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선제적 설비투자’ 빛봤다

김성규기자

입력 2017-10-24 03:00 수정 2017-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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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유시설 태풍피해에 수요 몰려… 3분기 영업이익, 2분기 2배 넘을듯
저유가 굴하지 않고 지속적 투자… 올해 5억배럴 수출 신기록 예고


국내 정유업체들이 정유업계의 전통적 비수기인 3분기(7∼9월)에 실적 고공행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 등 경쟁국에 발생한 천재지변과 사고 등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미리 시설 투자를 해둔 덕을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의 3분기 영업이익은 2조2000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9780억 원이었던 2분기에 비해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보통 3분기는 정유업계의 대표적인 비수기다. 자동차 연료를 많이 쓰는 여행철이 지난 데다 겨울철 난방유 수요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이어서다. 실제 지난해 2분기(4∼6월) 정유 4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2조1198억 원이었지만 3분기에는 5605억 원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대표적 정제마진 지수인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분기 배럴당 4∼5달러 정도였지만 3분기에 6∼7달러 수준으로 오히려 더 올랐다. 한국은 석유가 나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서 원유를 들여오는 가격과 원유를 정제한 휘발유 경유 나프타 등 제품의 가격 차인 정제마진에 따라 실적이 결정된다.

정제마진이 오른 것은 8월 미국 내 정제설비의 30%가 몰려 있는 텍사스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이 컸다. 엑손모빌과 아람코 등 세계적 정유회사들의 설비가 타격을 입어 정제설비 가동률이 96.6%에서 77.7%까지 내려갔다. 여기에 더해 7월과 8월 유럽 최대 정유사 셸의 네덜란드와 미국 설비에서 화재가 났고 비슷한 시기 중국 다롄(大連)에 있는 페트로차이나 공장에서도 불이 났다.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느라 설비에 무리가 가거나 누전이 발생한 것이 원인이었다.

선제적으로 고도화 설비 투자를 해온 국내 업체들의 노력도 결실을 보고 있다. 2014년 저유가가 시작돼 수익성이 낮아지자 설비 투자를 줄인 해외 업체들과 달리 국내 업체들은 설비 투자를 이어갔다.

에쓰오일이 2015년부터 울산공장 시설 개선 사업을 진행하며 고도화 탈황 시설을 개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에쓰오일은 5월 부가가치가 낮은 잔사유 원료를 프로필렌과 휘발유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꾸는 고도화 시설 건설에 들어갔다. 국내 최대 정유·화학산업단지인 SK이노베이션의 울산콤플렉스는 올해 7월 일본 경제지 닛케이비즈니스로부터 모범사례로 소개됐고, GS칼텍스도 2010년대 들어 중질유 분해시설을 확충해 놓은 덕에 하루 27만4000배럴의 국내 최대 고도화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덕분에 2015년부터 석유제품 수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업계는 올해도 신기록을 예고하고 있다. 상반기에만 2억2900만 배럴을 수출해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5억 배럴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고도화 시설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고 각국의 환경 규제도 피해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에 필수인 시설 대형화에 실패해 정유업이 쇠락하고 있는 일본이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설비를 줄인 뒤 석유 수입량을 늘리고 있는 호주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하지만 유가가 앞으로도 안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특히 올해 들어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걱정이다. 이에 정유사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화학 및 윤활유 사업으로 사업 구조를 다양화하고 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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