인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48·사법연수원 32기), 이 부회장 대면조사를 담당한 최재훈 부부장검사(45·34기), 수사팀에 파견된 의정부지검 김영철 부장(47·33기) 등이 심의위원들 앞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부정한 행위들이 있었고, 여기에 이 부회장이 깊숙이 관여했다”고 주장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이 부회장 측은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21기)과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22기)을 비롯한 대표적 특수통들이 변호인으로 출석했다.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은 이 부회장이 시세 조종과 사기적 부정거래 등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라는 중대 범죄를 적용했다”면서 “하지만 법리와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만약 법원에서 무죄를 받게 되면 국가 사회적으로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법학 교수와 회계 전문가, 변호사,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들 다수는 검찰 측 주장보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 심의위원은 “이 부회장이 지시하거나 보고받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옛 미래전략실 보고서 등을 통해 이 부회장이 관여했다고 주장했지만 심의위원들이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19개월 동안 삼성을 향한 검찰 수사에 외부전문가들이 사실상 경고 카드를 던진 것”이라는 말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놓고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 충격받은 檢, 기소 여부 일정 일단 연기
9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검찰은 26일 사활을 걸고 수사심의위를 준비한 만큼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검찰은 수사심의위가 끝나고 2시간 뒤에야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와 수사심의위 의견을 종합해 최종 처분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짤막한 입장문을 공개했다.

이 부회장 등의 기소 여부를 놓고 검찰로선 셈법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검찰은 수사심의위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이 불기소 권고를 외면하고 기소를 강행했다가 자칫 무죄가 선고될 경우 검찰 조직이 안게 되는 부담과 후폭풍은 상상하기 어렵다. 검찰이 과거 8차례나 수사심의위 권고를 100% 따랐는데, 이 부회장에 대한 권고만 거부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만약 기소를 밀어붙이면 ‘검찰 스스로 만든 수사심의위 제도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초 이 부회장을 기소하는 방침으로 이 사건의 처분 방향을 굳히고 있던 검찰은 예정했던 기소 여부 결정 시점을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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