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임금삭감 없는 주 4일제 도입” vs 재계 “시기상조”

홍석호 기자 , 곽도영 기자

입력 2023-06-24 03:00 수정 2023-06-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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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물꼬 튼 주 4일 근무제 산업 전반 확산할까
대기업도 주 4일 근무제 실험
삼성전자, 23일 첫 ‘쉬는 금요일’
SK ‘해피 프라이데이’ ‘집중근무제’



《‘주 4일 근무’ 자리잡을 수 있을까


삼성 SK 등의 이른바 ‘쉬는 금요일’ 도입으로 직장인들이 들썩이고 있다. 필수 근무시간을 채우면 하루 더 쉬도록 설계한 제도인데, 이를 ‘주 4일제를 위한 실험’으로 바라보면서다. 샐러리맨들의 꿈은 과연 현실이 될까.》







#SK하이닉스 직원 A 씨는 지난해부터 로드바이크(빠른 속도를 내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서울에서 강원 춘천시까지 로드바이크를 타고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A 씨가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인 것은 지난해 3월 ‘해피 프라이데이(Happy Friday)’ 제도가 생기고 나서부터다. 2주간 80시간 이상 근무한 직원은 연차 소진 없이 두 번째 금요일(지난해는 세 번째)에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제도다. A 씨는 “금·토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도 일요일에 쉬면 돼 월요일 출근 부담이 덜하다”며 “다음 ‘해프날’(해피프라이데이 날)에는 가족들과 캠핑을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A 씨는 “회사의 각종 복지제도 중 해피 프라이데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근로자의 꿈’처럼 여겨지는 주 4일 근무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 40시간 근무’라는 큰 틀을 깨진 않으면서, 근무시간을 모두 채울 경우 월 1회나 2회 금요일에 쉬도록 하는 식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집중근무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으로 직원들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 자기계발 기회, 충분한 휴식 시간 등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주 4일 근무가 가능한 여건도 하나둘 쌓이고 있다. 기술 고도화로 과거와 같이 투입하는 노동의 양과 시간이 생산량과 비례하던 시기가 지나고, 창의성이 생산성을 좌우하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재택근무, 비대면·원격 회의, 워케이션(일과 휴가의 합성어로 휴가지 근무를 의미) 등 새로운 근무 형태를 반강제적으로 경험했던 것도 주 4일 근무제의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주 4일 근무제는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직원 수가 많지 않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도입됐다면 최근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대기업들이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지 약 20년 만에 이뤄지는 기업의 주 4일 근무 실험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 ‘월화수목일일일’의 현실화

23일은 삼성전자의 첫 ‘쉴금’(쉬는 금요일)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최근 임금 교섭 과정에서 한 달에 한 번 주 4일 근무가 가능한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스마트폰, TV, 생활가전 등을 생산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디벨롭먼트데이’, 반도체(DS) 부문은 ‘패밀리데이’로 정했다. 매달 월 필수 근무시간(160∼168시간)을 모두 채웠다면 월급날(21일)이 있는 주 금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회사 측은 ‘주 4일제’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개인별 월 근무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평소 쌓아둔 초과 근무 시간을 월 1회 몰아서 쓰는 개념이지 주 4일제 실험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3월 도입한 ‘해피 프라이데이’도 유사하다. 2주일간 80시간 근무시간을 채우면 다음 주 금요일에 하루를 쉴 수 있다. 임원, 팀장부터 솔선하도록 하면서 시행 1년여가 지난 현재 안정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 근무제들은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생산직 직원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4조 3교대 등 근무·휴무 일정이 정해져 있어 별도 휴무일을 따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2020년 1월 해피 프라이데이를 도입했다. 네트워크 관리, 고객센터, 유통망 운영 등에 필요한 최소 인력만 출근한다. 금요일에 이르게 퇴근하는 ‘4.5일 근무제’ 방식인 ‘슈퍼 프라이데이’를 확장한 것이다. SK㈜,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2018년 11월 월 2회 주 4일 근무제인 ‘집중근무제’를 시범 도입한 뒤 2019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CJ ENM은 매주 금요일 오전 4시간 근무 이후 오후 4시간 근무는 자유롭게 외부활동을 할 수 있던 ‘비아이플러스(B.I+)’ 제도를 개편해 격주 금요일을 8시간씩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비아이플러스 데이’로 운영한다. 이날은 업무용 PC가 모두 꺼지도록 해 사무실에서 업무 대신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기존 매주 금요일 4시간씩 쉬던 것을 격주로 줄인 대신 하루를 오롯이 자기계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 핵심은 ‘임금 유지’와 ‘지속가능성’

주 4일 근무제를 바라보는 기업과 근로자의 시각은 다르다. 근로자 입장에선 적게 일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단, ‘임금이 줄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한국리서치가 2021년 10월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자 찬성이 51%, 반대는 41%로 집계됐다. 세대별로는 나이가 어릴수록 찬성 의견이 많았다.

다만 임금이 줄어들면 생각이 달라진다. 임금이 줄어도 주 4일 근무를 하겠다는 응답은 29%뿐이었다. 응답자의 64%는 ‘임금이 줄어든다면 주 4일 근무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고령일수록 이 격차는 더 컸다.

기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주 4일제 도입은 단순한 복지 확대 차원이 아니다. 자기계발, 일과 가정의 양립, 직장에 대한 만족감 등으로 근로자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평소 집중근무로 불필요한 업무나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노동’의 양과 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쉬운 과제는 아니다. 사내에서 적용 가능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지난해 7월 카카오는 ‘격주 놀금제’(2주마다 주 4일 출근)를 도입했다가 6개월 만에 폐지했다. 지난해 10월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 사태를 겪으며 전사 차원의 위기 상황이 이어진 게 변수긴 했다. 하지만 놀금에 쉴 수 없는 필수 인력들에 대해 형평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게 놀금제 폐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19년 6월부터 주 4일 근무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온 교육기업 에듀윌의 경우 비상경영에 들어서며 주 5일 근무제로 복귀했다. 이른바 ‘줬다 뺏는’ 셈이 된 것이다. 주 4일 근무제를 포함해 각종 복지제도가 줄어든 영향으로 퇴사한 직원도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영국 자선재단 웰컴트러스트는 2019년 8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주 4일 근무제를 실험한 뒤 ‘운영하기 복잡하다’는 이유로 전면 도입은 하지 않았다. 미국의 인적자원(HR) 테크기업 트리하우스는 2016년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으나 다른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2019년 주 5일 근무제로 복귀했다.

● “주 4일제 제도화를” vs “아직 시기상조”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주 4일 근무제를 제도화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2020년부터 주 4일 근무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맞춤형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해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한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시작으로 주 4일제 사회로 전환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경제계에선 아직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 근무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건설, 조선, 전자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여전히 근로시간이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같은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더라도 주력 제품이나 자본력에 따라 생산성이 다르다. 주 4일 근무제를 일괄 적용할 때 문제가 없는 기업도 있지만 생산성이 20% 감소하거나 추가 인건비 부담이 20% 이상 커지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팀장은 “현재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어려움을 겪을 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주 4일 근무제를 확산시키려면 제도적인 강제보다는 여력이 충분한 회사들이 알아서 먼저 도입하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의견을 수렴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검토하는 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美 일부 주 ‘4일 근무제’ 도입 검토… 벨기에는 근로자가 선택


해외 주요국 ‘주 4일제’ 사례 살펴보니
코로나19로 세계서 본격 논의
각국서 제도화-확대 운영 검토
BBC “회사규모에 따라 결과 달라”
해외 주요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주 4일제 논의가 본격화됐다. 미국과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범 시행이 이뤄지거나 관련 입법 시도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일부 주 정부에서 주 4일 근무제 관련 움직임이 시작됐다. 정책적으로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캘리포니아주 의회에는 500명 이상 규모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주 4일·32시간 근무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미국 메릴랜드주도 주 4일제 확산을 위해 시범 도입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올 초 밝혔다.

다만 연방법으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제한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근로시간이 긴 편에 속하는 미국이 주 4일 근무제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재택, 유연근무를 시행했던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과 월스트리트 금융권도 다시 전면 정상근무를 선언하는 등 근태 관리에 들어갔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6∼12월 비영리 단체 ‘포 데이 위크 글로벌’과 보스턴대, 케임브리지대 등이 진행한 주 4일제 근무 실험에 61개 기업이 참여했다.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시범 운영이 끝난 뒤 61곳 중 56곳(92%)이 주 4일 근무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기업의 90%는 직원 수가 100명 이하, 3분의 2는 25명 이하인 소규모 회사였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BBC는 “주 4일 근무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는 회사 규모와 문화”라며 “주요 글로벌 기업에서 주 4일제를 시행한 적은 거의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벨기에는 주 4일 근무제가 선택적으로 법제화됐다. 지난해 11월 벨기에 정부는 근로자 필요에 따라 주 4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발효했다. 벨기에의 근무 시간은 주 38시간으로 근로자들은 원할 경우 주 4일에 몰아 일할 수 있으며 임금도 삭감해선 안 된다. 고용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명확한 거부 사유를 문서로 제시해야 한다. 네덜란드도 주 3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고용자와의 협상을 통해 주 4, 5일 근무형태를 정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의회 주도로 주 4일 근무제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히타치, 파나소닉, 미즈호파이낸셜, 유니클로, 야후 등 굵직한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있다. 주당 근무시간 40시간만 채우면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만 일할 수 있는 형태다.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공무원을 대상으로도 주 4일 탄력근무제 확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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