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기약 없어…‘범죄’ 알지만 中서 1억 주고 콩팥 이식

조건희기자

입력 2017-09-11 03:00 수정 2017-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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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원정 장기이식 실태 첫 확인

“장기매매가 도리에 어긋나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란 건 압니다. 하지만 너무 아프고 절박해서….”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희귀성 신부전 환자 A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A 씨는 9년 전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장기매매 브로커에게 1억 원을 주고 한 중국인의 콩팥을 이식받았다. 장기를 줄 가족이 없는 데다 조건에 맞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절망감과 이틀에 한 번꼴로 받는 혈액투석 시술의 괴로움 탓에 중국행을 택했다.

안형준 경희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국제학술지에 공개한 논문 ‘한국인의 원정 장기이식 경향’에 따르면 A 씨처럼 해외 원정 이식 수술을 ‘마지막 선택’으로 삼은 콩팥·간 질환 환자는 2000년 이후 2206명이었다. 콩팥을 이식받으려 대기 순번에 이름을 올려도 평균 5.2년(2015년 기준)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고, 한 해 520명(지난해 기준)은 대기 중 숨지기 때문이다. 간 이식 대기 기간은 평균 267일로 콩팥보다 짧지만 이는 증상이 더 빨리 악화되기 때문이다. 간 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663명.

중국 내 장기매매 알선은 주로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인 브로커가 이식 대기자 커뮤니티로 꾸민 알선 사이트를 만들고, 접촉해 오는 환자들에게 원정 이식을 권유하는 식이다. A 씨도 온라인 카페에서 브로커를 알게 됐다.

수술은 베이징(北京)과 정저우(鄭州) 등 대도시 외곽의 외과병원에서 이뤄진다. 이식 대기 환자는 호텔에서 기다리다가 “‘헬리콥터’ 떴습니다”라는 브로커의 연락을 받으면 수술실로 달려간다. 헬리콥터는 장기 적출 공여자의 시체를 뜻하는 은어로, 심장(HEart), 간(LIver), 각막(COrnea), 췌장(Pancreas), 힘줄(TEndon), 망막(Retina)의 앞 글자를 땄다.

환자는 장기의 출처를 알 수 없다. 다만 사형수의 장기를 몰래 적출해 거래하는 중국 내 관행은 국제 이식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교통사고 등으로 뇌사에 빠진 공여자의 장기는 이식 수혜자가 중국인인 것처럼 서류를 꾸민 뒤 이식한다. 공식적으로는 ‘중국인 사이의 이식’으로 기록된다. 장기 1개당 비용은 2000년대 중반 40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제재가 강화되면서 8000만∼1억6000만 원으로 뛴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이식술 수준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고난도 수술 실력이 떨어지고 감염 관리에 취약해 합병증 발생 위험이 더 크다고 한다. 2006년 대한이식학회가 일부 원정 이식 수술 환자를 조사한 결과 합병증 발생률은 콩팥 이식 시 42.5%, 간 이식 시 44.7%로 국내 수술(5% 수준)보다 훨씬 높았다. 치료 환경이 비위생적이고, 수술 후 충분히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귀국해야 하는 탓으로 파악된다.

안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원정 장기이식 환자는 2004∼2006년 총 1275명으로 최고조였다. 같은 기간 국내 합법 뇌사 이식(846명)보다도 많았다. 그러다 2014∼2016년엔 35명 수준으로 줄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이식 대기자는 2007년 1만5898명에서 지난해 3만286명으로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에 따라 해외 원정 이식의 수요가 국내로 돌아오는 ‘풍선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하철역이나 버스, 터미널 화장실 등 스티커·명함 형태의 불법 게시물은 2013년 1128건에서 2014년 955건으로 소폭 줄었지만 온라인 게시글 적발 건수는 2011년 745건에서 2014년 1237건으로 크게 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적발한 온라인 장기매매 알선 글도 2011년 54건에서 2015년 157건으로 급증했다.

안규리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대한이식학회 이사장)는 “장기매매를 근절하려면 생명 나눔의 중요성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해 자발적인 기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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