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무역 주도권 잡아라”… 지구촌 디지털 무역협정 붐

장윤정 기자

입력 2022-05-25 03:00:00 수정 2022-05-25 11: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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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종이 없는’ 협상에 출사표


직장인 K 씨는 ‘인터넷 없는 삶’은 1분 1초도 상상하지 못한다. 재택근무를 거치면서 e메일로 업무 상황을 공유하고 줌으로 회의를 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퇴근 후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힘들다. 가족들 사진은 클라우드에 저장해 두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한다. 잠들기 전에는 유튜브에서 관심 가는 영상들을 둘러보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며 머리를 식힌다.

K 씨 사례에서 보듯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교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원격근무와 온라인 협업이 일상이 됐고, 각종 업무 문서를 디지털로 교류하며, 콘텐츠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16년 약 20ZB(제타바이트)였던 세계 데이터 총량은 2022년 80ZB가 됐고, 2025년에는 2배 이상인 175ZB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날로 확대되는 디지털 교류 흐름에 맞춰 국제사회에서도 디지털 무역 규범과 표준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KSDPA)을 비롯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IPEF는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참여가 확정된 상태이고, ‘디지털 경제와 기술표준 정립’ ‘공급망 회복력 달성’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다. 이렇듯 한국도 급물살을 타고 있는 디지털무역협정 참여를 도모하는 가운데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디지털 무역 주도권 위한 협정 급물살

‘디지털 무역’은 기존 전자상거래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디지털 기술이 뒷받침하는 국경 간 교역 활동 전반’을 뜻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상품 거래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음악, 영화 등 디지털 콘텐츠와 교육, 금융, 의료 컨설팅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 교역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국경 간 데이터 이동까지 의미가 확장돼 있다.


디지털 무역이 ‘무역의 미래’로 꼽히고 있음에도 사실 국제무역 규범은 이를 따라잡지 못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사회에서 잇달아 디지털무역협정을 내놓고 있다. △USMCA(미국, 멕시코, 캐나다) △USJDTA(미국, 일본) △DEPA(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SADEA(싱가포르, 호주) 등이 그것이다. 주된 내용으로는 디지털 제품 무관세와 비차별적 대우,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활성화 등을 다루고 있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정식 발효되면서 국가 간 상품 교역이 확대된 것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협정이 본격화되면 디지털 무역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주요 국가는 일찌감치 유리한 방향의 협정을 이끌어 디지털 경제의 선두주자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으로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디지털무역협정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의 USMCA에서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자유화 △데이터 서버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 요구 금지 등을 강행 규범으로 두는 것에 합의했다.

일본과 타결한 USJDTA의 경우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책임 면제 조항을 둬 온라인 플랫폼상에 게재된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했다. 싱가포르도 뉴질랜드 및 칠레와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을 체결하고 호주와는 디지털경제협정(SADEA)을 맺는 등 잰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DEPA에 지난해 9월 가입을 신청해 회원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부문 통상 협정인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KSDPA)을 맺었으며 최근 IPEF 참여 또한 공식 선언했다.

우리 정부에도 디지털 경제 패권은 놓칠 수 없는 목표다. 특히 대용량의 데이터를 수집, 저장, 처리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산업 혁신을 촉발하는 데 바탕이 되는 인프라인 클라우드 시장 등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세계 클라우드 시장 규모가 3961억 달러(약 500조 원)에 이를 전망인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클라우드 산업 육성에 979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협정에 걸림돌 될라…CSAP 개선 목소리
이렇듯 정보기술(IT) 강국 지위를 지키려는 한국이지만 업계에서는 적극적인 디지털무역협정 대응에 앞서 규제 개혁부터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규제가 디지털무역협정 체제 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규제가 클라우드보안인증(CSAP) 제도로 지난해 12월 한국규제학회 역시 해당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CSAP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정보 보호 기준의 준수 여부를 확인, 인증하는 제도다. 책임 있는 인증기관의 확인을 통해 수요자들이 안심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지만 글로벌 표준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한국규제학회는 “CSAP 제도의 문제는 글로벌 보안 기준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기술을 요구하는 규제라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 ‘디지털 무역 진입 장벽’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성장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1만5000여 개나 있지만 CSAP를 취득한 기업은 40여 개에 불과하다. 중소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해외 플랫폼 기업들은 CSAP 취득 자체가 어려워 국내에서 비즈니스를 연계해 해외 시장에 동반 진출할 기회를 모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클라우드 규제 개선 가능성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디지털 플랫폼정부 추진방향' 보고서를 발표하고 "망분리, 클라우드 보안인증 등 획일적인 사이버보안 규제를 정비해 해외 및 중소 클라우드사업자의 공공 클라우드 시장 진입장벽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김태윤 교수는 “앞으로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이 국제기구의 정책 수립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발 빠르게 참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이미 디지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디지털 대전환 시대 경쟁력을 확보해 IT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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