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북촌의 과부굴 명당, 터 주인도 가려 받아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입력 2018-01-31 03:00 수정 2018-01-3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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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문원이 들어섰던 종로구 북촌의 한옥마을.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세종 15년인 1433년 7월 어느 날, 지관 최양선이 조선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보현봉의 바른 줄기가 직접 승문원 터로 들어왔으니 바로 현무(玄武)가 머리를 숙인 땅으로서 나라에 이만한 명당이 없다”는 그의 발언 때문이었다. 보현봉의 곁줄기인 북악산 아래 자리 잡은 경복궁은 명당이 될 수 없고, 본줄기가 내려오는 승문원 자리(종로구 가회동·재동·계동 일대)가 으뜸 명당이므로 궁궐을 옮겨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이었다. 최양선은 “승문원 자리로 궁궐을 옮기면 만대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까지 호언장담했다.

세종은 국가 공인 지관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조정 대신들에게 이 일을 논의하도록 했다. 당시 성리학을 숭상하던 유신(儒臣) 대다수는 최양선을 ‘망령된 자’로 몰아붙이면서, 세종에게 풍수설 같은 헛된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간언했다. 세종은 대안으로 100여 간 규모의 별궁 건설을 제시했으나 대신들은 이마저 반대했다. 결국 세종은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승문원(현대 계동사옥 인근 추정)까지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이 터를 그 누구도 쓰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이후 승문원 터는 사람들로부터 ‘잊힌 땅’으로 방치돼 왔다. 그러다가 40여 년이 흐른 성종 때에 사람들 입방아에 다시 올랐다. 1477년 “임원준이 궁궐을 지을 땅에 자손의 집을 짓고 있으니 이는 반역과 같은 죄”라는 상소문이 성종에게 전달됐다. 임원준의 손자가 선왕(先王)인 예종의 고명딸 현숙공주와 혼례를 치른 후 ‘나라의 명당’인 승문원 터에 신혼집을 차린 것을 두고 왕기(王氣)를 노린 행위라는 투서였다. 사실이라면 구족 멸문을 불러올 사안이었다.

임원준은 급했다. 성종에게 그곳이 길지가 아님을 납득시켜야 했다. 임원준은 “이 땅이 일찍이 벼락을 맞은 바 있고, 또 시속(時俗)에 독녀혈(獨女穴)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자가 일찍 과부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고 변명했다. 나라의 대명당인 승문원 터가 졸지에 과부를 배출하는 ‘독녀혈’ 터로 둔갑했다.

한양에서 이 일대가 ‘과부굴(독녀혈)’로 불린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성종의 할아버지인 세조는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황보인 등 반대파를 재동에서 무참히 살육했다. 계유정란이라는 세조의 쿠데타로 처형당한 이들이 흘린 피 냄새가 너무 심해 땅에다 재를 뿌려야 할 정도였다. 그 아내들은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어버린 과부 신세가 됐다. 오늘날의 북촌 재동이 당시에 ‘잿골’ 또는 ‘회동(灰洞)’으로 불린 배경이자 이 일대가 과부들의 소굴인 과부굴이 된 사연이다.

독녀혈이라는 세언(世諺)까지 끌어대면서 승문원 자리인 북촌 일대가 명당이 아니라고 강변한 임원준은 풍수지리설에 매우 밝았던 인물이다. 실제로 승문원 자리가 흉지였다면 피붙이 손자가 신혼집을 차리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을 터다. 아무튼 성종은 자신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외척을 보호하기 위해 임원준의 말을 ‘믿어주는’ 쪽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사실 승문원 자리는 최양선의 주장처럼 궁궐이 들어설 만한 강한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도전이 한양 궁궐을 조성할 때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일대를 신하들의 삶 터로 배려했다는 풍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필자는 권력 기운이 왕성한 천기혈(天氣穴)을 체험해보기 위해 북촌 일대를 자주 찾는다. 실제로 경복궁 근정전의 왕기 못지않은 혈이 군데군데 맺혀 있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이곳의 명당 기운 덕을 본 정치인으로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1870년에 지어진 안국동의 윤보선 가옥과 17대 대선 1년 전인 2006년 가회동으로 이사한 이 전 대통령의 양택은 권력형 명당 기운이 강하다는 게 풍수계의 해석이다. 이 전 대통령이 살던 가회동 한옥은 ‘대권 명당’으로 소문이 난 후 현재 ‘취운정’이라는 고급 한옥호텔로 개조돼 운영되고 있다. 또 2015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운정과 직선거리로 불과 400m 떨어진 곳에 시장 공관을 마련해 대권과 관련한 행보가 아니냐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이 일대에 있는 혈 터의 경우 그 기운이 강력한 만큼 아무나 쉽게 누릴 수 있는 곳은 아닌 듯하다. 이곳에 입주해 살다가 구설에 휘말려 터에서 ‘쫓겨난’ 대권 주자도 있고, 이곳으로 입주하려 했지만 터를 구하지 못해 포기한 대권 주자도 있다. 풍수의 눈으로는 두 경우 모두 터가 사람을 거부한 것으로 본다.

최양선도 승문원 터를 길지로 지목하면서도 “개인의 집이 주산의 혈 자리에 있으면 자손이 쇠잔해진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북촌 일대는 터와 사람의 궁합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땅인 것이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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