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보조금 신청 시작…삼성·SK 선택은
뉴시스
입력 2023-03-31 11:23 수정 2023-03-31 11:23
미국 정부의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이 31일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미국 반도체 지원법상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 세부 지원안을 공고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한 527억 달러(69조8275억원)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담은 법안이다.
로직칩·메모리칩 등 최첨단 제조시설은 이날부터, 현세대·성숙노드 또는 후공정 제조시설은 오는 6월26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기업들이 제출한 신청서를 경제·국가안보, 투자계획의 상업적 타당성, 신청기업의 재무상태 및 투자이행 역량, 인력개발 및 그 외 파급효과 등의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 등에서 반도체 생산 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 이상 투자도 제한되며, 이를 어길 경우 보조금 전체를 회수당할 수 있다.
민감한 기업 정보의 구체적인 데이터 제출을 요구한 것도 논란이다. 상무부는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들은 예상 현금 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밝힐 때 단순히 숫자가 아닌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을 제출토록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생산시설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가동률·웨이퍼 예상 수율·연도별 생산량·판매 가격 증감 등의 수치가 포함됐다.
문제는 이 같은 정보가 반도체 기업의 영업 기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 생산에서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의 비율)은 기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미국 정부를 통해 외부에 유출될 경우 우리 기업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특정 정보는 영업상 비밀유지 조항에 저촉될 수도 있다.
당장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글로벌 1위인 대만 TSMC 류더인 회장은 최근 미국 반도체 보조금과 관련,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조건들이 있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4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의 경우 말을 아끼고 있다. 보조금 신청이 시작되긴 했지만 마감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양국 협상 결과를 본 뒤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달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가 예정돼 있고, 이재용 회장 동행이 유력한 만큼 이후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메모리 패키징(후공정)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인 SK하이닉스는 신청 기간이 6월26일 시작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미국을 방문,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총 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이 안에는 패키징 공장 건설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2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미국 보조금 신청과 관련 “엑셀을 요구하고 신청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많이 고민해보겠다”며 “우리는 패키징이니까 전체 수율 데이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산)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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