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부활한 제주 이시돌목장의 명품 니트 ‘한림수직’[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전승훈 기자

입력 2022-02-12 14:00:00 수정 2022-02-12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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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림읍 중산간에 있는 성이시돌 목장은 유기농 우유카페 ‘우유부단’으로 유명하다. 목장의 신선한 우유를 이용해 만든 수제 유기농 아이스크림, 유기농 밀크티를 맛보려는 여행자들이 연간 10만 명이나 찾을 정도다. 주변에는 이시돌 성인을 묵상하며 걸을 수 있는 순례길도 조성돼 있다. 성 이시돌(1110~1170)은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 농부로 로마 가톨릭교회가 정한 전세계 농민들의 주보성인이다. 16만5000㎡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에 말과 양, 소가 뛰어노는 모습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이시돌 목장은 개발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는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자연을 보존하는 완충지대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시돌 목장 내에 성이시돌센터 카페에서는 ‘한림수직, 되살아난 제주의 기억’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959~2005년 존재했던 ‘한림수직’은 제주 이시돌 목장의 양모로 짠 프리미엄 니트 브랜드. ‘아일랜드 수녀 기술 지도하에 손으로 짠 100% 순모 고급 담요’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스위스의 산 중턱에 풀을 뜯고 있는 양떼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풍경과 아일랜드의 전통 문양으로 짠 스웨터가 제주의 특산품이었다니, 흥미로운 스토리가 아닐 수 없었다.


● 한림수직을 아시나요
“일본에서 빈티지 의류를 떼러가는 사람에게 우연히 ‘한림수직’이라는 브랜드를 듣게 됐어요. 일본 빈티지 마니아들 사이에서 ‘한림수직’이 전설적인 니트 브랜드로 수집가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서울 사람이라 제주에 그런 브랜드가 있었는지 전혀 몰랐는데 흥미로웠습니다.”

10년 전 제주로 내려와 로컬 콘텐츠를 발굴하고, 예술가들과 협업해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는 ‘재주상회’의 고선영 대표(46). 그는 과거 한림수직에서 일했던 제주 할망(할머니)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전국에서 옛 ‘한림수직’의 스웨터, 양모 이불, 목도리 등을 기증받아 전시회를 열었다.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스웨터, 친정어머니가 혼수품으로 사주신 카디건, 성이시돌요양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 소장해 오던 머플러 등 사연을 담은 양모 제품들은 50년이 넘은 세월에도 변색이나 변형 없이 여전히 세련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림수직은 1954년 아일랜드 출신으로 한국으로 부임해 온 패트릭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1928~2018) 신부가 가난했던 제주 여성들이 일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맥그린치 신부는 당시 가난한 집의 17세 소녀 신자가 돈을 벌려고 부산공장에 갔다가 사고로 숨진 일을 겪은 뒤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한림수직을 설립했다.




맥그린치 신부가 35마리의 양을 사 오며 성이시돌 목장이 시작됐다. 아일랜드에서 온 수녀들이 제주 여성들에게 양모를 이용한 뜨개질을 가르쳐줘 핸드메이드 방식 제품들을 제작했다. 아일랜드의 아란섬 전통 꽈배기 문양인 ‘아란 무늬’로 짜인 스웨터는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가장 호황을 누렸던 1970, 80년대에는 근무자만 1300여 명에 이를 정도였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과 제주 칼호텔에 직영 매장을 운영하며 고급 혼수품으로도 사랑받았다.


성이시돌 목장의 양떼목장 부근에 있는 사무실에서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리어던(한국명 이어돈·68) 신부를 만났다. 텁수룩한 수염에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도 아일랜드 태생이다. 그는 1978년 1월부터 1980년 여름까지 수의사로 한림수직에 머물다 1986년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월급을 받지 않는 봉사자 자격으로 제주의 이시돌 목장에 오게 됐어요. 자격증을 갖고 있었기에 수의사 업무를 봤죠. 그때 키우던 가축은 돼지 1만4000~1만5000마리, 양 800마리, 소 2000마리 정도였어요. 한림수직이 가장 번창했을 때지요.”





한림수직의 ‘수직(手織)’은 손으로 직물을 짠다는 뜻이다. 맥그린치 신부는 아일랜드에서 어머니가 쓰던 물레를 가져와 양털에서 실을 뽑았다. 도톰한 털실로는 제주 전역에서 재택근무하는 여성들에게 뜨개질을 맡겨 스웨터와 모자, 장갑, 머플러 등을 만들었고, 한림항 근처에 있던 공장에서는 베틀을 이용해 얇고 촘촘한 실로 담요, 숄, 스카프 등을 짰다고 한다. 그러나 한림수직은 값싼 중국산 양모와 합성수지 제품에 밀려 2005년 결국 문을 닫았다.


제주의 유일한 제조업 브랜드인 한림수직을 17년 만에 부활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최근 시작됐다. 성이시돌 목장과 재주상회, 아트임팩트 등이 힘을 합쳐 이시돌 목장 양떼의 양모를 활용하고, 시그니처 ‘아란 무늬’를 되살린 스웨터, 목도리, 가방 등이 개발됐다. 지난해 텀블벅 펀딩을 통해 1000여 개의 제품(약 1억 원)이 완판됐다. 제주 성이시돌센터에서 20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옛 한림수직 제품과 새롭게 생산한 제품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재주상회 고 대표는 “현재는 이시돌 목장에서 키우는 양의 수가 충분치 않아 양모를 대량 생산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향후 제주 여성들이 직접 손으로 짜는 명품 로컬 브랜드로서 한림수직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말했다.

● 동백과 유채꽃, 제주의 봄소식


성이시돌 목장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내려온 서귀포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일대에는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제주에선 탐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입춘굿 행사와 함께 입춘 국수를 나눠 먹으며 새로운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를 연다. 성산읍 성산일출봉 앞에도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어 입춘이 지난 제주의 봄을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보통 남해안의 동백꽃은 2, 3월에 절정을 이루지만, 제주도는 벌써 동백꽃이 지고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제주동백수목원, 휴애리, 안덕면 카멜리아힐 등 동백꽃 명소에는 나무 밑에 뚝뚝 떨어진 동백꽃과 나무에 피어 있는 동백꽃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제주의 겨울을 알리는 분홍빛 애기동백꽃은 12월에 절정을 이루고, 1월부터 꽃을 피우는 토종 동백꽃은 3월 즈음 송이째 떨어지며 진다.



서귀포 산방산에서 가까운 ‘사계(沙溪)해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형제섬과 등대가 바라보이는 바닷가에 용머리 해안처럼 퇴적층이 드러나 유려한 곡선 형태의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모래와 자갈들이 오랜 세월 동안 다져지면서 암석화 작용이 진행된 마린 포트홀로, 마치 아이슬란드나 화성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바위 위에는 크고 작은 둥그런 구멍들이 나 있는데, 젊은이들이 구멍 틈마다 들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맛집=제주 조천읍 교래리 산굼부리 옆에 있는 ‘우동 카덴’은 정호영 셰프가 운영하는 우동집이다. 굵고 통통한 면발이 특징인 온우동, 냉우동이 커다란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오며, 산처럼 쌓여 있는 양파&우엉 튀김, 제주산 광어 프라이 등 튀김도 비주얼과 맛이 일품이다. 사전 예약 필수.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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