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감염 위험 없어도 결핵 발생 병원서 왔다고… 신생아 내쫓는 산후조리원

이진한 기자.의사 , 조건희기자

입력 2016-07-22 03:00 수정 2016-11-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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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결핵땐 균 전파 안되는데도 해당 병원서 분만예정인 산모 입원예약 취소시키는 등 과잉대응… 현행법으로는 제재 못해 논란

이달 초 황달이 심한 갓난아이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아실에 맡겼던 산모 A 씨(33). 이 병원 간호사가 결핵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18일 부랴부랴 아이의 결핵 검사에 응했다. ‘음성’이라는 결과에 안도한 것도 잠시, A 씨의 아이가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O산후조리원은 20일 A 씨에게 “아이와 함께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A 씨는 “‘아이가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활동성 결핵 신생아도 아닌데…

21일 질병관리본부와 이대목동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중환아실을 거친 신생아 166명에 대한 집단 조사가 18일 시작된 이후, 조사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산후조리원이 신생아의 입실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활동성 결핵’ 환자가 아니라면 타인에게 결핵균을 전파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근거 없는 공포가 번지는 모양새다.

또 다른 산모 B 씨(31)는 입원해 있던 산후조리원에 아이만 남긴 채 혼자 퇴원해야 했다. 아이는 역학조사에서 결핵 환자가 아닌 것으로 판정됐지만 산모는 감염됐을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B 씨가 임신 초기 이미 결핵 검사를 받았고 출산 후엔 결핵에 걸린 간호사와 직접 접촉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뒤가 안 맞는 조치다. 서울 양천구의 D산후조리원은 한 산모가 아이를 이대목동병원에서 분만할 예정이라는 이유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입원 예약을 취소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당국은 21일까지 이 같은 민원을 4건 접수했고, 실제 피해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열과 기침 등 증상이 나타난 활동성 결핵 환자일 경우에 기침 등을 통해 주변에 결핵균을 퍼뜨릴 수 있다. 하지만 결핵균에 감염됐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잠복 결핵’ 보균자라면 결핵균이 전혀 전파되지 않는다. 결핵균이 폐가 아닌 림프샘(임파선)이나 내장에 숨어 있어 체외로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 “‘입원 거부’ 조리원 제재해야”

그런데도 산후조리원들이 결핵에 과민 대응하는 것은 활동성 결핵과 잠복 결핵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결핵 산후조리원’ 사건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과 8월 대전 서구와 서울 은평구의 산후조리원에서 간호조무사 2명이 각각 결핵 판정을 받아 신생아 501명이 집단 조사를 받았다. 당시 활동성 결핵이 생긴 신생아는 없었고, 잠복 결핵은 50명으로 나타났다. 이후 당국이 산후조리원 종사자의 건강관리 의무 수준을 높이는 등 감염병 관리 기준을 강화하면서 업계에선 ‘결핵’이라는 단어만 언급돼도 입원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산모와 아이의 입원을 임의로 거부하면 산후조리원을 제재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모자보건법과 공정거래위원회 ‘산후조리원 표준약관’엔 산후조리원의 부당한 입원 거부를 막을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일단 “감염 위험이 없는 신생아는 입원을 거부하지 말라”는 협조 공문을 전국 산후조리원에 보낼 계획이다. 엄중식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결핵 예방·치료 정책은 강화하되 비과학적인 공포심은 줄일 수 있도록 결핵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적극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21일까지 이대목동병원이 결핵 간호사와 접촉했던 신생아 166명 중 150여 명(90.4%)을 검사한 결과 활동성 결핵 환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진한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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