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W아트 어워즈 입선 최지현씨 “지체장애 넘게 한 미술…새 희망 그려요”
박은서 기자
입력 2018-01-01 03:00 수정 2018-01-01 03:00
강한 척하지만 혼자 물 못마시는 나를 닮은 고양이 자주 그려
붓 떨어뜨리고 먹물 쏟기 예사지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어 가슴 뭉클
새해 대학원 석사과정 도전
2004년 11월 선배 부부네 집들이를 하러 가는 길. 아파트 건물 7층 복도에서 머리를 내밀어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너희 언제 올라올 거야?” 순간 몸이 휘청했다. 굽이 10cm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있는 탓에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며칠 후에야 병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 팔과 다리는 깁스로 칭칭 감겨 있었다. 앞으로 다신 걸을 수 없단 얘길 들어야 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지체장애인 최지현 씨(39·여)의 이야기다. 최근 서울 관악구 개인 화실에서 만난 최 씨는 “당황한 친구들이 쓰러진 나를 큰길로 옮기면서 부러진 뼛조각이 튕겨나가 5, 6번 척수 신경을 잘랐다. 그렇게 지체장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어깨 힘으로 겨우 두 팔을 들 순 있지만 손가락은 쓰지 못한다. 하반신은 아예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미술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붓에 나무막대 네댓 개를 이어붙인 후 손목에 밴드로 이어 그림을 그린다. 분채(粉彩)를 아교(阿膠)에 개어 한지에 작업하는 한국화를 그린다. 최근엔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최하는 장애인 종합미술 공모전 ‘JW아트 어워즈’에서 입선을 하는 등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사고 전 최 씨의 삶은 미술과 거리가 멀었다. 전통무용을 전공한 그는 2000년 전북의 미인대회 ‘사선녀 선발대회’에 나가 진(眞)으로 선발되고, 클럽DJ로도 활동하는 등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사고 후 성격이 점차 변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인 물도 혼자 못 마시고, 불도 못 켰어요. 마음의 병이 생겼죠.”
2010년 잠실 장애인미술 창작 스튜디오를 방문한 게 미술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다. 장애인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최 씨는 “그림 실력이 향상돼 전시회까지 하게 되면 가족들이 뿌듯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 씨 화실에는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유독 많았다. 그가 키우는 고양이가 모델이다. 고양이 이름은 ‘야동(惹動)’. 이끌 야, 움직일 동 자(字)를 써 ‘움직임을 이끈다’는 뜻이란다.
고양이는 곧 그의 ‘페르소나(Persona·작가의 분신)’다. JW아트 어워즈에 출품한 작품에도 손으로 내민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사람이 물을 주지 않으면 혼자 마시지 못해요. 저도 똑같아요. 또 겁이 날 때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 모습이 꼭 강해 보이고픈 내 모습 같더라고요.”
편치 않은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았다. 손에 힘이 없어서 붓을 떨어뜨리거나 먹물을 쏟는 일이 다반사였다. 팔을 정면으로 들 수 없어 몸을 틀어 작업해야 했다. 지난여름엔 유방암으로 붓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미술은 그를 치유했다. “죽고 싶단 생각은 사실 간절하게 살고 싶단 말과 같아요. ‘또 뭘 그려볼까?’라며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서 삶이 능동적으로 바뀌었어요.”
올해 최 씨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곧 서울디지털대 회화과를 졸업하는 그는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곁에선 남편 조남현 씨(42)가 손과 발이 돼 작업을 돕고 있다.
최 씨는 “편하게 살지 그러냐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숨만 쉬고 산다면 그게 사는 걸까 생각한다. 죽지 않고 열심히 산다는 걸 주위에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붓 떨어뜨리고 먹물 쏟기 예사지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어 가슴 뭉클
새해 대학원 석사과정 도전
2004년 11월 선배 부부네 집들이를 하러 가는 길. 아파트 건물 7층 복도에서 머리를 내밀어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너희 언제 올라올 거야?” 순간 몸이 휘청했다. 굽이 10cm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있는 탓에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며칠 후에야 병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 팔과 다리는 깁스로 칭칭 감겨 있었다. 앞으로 다신 걸을 수 없단 얘길 들어야 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지체장애인 최지현 씨(39·여)의 이야기다. 최근 서울 관악구 개인 화실에서 만난 최 씨는 “당황한 친구들이 쓰러진 나를 큰길로 옮기면서 부러진 뼛조각이 튕겨나가 5, 6번 척수 신경을 잘랐다. 그렇게 지체장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어깨 힘으로 겨우 두 팔을 들 순 있지만 손가락은 쓰지 못한다. 하반신은 아예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미술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붓에 나무막대 네댓 개를 이어붙인 후 손목에 밴드로 이어 그림을 그린다. 분채(粉彩)를 아교(阿膠)에 개어 한지에 작업하는 한국화를 그린다. 최근엔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최하는 장애인 종합미술 공모전 ‘JW아트 어워즈’에서 입선을 하는 등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사고 전 최 씨의 삶은 미술과 거리가 멀었다. 전통무용을 전공한 그는 2000년 전북의 미인대회 ‘사선녀 선발대회’에 나가 진(眞)으로 선발되고, 클럽DJ로도 활동하는 등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사고 후 성격이 점차 변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인 물도 혼자 못 마시고, 불도 못 켰어요. 마음의 병이 생겼죠.”
2010년 잠실 장애인미술 창작 스튜디오를 방문한 게 미술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다. 장애인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최 씨는 “그림 실력이 향상돼 전시회까지 하게 되면 가족들이 뿌듯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 씨 화실에는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유독 많았다. 그가 키우는 고양이가 모델이다. 고양이 이름은 ‘야동(惹動)’. 이끌 야, 움직일 동 자(字)를 써 ‘움직임을 이끈다’는 뜻이란다.
고양이는 곧 그의 ‘페르소나(Persona·작가의 분신)’다. JW아트 어워즈에 출품한 작품에도 손으로 내민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사람이 물을 주지 않으면 혼자 마시지 못해요. 저도 똑같아요. 또 겁이 날 때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 모습이 꼭 강해 보이고픈 내 모습 같더라고요.”
편치 않은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았다. 손에 힘이 없어서 붓을 떨어뜨리거나 먹물을 쏟는 일이 다반사였다. 팔을 정면으로 들 수 없어 몸을 틀어 작업해야 했다. 지난여름엔 유방암으로 붓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미술은 그를 치유했다. “죽고 싶단 생각은 사실 간절하게 살고 싶단 말과 같아요. ‘또 뭘 그려볼까?’라며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서 삶이 능동적으로 바뀌었어요.”
올해 최 씨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곧 서울디지털대 회화과를 졸업하는 그는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곁에선 남편 조남현 씨(42)가 손과 발이 돼 작업을 돕고 있다.
최 씨는 “편하게 살지 그러냐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숨만 쉬고 산다면 그게 사는 걸까 생각한다. 죽지 않고 열심히 산다는 걸 주위에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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