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본능 참을 수 없다면 이놈을 타라! 포르쉐 카이엔S
동아경제
입력 2012-01-09 09:17 수정 2012-01-09 11:06
지난 연말 한 자동차업체에서 수입차 구매자 100명에게 물었다. “차를 살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 무엇인가?” 2개를 복수 선택하라고 했는데,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연비와 주행성능’이라고 답했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업체 담당자는 “사실 ‘디자인’이라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고 고백했다. 아무리 고가 수입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라도 연비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고유가시대인 만큼 연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요즘 완성차업체는 대부분 고성능보다 고효율 차를 만든다. 스포츠카라고 예외는 아니다. 포르쉐는 2011년 1000대 이상 3000대 미만 판매 브랜드 가운데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모두 1362대를 팔아 2010년(671대)과 비교해 103% 성장했다. 모델별로는 높은 연비의 SUV 카이엔과 4인승 세단 파나메라의 신장세가 돋보였다.포르쉐 역사상 최단시간 10만 대 판매
포르쉐가 2002년 카이엔을 출시할 때만 해도 주변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오랫동안 구축해온 고성능 스포츠카 이미지가 카이엔 때문에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심지어 “카이엔을 과연 포르쉐로 볼 수 있을까”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이 사라지는 데는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카이엔은 2005년 누적 판매 10만 대를 돌파하며, 포르쉐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10만 대를 판매한 모델에 등극했다.
2011년 12월 31일, 3세대 카이엔 5형제 중 공인연비가 가장 높은 카이엔S 하이브리드를 운전하고 경기 파주시 임진각과 포천 일대 고속화도로 및 국도 300여km를 달렸다. 60여 년간 스포츠카를 생산해온 포르쉐의 기본 철학은 ‘높은 성능을 위해 안락함이나 안전성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카이엔에 가족을 태우고도 ‘맥박이 빨라지고 찌릿찌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주행’이 가능한 까닭이다.최고속도 242km/h에 제로백 6.5초의 SUV
카이엔 디자인의 핵심은 ‘부드러운 역동성’이다. 언뜻 보면 포르쉐 스포츠카 라인과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조목조목 뜯어보면 포르쉐의 모든 모델을 관통하며 흐르는 디자인이 고스란히 담겼다.
포르쉐는 스포츠카에서부터 SUV, 세단까지 독특한 패밀리 룩을 갖추었다. 헤드램프는 항상 보닛보다 높게 솟아 있고, 차체는 각진 부분 없이 둥글게 마감된 모양새다.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차체가 넓어진다. 이는 무게중심을 낮추고 윤거를 넓게 확보해 안정적인 핸들링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열쇠구멍이 운전대 왼쪽에 있는 것도 포르쉐만의 특징이다. 자동차 경주에서 운전석에 앉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시동을 걸기 위해서다.카이엔S 하이브리드는 333마력의 3.0ℓ V6 슈퍼 차지 가솔린엔진과 47마력의 전기모터가 결합한 병렬 하이브리드 구조로, 최대 380마력을 발휘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km 주행에 193g으로 포르쉐 모델 중 가장 적다. 최고안전속도는 242km/h며,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 6.5초 걸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쿠페와 똑같다.60km/h 이하는 전기모터로 주행
시동을 걸자 심심할 정도로 엔진 소리가 조용했다. 황금색 포르쉐 엠블럼이 박힌 스티어링 휠 뒤로 5실린더 타입의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엔진 회전수를 알려주는 회전계를 놓고 좌우로 속도계와 하이브리드 에너지 변동 상황을 표시하는 액정을 배치한 점이 독특하다.
출발해서 시속 60km 이하로 부드럽게 달리면 전기모터로만 주행 가능하다. 이때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고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배터리 전력이 모두 소진되면 다시 엔진이 돌아 차를 움직이는 동시에 배터리를 충전한다. 고속으로 주행해 오버런(Overrun) 상태가 되면 연소기관이 자동 정지하면서 관성으로 미끄러지듯 주행한다. 관성주행은 최고속도 156km/h까지 가능하다. 240개 전지로 이뤄진 80kg의 니켈수소(NiMH) 배터리는 트렁크 아래 숨어 있다.연비 좋고 조용한 폭풍질주
카이엔의 가속은 거침없다. 서울을 벗어나 고속화도로에 올라서자마자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으니 몸이 시트에 파묻히면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수많은 SUV를 운전해봤지만 이런 무서운 가속력은 처음이다. 커브길에서도 상시 4륜구동답게 정확히 움직였다. 8단 자동변속기는 일반적인 주행 패턴에서 80km/h를 넘기지 않고도 8단까지 리드미컬하게 변속을 끝냈다. 시속 130km까지 엔진 회전수가 2000rpm을 넘기지 않았으며, 급가속 시 6단 기어에서 최고속도를 이끌어냈다.
선택사양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차량 간격을 파악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는 기능을 갖고 있다. 차량 중앙 공기흡입구에 장착한 센서가 전방 200m까지 감지해 앞차의 속도에 맞춰 주행하고 정지한다. 앞차가 없을 경우에는 운전자가 30~210km/h 중에서 설정한 속도에 맞춰 스스로 가감속한다. 트렁크는 580ℓ로 대형 여행가방 6개가 들어가며, 뒷좌석 중앙을 접으면 스키 같은 긴 화물을 실을 수 있다. 4대 2대 4로 분할되는 뒷좌석을 완전히 접을 경우 트렁크가 1690ℓ까지 늘어난다.카이엔S 하이브리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연비 좋고 조용하면서도 폭풍질주가 가능한 포르쉐 SUV’다. 스포츠카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고성능인 데다, 연비가 12.1km/ℓ나 된다면 분명 축복받은 차라고 봐야 한다. 판매가격은 기본사양이 1억1780만 원이고, 한국형 프리미엄 패키지를 적용하면 1억4600만 원이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