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척’ 무기로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 가입…현대상선, 해운업 부활 이끌까

거제=김도형

입력 2020-02-12 18:46:00 수정 2020-02-12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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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찾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현대상선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도색된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가 한창이었다. 대형 선박 건조는 지상에서 대형 블록을 먼저 만들고 사람과 기계가 이 블록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무게가 수백~수천 t에 이르는 거대한 블록들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용접 중인 선박과 이미 조립을 마치고 물에 띄워 막바지 작업 중인 선박이 조선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날 D안벽에서 직접 승선해 본 배는 길이 20피트의 표준 컨테이너를 2만3964개까지 실을 수 있는 2만4000TEU급 선박. 말 그대로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선이다. 이 배의 크기는 가파른 계단으로 선박 내부의 여러 층을 숨이 찰 때까지 올라가면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올라간 배의 갑판에서는 컨테이너의 40%가량을 적재할 수 있는 컨테이너 화물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깊이가 35m에 이르는 갑판 및 검은색 화물창. 그 옆에서 난간을 잡고 섰지만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이 선박 건조 과정을 총괄하고 있는 김영범 대우조선해양 컨스트럭션 매니저(과장)는 “회사가 수주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발주된 선박들”이라며 “별도 TF까지 꾸려서 납기를 당기면서도 최고의 품질로 납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 최고 조선사의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해운업 부활 이끌까

이날 승선한 배는 4월 현대상선 인도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배를 필두로 대우조선해양이 7척, 삼성중공업이 5척을 건조하고 있는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과 현대중공업이 8척을 건조하고 있는 1만5000TEU급 선박. 이들은 올 4월부터 현대상선에 순차적으로 넘겨진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로 꼽히는 한국의 조선3사가 짓고 있는 이 배들은 조선업계 뿐만 아니라 해운업계에서도 크게 주목 받고 있다. 3년 전인 2017년 2월 17일. 당시 세계 7위의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 선고를 받으면서 나락으로 추락했던 한국 해운업의 재건을 이끌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덴마크 국적의 머스크를 비롯한 대형 해운사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선박의 크기를 키우는 선박 대형화로 비용을 줄이고 운임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한 척에 1000억이 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고효율 대형선 건조 대신 용선(빌려쓰는 배) 확보로 대응한 국내 선사들은 이 흐름에 뒤쳐졌고 결국 한진해운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분석이다.

1만3000TEU급 선박에 비해 2배에 가까운 2만4000TEU급 선박을 운용하면 컨테이너당 연료비가 60% 수준으로 떨어진다. 항해에 필요한 인력도 24명 내외로 동일하기 때문에 해운업은 ‘규모의 경제’가 가장 확실하게 구현되는 사업으로 꼽힌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에도 국제 컨테이너 운임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머스크와 MSC(스위스), 코스코(중국) 등은 초대형선 확보는 물론 인수합병 등으로 선복량(총 적재능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이들 기업이 300만~400만TEU의 선복량을 확보한 반면 한진해운 파산 전인 2016년 8월에 한국 원양 컨테이너선사의 선복량은 한진해운(62만TEU), 현대상선(44만TEU)을 합쳐서 100만TEU를 조금 넘겼다. 올 1월 기준으로는 현대상선 39만TEU과 SM상선 7만TEU 수준에 불과하다.

그 사이에 공룡처럼 더 커진 해외 선사들과의 경쟁하기 위해 올 4월부터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차례로 인수해 2022년까지 110만TEU까지 선복량을 늘리겠다는 것이 현대상선의 계획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40만TEU 수준의 선복량으로는 생존이 힘들다는 판단으로 고효율의 초대형선 건조에 나섰다”며 “4월부터 차례로 유럽 노선에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면서 올 3분기 영업흑자 전환을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 ‘12척’ 무기로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 가입

20척의 선박 건조에는 총 3조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12척(2만4000TEU)과 8척(1만5000TEU)은 각기 유럽 노선(12척)과 미주 노선(8척)에 배를 띄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선박이다. 유럽 노선의 경우 12척이 있어야 정해진 요일에 매주 1척씩 배를 띄우면서 12주 사이클로 계속 배를 돌리는 ‘정요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필요한 선박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대형 해운사들도 자신들의 선박만으로는 길고 다양한 항로를 모두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해운업계에서는 각종 ‘해운동맹’을 통해 서로의 선박, 선복을 공유·교환한다.

그동안 초대형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복량이 큰 것도 아니었던 현대상선은 아무래도 기존의 동맹 내(2M)에서의 발언력과 협상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만4000TEU급 선박의 인수를 앞두고 현대상선은 최근 ‘디 얼라이언스’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해운업계에서는 하팍로이드(독일)와 원(일본), 양밍(대만)이 회원사로 있는 이 해운동맹에서 유럽 노선에 띄울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필요했던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로 건조한 가장 크고 효율적인 선박 12척을 유럽 노선에 투입할 수 있는 현대상선의 동맹 내 위상 역시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 그리고 한국 해운업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일자진을 펼쳤던 ‘12척의 배’에 필적한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2M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 정회원으로 가입한 것은 현대상선에 있어 최선의 결과”라며 “한국해양 진흥공사와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아 건조하고 있는 메가 컨테이너선 20척이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크고 효율적이면서 정비 부담 등도 덜 수 있는 ‘새 배’를 운영하게 된 현대상선의 또다른 기대 중 하나는 바로 ‘친환경 효과’다.

대형 선박들은 황 성분이 다량 함유된 벙커C유 등을 연료로 쓴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 문제로 최근 선박에 대한 환경규제도 강화되는 상황. 새로 건조하는 선박들에는 배기가스 속의 황 성분을 고압의 물줄기로 걸러내는 대형 스크러버가 설치됐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새로 짓는 배들의 스크러버는 하이브리드 타입”이라며 “황 성분을 걸러낸 물을 배출하는 것마저 규제하는 국가의 항만과 해역에서도 쓸 수 있기 때문에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따른 이익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세계 해운업에서는 여전히 ‘치킨게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10년가량 물동량에 비해 선복량이 과다해 컨테이너 운임이 오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선사들은 배를 새로 지으면서 공급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3면이 바다이고 육로 수·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물동량은 큰 한국의 상황에서는 자국 해운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설명이다. 결국 ‘치킨게임’을 버텨내면서 해운업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는 “선복량이 과잉인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선주들이 배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다”며 “새로 짓는 20척의 배가 있었기 때문에 디 얼라언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봐야하고 ‘치킨게임’일수록 더 우위에 올라서겠다는 각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제=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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