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욕탕 3곳중 1곳, 제천처럼 불나도 대피 못해

황태호기자

입력 2018-01-03 03:00 수정 2018-01-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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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319곳 불시 조사해보니
비상구 막거나 장애물 방치… 목재 방화문에 유도등 철거한 곳도


서울 시내 한 목욕탕의 소화전 앞에 각종 식품자재가 쌓여 있다. 불이 나면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방치돼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 시내 목욕탕과 찜질방 3곳 가운데 1곳꼴로 비상통로가 막혀 있거나 소화전 앞에 물건을 쌓아놓는 등 화재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 때 2층 여성사우나 비상구로 통하는 통로가 선반으로 가려져 20명이 숨진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적발됐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달 22∼28일 시내 목욕탕과 찜질방 319곳에 대해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한 결과 120곳에서 법규 위반사항 330건을 적발했다고 2일 밝혔다. 사전 예고 없이 소방공무원 144명이 2인 1조로 영업하고 있는 사업장을 특별조사한 결과다.

조사 결과 비상구로 통하는 피난통로에 장애물을 방치하거나 합판으로 가로막아 불이나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피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도록 돼 있는 사업장이 38곳이었다. 피난통로가 고정 칸막이로 막혀 있거나 비상구 앞에 물건을 놔둬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건물 관리인조차 비상구가 왜 열리지 않는지를 모른 채 방치된 곳도 있었다.

대피통로 겸 불길과 연기를 막는 역할을 하는 방화문에 덧문이 설치돼 사용이 어렵거나 화재에 취약한 목재로 교체한 경우도 8건 적발됐다. 방화문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방향으로 밀어서 열도록 해놓아야 한다. 그러나 덧문은 당겨서 여는 구조로밖에 달 수가 없다. 불이 났을 때 사람이 몰리면 당황해서 문을 열지 못할 우려가 높다.

한증막이나 탈의실에 비상구 유도등이 설치돼 있지 않거나 철거한 곳은 8건, 유도등이나 스프링클러 작동 상태가 불량한 곳은 269건이나 됐다. 화재감지기를 비닐로 감싸둔 채 아예 사용을 못하게 하거나 실내 소화전 앞 공간에 물건을 쌓아놓아 화재 시 사용하기 어렵도록 해둔 곳도 있었다.

이번에 적발된 사업장 중에는 동네 소규모 사업장뿐만 아니라 수백 명이 한 번에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여서 관광객도 즐겨 찾는 찜질방도 포함됐다.

정문호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은 “목욕탕이나 찜질방은 내부가 여러 용도로 나뉘어 있어 불이 나 연기가 차면 피난통로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대피로와 유도등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대형 인명 피해가 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적발된 46곳에 대해 해당 사업장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설물 74곳의 원상복구 조치명령을 내렸다. 필로티(외벽 대신 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 주차장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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