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한우신]청년들이 ‘제대로 살기’ 위해선
한우신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2-18 03:00 수정 2019-02-18 03:00
한우신 사회부 기자
23.2년. 도시근로자 평균 연봉으로 평균 가격의 서울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런 발표가 나올 때마다 한숨 섞인 반응이 쏟아진다. 2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 소득을 한 푼도 안 썼을 때를 가정한 계산임을 생각하면 한숨은 이내 좌절이 된다. 평균 연봉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을 받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나 취업준비생 같은 청년들은 더욱 좌절한다.소득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집값. 정부와 정치권이 주택 문제, 특히 청년 주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기에 맞춰져 있다. 해법은 ‘주택을 싸게 공급하는 방법’으로 모인다. 청년을 위해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 주거 정책의 핵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주거 안전, 사회관계망 형성 등 ‘제대로 살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물리적 공간 말고도 많다.
지난달 만난 한 청년은 “정부와 정치권은 값싼 주택을 많이 짓기만 하면 청년 주거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청년 8명이 모여 사는 공유주택에 거주한다. 그들이 가진 돈은 적지만 제대로 살기 위한 방법으로 공유주택을 선택한 핵심 이유는 주거 안전이었다. 이들은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을 위해 지하철역부터 집까지 동행하는 등 일상에서 협력해 서로의 안전을 도모한다. 원룸이나 옥탑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거 안전은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원룸형 주택을 지을 때 쉽게 간과된다. 많은 청년, 특히 여성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주거 환경에 큰 불안감을 느낀다. 첨단 보안설비가 잘 갖춰지고 경비원도 있는 고가의 아파트 단지라면 주거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런 곳에서 산다면 안전은 물론 사회관계망도 탄탄해질 것이다.
청년들은 그런 곳에서 못 산다 하더라도 안전이나 사회관계망 같은 요소들이 주거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책 설계의 기본은 수요자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청년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한 주거 정책이 점점 생겨난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주택도시공사와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기금이 함께 출자해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리츠를 출범시켰다. 공공이 매입한 토지에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주체가 거주민들의 안전과 유대를 보장할 수 있는 공유주택을 비롯한 다양한 거주 형태의 주택을 짓는다.
주거뿐만 아니다. 핵심 청년 정책이 양적인 패러다임에 매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을 때 공사와 서울시는 “정규직 전환은 시대의 소명”이라고 주장했다. 의혹을 제기한 야당도 “정규직 전환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를 지켜본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말했다. “모두가 정규직인 사회가 아니라 비정규직이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것 아닌가. 과감하게 창업하고 해외로 나가라고 하면서 왜 정규직만 정답이라고 하는지….” 사는 형태와 공간 크기는 달라도 각자가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우신 사회부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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