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3.0 시대로]FTA 3.0 시대… 중견-신흥국까지 경제영토 확장

동아일보

입력 2012-06-22 03:00 수정 2012-06-2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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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멕시코-베트남 등과 동시다발 추진… 死角 없애

지난해 현대·기아자동차는 멕시코에 9438대의 자동차를 수출했다. 시장 점유율은 1.04%로 캐나다(12.2%) 칠레(11.9%) 미국(7.7%) 등 미주 대륙의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멕시코는 매년 100만 대의 자동차가 팔리는 주요 시장이지만,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못한 한국은 30%의 고율 관세를 부담해야 하고 현지법인은 아예 세울 수도 없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연간 5만∼6만 대는 거뜬히 수출했지만 미국, 일본, 유럽이 멕시코와 FTA를 체결한 뒤로는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멕시코, 캐나다와 FTA 협상 재개를 약속한 것을 계기로 중견국과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다는 FTA 신전략을 세웠다. 2000년대 초반 칠레, 싱가포르 등과 FTA를 맺으면서 FTA 시대의 서막을 올린 것이 ‘FTA 1.0’, 지난해와 올해 미국, 유럽연합(EU) 등 양대 거대 경제권과 FTA를 발효하며 경제영토를 확장한 것이 ‘FTA 2.0’이라면 이제는 멕시코 캐나다 등 무역규모가 10위권 밖에 있는 중견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 중국 일본 등 이웃 거대시장과 FTA를 맺어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를 커버하는 ‘FTA 3.0’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이다. 22일로 발효 100일을 맞는 한미 FTA와 7월 1일로 발효 1주년이 되는 한-EU FTA가 정상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는 ‘FTA 3.0’ 전략으로 새로운 통상지도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하반기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과 FTA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콜롬비아와는 이 대통령의 23일 현지 방문을 계기로 협상을 마무리 짓고 하반기에 국회에서 비준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국가들과의 FTA 논의에 다시 불씨를 지펴야 한다”며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 ‘FTA 드라이브’로 美-유럽發 글로벌 위기 넘자 ▼

중국과는 7월 2차 한중 FTA 협상에 나서고, 일본과는 20일 한중일 FTA 첫 사전 실무협의를 마쳤다.

정부가 한꺼번에 여러 나라와 FTA를 추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FTA 지각생인 한국이 살길은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펴는 것”이라며 세계 주요국들과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 EU 등 세계 최강대국과의 협상에 집중해야 했고, 나머지 국가들과는 협상에 나설 여력이 부족해 중견국들과의 FTA 협상은 2008년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미국, EU와의 FTA로 단숨에 FTA 선진국으로 부상한 한국이 이번엔 중견국과의 FTA 추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규모만으로는 미국, EU와 비교하기 어렵지만 우리와 FTA를 추진하는 국가들 중에는 급격하게 시장이 커지는 곳이 많아 ‘FTA 3.0’ 전략의 실익은 의외로 클 수 있다.


○ 선진국 경제 침체에 중견국이 돌파구

유럽과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이지만 중견국들과 신흥국은 위기에서 한 발짝씩 비켜 있는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3.9%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멕시코가 올해와 내년 각각 3.6%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향후 수년간 5∼6%의 고성장을, 캐나다와 호주는 2∼3%로 선진국 중에선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의존도가 높고 무역이 거대 경제권에 집중된 한국은 경제위기에 따른 악영향이 크다”며 “선진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FTA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중견국과의 FTA 추진은 필수라는 지적이 많다. 멕시코만 해도 일본, 미국, EU가 모두 FTA를 체결해 무관세로 들어가지만 한국은 시장진입조차 여의치 않다. 캐나다는 3월 일본과 FTA 협상을 시작했는데, 일본이 먼저 FTA를 체결하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가전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이미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FTA가 있지만, 관세 예외 비중이 30.9%나 돼 개별 나라들과의 별도 FTA를 통해 보완해야 하는 실정이다.

날로 커지는 한국 시장을 노리고 FTA 체결을 원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한미, 한-EU FTA 발효로 한국 시장에서 미국, EU산에 비해 이들 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뒤지게 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FT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선진국 제품들이 무관세로 한국에 들어오고 있어 중견국들이 FTA 없이 한국에 진출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 ‘농업피해만 늘 것’ 지적도

중견국과의 FTA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EU는 세계 1, 2위의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가 농축수산업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공산품을 팔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논리가 통했지만, 중견국의 경우 현지 시장에서 얻을 이익은 크지 않은 반면 농산물 개방에 따른 피해가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호주는 자동차 시장을 양보할 테니 쇠고기와 낙농품의 개방을 한미 FTA 수준으로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40%의 관세가 붙는 지금도 호주산 쇠고기의 한국시장 점유율이 49%로 1위인 상황에서 관세가 철폐되면 미국산 쇠고기 개방 때보다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FTA 체결로 호주 현지 자동차 판매는 3만 대 안팎의 증가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에 대해 김형주 연구위원은 “중견국에 시장을 개방해도 이들의 농산물은 국내에 들어온 미국, 유럽산과 경쟁하지 국산과 맞붙지 않는다”며 “수입품끼리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 이익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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