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종자 전쟁

민병선 소비자경제부 차장

입력 2016-09-12 03:00 수정 2016-09-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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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소비자경제부 차장
배추가 ‘금추’다. 재배면적이 점점 줄고 있는 데다가 올여름 폭염으로 작황이 나빠져 한 포기에 1만 원이 넘는 배추가 등장했다. 재료값이 크게 오르자 마트에서는 배추김치가 사라졌다. 한국인에게 ‘배추김치 없는 밥상’이 낯설다.

올여름 더위를 보면 ‘이 땅에서 배추를 키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전량 수입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온난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더위에 좀 더 강한 배추 종자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때문에 새로운 곡물과 채소 종자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 세계인의 주식 중 하나인 밀은 고온에 약하다. 밀은 최저 3∼4.5도에서도 재배가 가능하지만 온도가 30∼32도가 넘으면 생육에 지장을 받는다.

인류는 최근 유전자변형작물(GMO)로 식량 소출을 늘려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GMO와 관련된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1993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로버트 등 노벨상 수상자 111명이 환경 운동단체들에 GMO 반대 활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GMO가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 또 GMO가 아프리카 등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GMO의 안전성과 관련한 논쟁이 뜨거운 현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뉴스다.

인류에게는 식량전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30개 이상의 국가가 식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세계 인구의 11%가 굶주리고 있다고 밝혔다. 식량 부족 문제는 식량의 자원화와 무기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의 중심에 종자가 있다. 세계 각국은 종자의 중요성에 주목해 유전자원 선점과 신품종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종자 주권의 사수는 곧 식량 주권의 사수다.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최근 10년 새 두 배 가까이 성장해 현재 약 500억 달러(약 55조 원)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들은 종자 산업에 뛰어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몬산토, 듀폰, 신젠타, 리마그랭 등 상위 10대 종자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좋은 종자가 있었다.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는 유전자변형기술로 밀 품종을 개량하고 세계 기아 문제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개발한 밀 품종 ‘소노라 64호’의 조상이 바로 우리의 ‘앉은뱅이 밀’로 알려져 있다. 소노라 64호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밀이다. 우리 밀이 세계인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종자 주권을 빼앗겼다는 비판이 일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국내 종자분야 1위였던 흥농종묘를 비롯해 4대 종자 기업이 다국적 기업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동부팜한농(현 LG팜한농)이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했던 몬산토코리아의 종자사업을 다시 사들였다. 1997년 국내 종자 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65%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국내 업체의 점유율이 89%로 높아졌다.

정부도 종자 강국 도약을 위한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계획에 따라 정부는 2012∼2021년 4911억 원을 품종 개발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우리가 개발한 ‘제2의 앉은뱅이 밀’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민병선 소비자경제부 차장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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