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랑대사와 제자 왕건… 1100년만의 만남 성사될까
유원모 기자
입력 2018-11-14 03:00 수정 2018-11-14 03:00
12월 4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오전 10시가 되자 법보전에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주본’(국보 제206호)이 꺼내져 나왔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과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심스레 목판을 받아 연(輦·가마)에 실은 뒤 단단하게 묶었다. 행사에선 안전을 위해 복제품을 사용했다.
“삼보님과 천룡들께서는 이운 과정과 특별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가피하소서.”
향적 스님의 고불문이 끝나자 목판은 해인사 일주문까지 이동해 무진동 트럭에 실렸다. 이날 트럭에 실린 문화재는 총 11점. 다음 달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 선보이기 위해 해인사를 나섰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930년경 제작된 이래 처음으로 해인사 밖을 나서는 희랑대사좌상이다. 희랑대사가 그의 제자인 왕건과 무려 1100년 만에 조우를 바라며 나들이를 나서기 때문이다.
‘1100년 만의 조우’란 다름 아닌 북한에서 소장하고 있는 ‘왕건상’과의 만남을 일컫는다. 현재 협의 중에 있으나 ‘대고려전’에 왕건상이 출품될 가능성이 높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대고려전에 북한 문화재를 공동 전시할 것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해 김 위원장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박물관은 북측에 17점의 문화재 대여 희망 목록을 전달했다. 배 관장은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이 실현된다면 남북 교류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희랑대사와 왕건의 인연은 920년대 말 시작됐다. 가야산 일대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혈투를 벌이던 왕건은 해인사를 이끌던 희랑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해인사는 견훤의 편에 섰던 남악파(南岳派)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갈라져 있었다. 희랑대사는 해인사 종파를 통합해 승군을 이끌어 고려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왕건은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전답 500여 결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가야산해인사고적’ 등에 남아있다.
특별전에 앞서 이들은 예비 만남을 가졌다. 9일 고불식을 마치고 서울로 온 희랑대사좌상은 다음 날인 10일 경기 연천군 숭의전지(사적 제22호)로 향했다. 이곳은 왕건 등 고려 임금 4명과 공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고려 황궁이 자리했던 송악산과 직선거리로 불과 2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1100년 만에 제자와 만난 스님은 이날 오후 취타대와 전통 의장대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희랑대사좌상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유일한 목조 승려 초상 조각으로 10세기 중엽 조각 작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건칠(乾漆·여러 겹 삼베를 바르고 옻칠하는 방식) 기법으로 표현됐으며, 우뚝 선 콧날과 잔잔한 미소가 탁월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4일부터 열리는 ‘대고려’ 특별전에서 진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합천=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고려시대 주요 유물의 안전한 이운을 기원하는 고불식이 9일 열렸다. 이날 1100년 만에 처음 해인사 밖을 나서는 건칠희랑대사좌상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서 북한에서 소장 중인 ‘왕건상’과 만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합천=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고려시대 주요 유물의 안전한 이운을 기원하는 고불식이 9일 열렸다. 이날 1100년 만에 처음 해인사 밖을 나서는 건칠희랑대사좌상(오른쪽 사진)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서 북한에서 소장 중인 ‘왕건상’(왼쪽 사진)과 만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합천=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비가 밤새 내린 뒤 청량한 하늘과 마주한 9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 비바람에 떨어진 단풍들이 오히려 가야산 품에 안긴 산사(山寺)의 향기를 더욱 짙게 했다.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장경판전(국보 제52호) 가운데 마당에는 정갈하게 가사를 걸친 스님 30여 명이 법보전(法寶殿)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려목판 일부와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 등 해인사 주요 유물의 안전한 이운(移運)을 부처에게 기원하는 고불식(告佛式)을 위해서다.
오전 10시가 되자 법보전에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주본’(국보 제206호)이 꺼내져 나왔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과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심스레 목판을 받아 연(輦·가마)에 실은 뒤 단단하게 묶었다. 행사에선 안전을 위해 복제품을 사용했다.
“삼보님과 천룡들께서는 이운 과정과 특별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가피하소서.”
향적 스님의 고불문이 끝나자 목판은 해인사 일주문까지 이동해 무진동 트럭에 실렸다. 이날 트럭에 실린 문화재는 총 11점. 다음 달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 선보이기 위해 해인사를 나섰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930년경 제작된 이래 처음으로 해인사 밖을 나서는 희랑대사좌상이다. 희랑대사가 그의 제자인 왕건과 무려 1100년 만에 조우를 바라며 나들이를 나서기 때문이다.
‘1100년 만의 조우’란 다름 아닌 북한에서 소장하고 있는 ‘왕건상’과의 만남을 일컫는다. 현재 협의 중에 있으나 ‘대고려전’에 왕건상이 출품될 가능성이 높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대고려전에 북한 문화재를 공동 전시할 것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해 김 위원장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박물관은 북측에 17점의 문화재 대여 희망 목록을 전달했다. 배 관장은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이 실현된다면 남북 교류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희랑대사와 왕건의 인연은 920년대 말 시작됐다. 가야산 일대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혈투를 벌이던 왕건은 해인사를 이끌던 희랑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해인사는 견훤의 편에 섰던 남악파(南岳派)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갈라져 있었다. 희랑대사는 해인사 종파를 통합해 승군을 이끌어 고려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왕건은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전답 500여 결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가야산해인사고적’ 등에 남아있다.
특별전에 앞서 이들은 예비 만남을 가졌다. 9일 고불식을 마치고 서울로 온 희랑대사좌상은 다음 날인 10일 경기 연천군 숭의전지(사적 제22호)로 향했다. 이곳은 왕건 등 고려 임금 4명과 공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고려 황궁이 자리했던 송악산과 직선거리로 불과 2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1100년 만에 제자와 만난 스님은 이날 오후 취타대와 전통 의장대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희랑대사좌상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유일한 목조 승려 초상 조각으로 10세기 중엽 조각 작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건칠(乾漆·여러 겹 삼베를 바르고 옻칠하는 방식) 기법으로 표현됐으며, 우뚝 선 콧날과 잔잔한 미소가 탁월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4일부터 열리는 ‘대고려’ 특별전에서 진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합천=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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