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사장의 ‘뉴 효성’ 전략

배수강 기자 |

입력 2015-09-08 14:03:00 수정 2015-09-08 1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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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9월호/대한민국 재계3세 집중탐구]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미래 먹을거리 차곡차곡
● 탄소섬유, 폴리케톤, 핀테크… ‘내일’ 대비
● 생맥주 ‘번개’, 백팩 메고 지하철 타며 소탈 행보
● 효성은 평생직장…‘사직 만류’ 가장 힘들어
● 중국업체 추격, 재판, 사업분할 등은 과제


지난해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 대전력망 학술회의(CIGRE)에 참석해 글로벌 전력기관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조현준 사장.
5월 14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조현준 효성 사장이 연단에 오르고, 연단에 설치된 스크린에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자 참석자들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제 딸은 ‘키티’를, 아들은 ‘뽀로로’를 좋아합니다. 양국 관계도 아이들처럼 서로의 문화를 고정관념 없이 존중하는 순수한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한 제47회 한일경제인회의. 조 사장은 양국 정·재계 인사 500여 명 앞에서 ‘미래세대가 본 한일 미래상과 협력 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9년간 한일경제인협회장을 맡아 온 아버지 조석래 회장에 이어 지난 3월 부회장을 맡았다.

조 사장은 일본 만화 ‘시마 과장’과 한국 드라마 ‘미생’, 양국 회식문화 등을 소개한 뒤 “제가 두 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해보니 조직문화가 비슷하더라”며 “문화적 공감대가 강한 청년들의 교차취업 등 일자리 교류 방안을 찾자”고 제안했다.

일본어를 못하는 후배가 일본인 친구와 ‘라인 번역기’를 통해 저녁약속을 잡는 사연을 소개할 때는 박수와 폭소가 터져 나왔다. 경북 구미에 탄소섬유 생산시설을 지은 일본 도레이사의 성공 스토리를 전한 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하나하나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은 창조경제를 위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일본 기업이) 투자 의사만 있다면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성공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일본通


조 사장은 미국 세인트폴 고교와 예일대 정치학과(학사),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부(석사)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미쓰비시 상사와 모건스탠리 법인영업부에 근무한 ‘미국·일본통’. 1997년 효성 T·C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한 뒤 전략본부 부사장(2003년)과 섬유PG장 겸 무역PG장(2007년)을 거쳐 2011년부터 섬유·정보통신PG장 겸 전략본부장(사장)을 맡고 있다.

효성은 고(故) 조홍제 회장이 ‘산업입국(産業立國)’ 정신을 바탕으로 1966년 창업해 스판덱스(의류에 들어가는 신축성 원사), 타이어코드(타이어 내구성을 높이는 섬유 보강재), 에어백 원단 GST 등 세계시장 1위 제품을 다수 만들어내며 급성장했다. 창립 50년 만에 27개국 70여 개 법인·지점에서 2만5000여 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변신의 중심에는 화학공학도인 조석래 회장과 정치학도 조현준 사장이 자리한다.

조 사장이 입사한 1997년은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살얼음판을 걸을 때였다. 효성도 대대적 조직개편을 포함한 경영혁신에 나서야 했다. 효성 T·C, 효성생활산업, 효성물산, 효성중공업 등 4개 회사를 (주)효성으로 합병하고, 사업조직을 섬유, 화학, 중공업, 정보통신, 무역부문 사업그룹(Performance Group, PG)으로 나눴으며, 그 아래에 사업부(Performance Unit, PU)를 둬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했다.

“4개 회사를 합치다보니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의사소통에 혼선이 생겨 사업구역을 정해야 했다. 당시 기업들은 대개 사업부문 개념인 BU(Business Unit) 체제였지만, 나는 업무 성과(Performance)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돌발상황 대처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홈쇼핑 TV 보여주며 설득

조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조석래 회장은 조직개편을 단행한 뒤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했다.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핵심 산업에 집중 투자한 것. 비주력 사업은 매각하거나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이어갔다. 효성의 한 임원은 이렇게 당시를 떠올렸다.

“조직개편이 끝나자 조 사장은 곧장 스판덱스를 들고 세계시장 공략에 나섰다. 1999년 ‘C(China)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고, 섬유PG장을 맡은 2007년 이후에는 베트남에 세계 최대 공급능력을 갖춘 생산시설을 갖췄다.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기지를 만든 것이다. 2008년에는 유럽 시장을 겨냥해 터키에, 2011년에는 남미 시장을 노리고 브라질에 공장을 세웠다. 브라질에서는 생산체제 구축 2년 만에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했다. 효성이 올해 상반기 최대 실적을 낸 것도 그때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은 덕분이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섬유산업에 왜 투자하느냐는 비판도 거셌다고 한다. 그러나 조 사장은 스판덱스가 캐시카우가 될 때가 올 거라고 확신했다. 효성의 또 다른 임원의 설명은 이렇다.

“화섬산업은 장치산업이라 투자 규모도 크고 기술력도 갖춰야 한다. 더욱이 중국산 저가제품 공세에 고전한 터라 이익 창출이 불분명한 스판덱스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어느 날 임원과 전문가들로부터 이런 의견을 듣던 조 사장이 갑자기 TV를 켰다. 운동기구를 판매하는 홈쇼핑 TV였다. ‘웰빙, 운동, 건강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스판덱스 수요는 분명히 증가할 것이다. 청계산 등산객들도 이제 스판덱스 등산복을 입고 다니더라. 쫙 달라붙는 스판덱스를 한번 입어보면 헐렁한 옷은 절대 못 입는다’라고 하더니 ‘투자’로 결론지었다. 미래 소비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은 거다.”

1992년 세계에서 4번째로 스판덱스 자체 개발에 성공한 효성은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리고 해외 투자를 늘렸다. 결국 8년 만인 2010년 세계시장 1위로 올라섰다. 2011년 1조9060억 원이던 매출액(영업이익 1062억 원)이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647억 원(영업이익 2189억 원)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 면 올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효성은 2020년까지 29만t 생산능력을 갖춰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한다는 계획이다.


탄소섬유 種子 심는다


효성의 대표적인 현재 먹을거리가 스판덱스(제품명 ‘클레오라’)라면 미래 먹을거리는 탄소섬유와 폴리케톤이다.

탄소섬유는 탄소를 92% 이상 포함한 섬유로, 무게는 철의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10배 이상이다. 2011년 국내 최초로 개발에 성공해 2013년부터 ‘탄섬’이라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은 낚싯대나 골프채 샤프트, 등산 스틱, 비행기 날개 등에 많이 사용되지만, 향후 그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11월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주 친환경복합산업단지에 연 것도 탄소섬유가 지역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미래 먹을거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조 사장의 분석은 이렇다.

“현재 탄소섬유는 철강보다 8배 정도 비싸다. 기술혁신을 통해 가격차이가 3배 정도로 떨어지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비행기나 자동차는 무게를 줄여야 연비가 좋아지는 만큼, 고유가 시대의 총아가 되리라 본다. 소재산업은 1조 원을 투자하면 전후방 산업 육성 효과가 커 10조 시장이 된다. 우리는 탄소섬유의 종자(種子)를 심는 것이고, 훗날 그 열매를 함께 따 먹으려면 많은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자동차, 선박, 골프채 제조업체 등이 탄소섬유를 써보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2013년 독자 기술로 세계 최초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한 폴리케톤에 거는 기대도 크다. 폴리케톤은 올레핀(에틸렌, 프로필렌)과 일산화탄소를 가공해 만든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로, 폴리케톤을 적용한 플라스틱 시장은 66조 원 규모에 이른다. 폴리케톤 외에도 효성은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미래 먹을거리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사물인터넷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는 ‘효성 ITX’와 간편결제서비스인 ‘갤럭시아페이’를 출시한 갤럭시아컴즈도 그런 ‘미래의 도토리’다. ATM(자동입출금기) 제조회사가 ATM 시대 이후의 핀테크(Fintech, IT 기반 금융 기술) 시대를 대비한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섬유부문과 함께 주력제품인 ATM의 현지화 전략도 조 사장이 지휘하고 있다. 1998년 미국에 ATM을 수출하기 시작한 후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2013년 기준 미국 내 시장점유율 28.7%를 차지하면서 1위에 올랐다.

효성의 이러한 약진은 조 사장의 글로벌 감각과 인적 네트워크에 힘입은 바 크다. 스판덱스를 최초로 개발한 듀폰사는 효성이 시장점유율을 높이자 한때 적대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그러던 듀폰사의 태도가 어느 날 확 바뀌었다. 조 사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 연유를 들려줬다.

“고교(미국 세인트폴)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함께한 친구가 듀폰가(家) 자제인데, 평소 나와 효성에 대해 아버지께 좋게 말씀드렸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듀폰가가 나서서 듀폰 CEO에게 ‘효성과 협력하라’고 당부했다고 하더라. 이후 듀폰사와 툭 터놓고 대화했고, 스판덱스 사업에 대한 우리의 의지가 강한 걸 알고는 스판덱스 부문을 팔아버렸다(웃음).”


수출기업 CEO의 글로벌 감각


조 사장의 지인인 아르만드 하르트노 인도네시아 BCA(Bank Central Asia) 부행장은 효성과 ATM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효성은 인도네시아 ATM 시장의 40%를 차지하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효성은 수출이 80%를 차지하는 회사다.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외국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각국 환율이나 유럽, 중국의 경제상황, 유가 등을 모두 체크해야 한다. 판단을 하려면 제대로 된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를 얻으려면 해외 인적 네트워크가 정말 절실하다.”

세계시장의 흐름에 대한 식견과 인적 네트워크가 조 사장의 ‘외치(外治)’를 떠받친다면 내치(內治)를 돕는 것은 덕(德)과 배려인 듯하다. 조홍제 창업주는 함안 조씨 세거지인 경남 함안군 동촌리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운 선비였다. 장손인 조 사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조부 집에서 자라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가 ‘위정이덕(爲政以德)’을 경영철학으로 삼은 것도 할아버지의 경영철학인 ‘숭덕광업(崇德廣業)’을 실천하는 방법론이다. 이정원 효성 상무는 ‘효성인상’ 얘기를 꺼냈다.

“업무 성과를 낸 임직원에게 주는 ‘효성인상’은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상이다. 성과가 기준이다보니 과거엔 주로 영업과 생산 종사자에게 돌아갔는데, 조 사장은 연구·지원부서 직원들도 받을 수 있도록 시상 부문을 확대했다.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 직원들도 배려한 거다. 동반성장이 중요하다며 1000여 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협력업체상도 신설했다.”

분홍색 목줄이 달린 사원증을 임신한 여직원에게 나눠줘 누구든 분홍 목줄을 건 직원이 보이면 배려하게끔 한 것도 조 사장의 ‘배려 아이디어’다. 특히 ‘효성ITX’는 여성들의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 여성들이 입사하고 싶은 대표적인 회사로 꼽힌다. 전체 임직원 6500명 모두 ‘정규직’인 데다가 여성 직원 비율이 80%가 넘고, 매년 400명 이상이 출산·육아휴직을 실시하고 있어, 고용노동부의 남녀고용평등우수기업 장관상, 일자리 창출 대통령상을 받았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이 회사에 입사했다면 정규직이 됐을 것”이란 우스개가 돌 정도다. 그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이런 ‘배려’를 실천하고 있을까.

“중학생, 초등학생인 딸들과는 휴일에 미술관에 가거나 스쿼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늘 겸손하고 어른을 공경하라고 강조하는데, 좋은 아빠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딸들 교육은 주로 엄마가 맡고 있고, 나는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이다(웃음).”

의전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고 실무자들과는 직접 만나 공개 토론을 하고, 직원들과는 ‘생맥주 번개’를 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한다. 해외출장을 가서는 백팩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는 게 효성 관계자의 귀띔이다.


조현준號의 과제

효성 관계자는 “늘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열심히 일하시라’고 한다. 직원 처지에선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조 사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회사는 평생직장이어야 한다. 효성에 입사했다면 ‘영원한 효성맨’으로 같이 회사를 키우고 성과를 나누면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좋은 분을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하는 것보다 마음이 떠난 분의 퇴사를 말릴 때가 더 힘들다. 외부에서 모셔온 분도 ‘외인구단’으로 보지 말고 함께 평생직장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조현준호(號)’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 후발업체들의 저가 제품과 차별되는 기능성 제품을 꾸준히 내놓아야 하고,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 탄소섬유 클러스터도 만들어야 한다. 조석래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그 결과도 지켜봐야 한다. 2남 조현문 전 부사장과의 관계 개선, 막내 조현상 부사장과의 사업분할도 과제로 남아 있다.

조 사장은 “과거엔 5년에 한 번쯤 오던 변화의 흐름이 이제는 매년 닥쳐온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키울 것”이라며 “가족의 화목을 위해 장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 아버지 생전에 동생과 화해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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