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마존’ 꿈꾸던 11번가 휘청… 매각 주도권마저 잃었다

지민구 기자 , 김소민 기자

입력 2023-12-01 03:00 수정 2023-12-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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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까지 IPO 조건 지키지 못해
FI, SK 지분까지 매각 가능해져
치열한 경쟁에 3년 연속 적자 내
“인수자 찾기 어려울 것” 전망도



이른바 ‘한국의 아마존’을 지향하며 한때 옥션, 지마켓 등과 3대 ‘오픈마켓’으로 꼽혔던 11번가가 휘청이고 있다. 전자상거래 시장의 출혈 경쟁 심화와 경기 침체 장기화로 실적 반등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11번가의 최대주주 SK스퀘어가 매각 주도권을 재무적투자자(FI)에게 넘겨줄 상황에 놓였다.

3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전날 국민연금과 사모펀드(PEF) H&Q코리아 등으로 구성된 FI 컨소시엄의 11번가 보유 지분 18.18%를 매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1번가의 최대주주는 SK스퀘어로 지분 80.26%를 보유하고 있다.

컨소시엄은 2018년 11번가에 5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5년 내 기업공개(IPO) 조건을 달았다. 당시 11번가의 기업가치를 2조7000억 원으로 평가한 투자였다.

만약 IPO에 실패하면 SK스퀘어가 원금 5000억 원에 연 8%의 이자를 더해 이를 다시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 조항도 포함됐다. SK스퀘어는 이번에 이 콜옵션을 포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도권은 컨소시엄이 갖게 됐다. 콜옵션 포기로 컨소시엄은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까지 묶어 11번가를 매각할 수 있는 권리(드래그얼롱)를 행사할 수 있다. 권리를 행사하면 SK스퀘어가 진행하던 11번가 매각을 컨소시엄이 주도할 수 있다. 컨소시엄은 이 권리의 행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11번가는 2018년 SK플래닛에서 독립 법인으로 출범할 당시 한국판 아마존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받았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처럼 인공지능(AI) 기술과 쇼핑 플랫폼을 결합해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취지였다. 실제 2021년 8월 아마존과 사업 협력을 통해 ‘직구(직접 구매)’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문제는 독립 법인 출범 후 컨소시엄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뒤 11번가가 업계 경쟁 심화로 별다른 성장 동력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쿠팡과 네이버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점유율을 점점 높이면서 11번가는 4위권으로 밀려났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은 1위 쿠팡이 24.5%, 2위 네이버는 23.3%로 7%에 그친 11번가와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 온라인 쇼핑 거래량이 급증했을 때 오히려 11번가의 실적은 더 나빠졌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냈으며 올 1∼9월 누적 영업손실도 910억 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2008년 서비스 출시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도 했다. 만 35세 이상 근속연수 5년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4개월 치 급여를 지급하는 조건이다.

컨소시엄이 매각을 주도해도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자상거래 업계 관계자는 “전자상거래 시장은 결국 1, 2개 업체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며 “쿠팡이나 네이버 또는 대규모 자본력을 갖춘 해외 업체가 11번가를 인수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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