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기자의 씨네맛]쏟아지는 미슐랭 코스요리 속 진짜 주인공은 ‘화이트 와인’

김재희 기자

입력 2021-07-30 03:00:00 수정 2021-07-30 0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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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그리스産 와인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주인공 롭 브라이던(왼쪽)과 스티브 쿠건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찬란 제공
김재희 기자

같은 주인공들이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등장하는 시리즈 영화의 장점은 관객들이 영화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18년에 걸쳐 제시(이선 호크)와 셀린(쥘리 델피)의 만남과 이별, 재회를 다룬 ‘비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리즈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더 트립’ 시리즈 역시 미식을 즐기는 이라면 한 번쯤 봤을 영화다. 영국의 배우 겸 코미디언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던이 2010년 영국 북부 최고의 레스토랑을 돌아다닌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2014년 이탈리아, 2017년 스페인을 여행했다. ‘트립 투 그리스’를 마지막으로 10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소식이 지난해 들려왔을 때 이들과 여행을 함께한 팬들은 적잖이 아쉬워했다. 영화는 이달 8일 개봉했다.

이들의 마지막 여행은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여정을 따라간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귀향 모험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그랬던 것처럼 스티브와 롭의 6일짜리 여행도 트로이가 있었던 터키에서 시작해 그리스 이타카에서 끝난다.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은 “두 사람이 먼 길을 여행하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오디세이아와 비슷해 마지막 여행지로 그리스를 택했다”고 말했다.

‘미식 여행’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이들의 끝없는 성대모사와 예술·역사·철학을 넘나드는 지적인 수다는 4, 5개의 코스요리가 나오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과 호텔 레스토랑에서 이뤄진다. 블랙베리 소스를 얹은 퀴네페, 훈제 솔잎을 넣은 홍합, 아몬드 크럼블을 얹은 블러드 오렌지 등 파인 다이닝의 실험적 요리들이 쏟아진다. 아쉬운 건 그리스인들이 일상에서 먹는 수블라키, 무사카와 같은 ‘그리스다운’ 음식은 없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음식에 있어 그들은 집(home)을 떠나지 않았다”고 평했다.

트립 투 그리스에서 음식 이상으로 눈길을 끄는 건 화이트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은 이들의 식사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와인 병 라벨은 나오지 않지만 이들이 그리스산 와인을 마셨을 거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그리스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와인의 발상지다. 와인을 물 대신 마신다는 프랑스보다 와인이 더 일상화돼 있다. 그리스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와 같은 국제 품종이 아닌 각 지역의 고유 품종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만큼 식당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해당 지역 와인을 권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서초구 그리스 가정식 식당 ‘노스티모’에서 판매하는 그리스 와인 ‘크티마 게로바실리우 화이트’. 크티마는 와이너리를 뜻하고, 게로바실리우는 그리스 와인의 거장 에방겔로스 게로바실리우가 1981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와이너리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와인이 대중적이지는 않다. 그리스는 와인 생산량의 97%를 자국에서 소비하기 때문. 한국에서 그리스산 와인을 접할 수 있는 곳은 그리스 전통음식을 파는 식당들이다. 서울 서초구의 그리스 가정식 레스토랑 ‘노스티모’도 이 중 하나다. 이곳 와인의 80%는 그리스산이다. 처음 보는 그리스 와인들의 이름에 머리가 어지럽다면 ‘크티마 게로바실리우 화이트’를 마셔볼 것을 추천한다. 상큼하고 가벼우며 단맛이 덜해 치즈, 고기 등 느끼하거나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그리스 형제가 운영하는 그리스 와인 수입사 ‘헬레닉 와인’에서는 식당보다 싼값에 그리스 와인을 살 수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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