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병원에 맡겨 둔 죽음을 찾아오자
김재호 과학평론가·재능대 특임교수
입력 2018-05-29 03:00 수정 2018-05-29 08:45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재능대 특임교수1991년 4월, 일본 도카이대의 한 의사가 58세의 말기 다발성 골수종 환자에게 안락사 조치를 했다. 환자는 호흡곤란 등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치료 중단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안락사 관련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몇 년 후 법원은 이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이유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조건, 즉 극심한 고통에 대해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했는지, 죽음이 정말로 임박했는지, 환자가 평상시에 안락사를 원했는지 등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자와 가족은 원하는 죽음을 얻었지만 의사는 죄(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16년 12월, 일본의 드라마 ‘오싱’으로 유명한 방송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나는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글을 한 잡지에 투고한다.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건너가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치 구들 박사처럼 말이다. 90세를 넘긴 하시다는 평안하게, 즐겁게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고 싶다고 항변했다. 하시다는 작가답게 죽음에 대해 개인적 차원에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생명의 차원에서 유일한 평등임을 강조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노인 의료비 부담과 저출산의 연관성 문제 등을 논했다. 실제로 일본은 치솟는 고령자 의료보험비와 더불어 간병인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이 노인을 간병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대학원 시절 분석철학을 공부하던 한 동료는 “죽음은 죽는 자에게 나쁜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죽는 자 혹은 죽은 자에게 죽음의 호불호가 있겠느냐마는 죽음의 과정에선 분명히 좋고 나쁨이 결부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 어떤 죽음이 바람직하겠느냐는 분명히 주관적 의사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가족 혹은 작은 공동체(사회)의 일이긴 하나 가장 개인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죽음의 방식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다. 죽는 자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고 때론 좋을 수도 있다. 사람은 생존해 있는 동안은 삶에 대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면 죽음을 더 고민하고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한다. 안락사는 자발적 의지가 반영되는 죽음이다. 조력자살은 의사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존엄사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빈곤이 죽음과 동의어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대부분 죽음을 원하는 말기 환자들, 더 나아가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부담이 그 원인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65세 이상 어른 1만299명을 대상으로 한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노인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여기며, 살아갈 희망이 없는 노인들에 대해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죽음을 병원(의사)에 위임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의 힘이 막강해지면서부터이다. 죽음을 관장하던 미신이나 종교로부터 죽음의 전권이 데이터로 무장한 의료기술 시스템으로 넘어간 것이다. 죽음은 항상 내 안이 아닌 내 밖의 무언가로부터 지배당했다. 죽음이 나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2014년 겨울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데스’ 3부에선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된다. 7세 남녀 어린이, 각 20명을 A, B집단으로 구분해 한쪽은 죽음에 대해 들려줬다. 다른 쪽은 평상시처럼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그러고 나서 A, B집단별로 2명씩 짝을 지어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상대편 사탕을 가져오거나 줄 수 있는 게임을 했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이 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사탕을 주면 +1점, 사탕을 빼앗으면 ―1점으로 점수를 매겼더니 죽음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집단은 반대 집단에 비해 평균점수가 3배가량 높았다.
또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영상 유언장을 남긴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실험을 보면 전자가 훨씬 더 상대방과 잘 협력했다. 즉, 죽음을 일상에서 얘기해야 더욱 건강한 사회, 좋은 삶이 가능하다. 결국 좋은 죽음이 좋은 삶과 사회를 위한 조건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재능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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