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터줏대감’ 서세옥, ‘진도 출신’ 손재형…예술가와 공간의 흔적

광양=김태언 기자

입력 2021-10-25 10:19 수정 2021-10-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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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서세옥이 서울 성북동에 살며 그린 작품 ‘동네’(1978년). 집을 둘러싼 소나무숲과 성북천 등 아늑하게 자리한 성북동을 표현했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1929~2020)은 광복 후 서울로 왔다.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꼭 성북동에 집을 갖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후 성북구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서 거주했던 그는 1970년대 초, 성북동 언덕에 25평(82.6㎡)짜리 집을 짓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의미로 ‘무송재’라 이름을 붙였다.

성북과 서세옥은 서로의 수식어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꿈꿨다. 한국 문인화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그는 별세 전까지 이곳에서 활발히 작업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사람 혹은 군상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시리즈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환경이 있다. 지역 미술관들이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흔적을 짚은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은 12월 5일까지 ‘화가의 사람, 사람들’전시에서 서세옥과 그를 중심으로 한 성북의 근현대 작가들 작품 25점을 조명하고 있다.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은 11월 6일까지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을 열고 전남 진도 출신인 손재형의 서예 입문기부터 완숙기까지를 보여주는 40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의 사람, 사람들’에서는 서세옥이 성북동에 살며 교류하고 영향을 받은 김용준 김환기 장승업 등 7명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스승 김용진의 수묵화, 서세옥을 아우라 칭했던 변관식의 산수가 그려진 선면도 등 서세옥 컬렉션 12점도 포함됐다.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사는 “서세옥 컬렉션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 자양분이 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후배나 친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유족으로부터 3342점을 기증받은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세옥 기획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소전 손재형은 여러 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소전체를 탄생시키는데, 1956년 충무공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기리고자 전남 진도군 벽파진에 세운 비석에 소전 손재형이 쓴 ‘이충무공 벽파진 접첩비 탁본’이 대표적이다. 한글과 한자 혼용 서체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서세옥의 선배이자 20세기 서예와 문인화를 이끈 소전 손재형(1903~1981)은 할아버지 손병익과 진도로 귀향 온 학자 정만조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함께 서당을 다닌 이는 한국 서화계를 대표하는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이었다. 이태우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소전은 18살 때 상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에 두각을 보였다. 그 기반엔 자연스레 서예를 접한 진도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져온 자’,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손재형을 설명하던 문구를 잠시 잊고 서예가로서 그를 재평가할 수 있다. 당시 서예계를 주도하던 김돈희, 오세창의 서풍을 익히던 ‘전통 계승의 시기’, 광복 후 ‘소전체 정립 시기’, 60세 이후 ‘원숙한 기량의 시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군자, 수묵 산수화 등 여러 문인화도 전시돼있다.

함께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에서는 19점을 만날 수 있는데, 전남 출신 작가들의 아카이브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미술관 측은 신안 출신인 김환기의 현대문학 장정 60권을 모두 구매해 일부를 선보이고 있다. 고흥 출신의 천경자, 화순 출신인 오지호, 조선대 교수를 지낸 임직순이 그린 표지화와 삽화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 모두 9권을 구했다.

광양=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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