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백석이다’ 일찌감치 점찍었죠”

김정은기자

입력 2017-12-12 03:00 수정 2017-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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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이윤택 감독-오동식 배우

연극 ‘백석우화…’에서 백석 역을 맡은 오동식 배우(왼쪽)와 이윤택 연출은 “2015년 초연 당시 매회 전석 매진돼 관객의 요청으로 객석 빈틈마다 간이의자를 추가로 놓았을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5)이 쓰고 연출한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은 남북한 모두에서 거부당한 천재시인 백석(1912∼1996)의 고단한 삶과 시를 다큐멘터리처럼 엮은 연극이다. 초연 당시 백석 역을 연기한 배우 오동식(45)은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와 연출을 겸하며 주로 조연을 맡아오던 그는 ‘백석우화…’를 통해 메인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해엔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연극 ‘백석우화…’가 22일 서울 대학로 30 스튜디오 무대에 다시 오른다. 6일 백석 역의 오동식 배우와 동아연극상 최다 개인 수상 타이틀을 쥔 이윤택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연출은 배우를 캐스팅할 때 자신만의 직관을 믿는 편이다. 오동식은 “연출님 밑에서 국립극단의 ‘문제적 인간 연산’ 조연출로 일할 때였는데 하루는 연출님이 내게 ‘네가 백석이야’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이 연출은 “나는 오래전부터 극단 배우들에게 ‘너는 햄릿이야’ ‘너는 백석이야’ 이런 식으로 미리 캐스팅을 알려준다”며 “배우 스스로 역할을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동식은 연희단거리패의 핵심 배우진에서 약간 비켜나 있었다. 이 연출이 조연에 불과했던 오동식을 일찌감치 백석 역에 점찍어 둔 이유가 뭘까. 이 연출은 “오동식이 감정의 분출에 능하거나 리듬 감각이 남다른 배우는 아니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힘은 우리 극단 배우 중 가장 뛰어나다”며 “‘백석우화…’는 사유의 연극이기 때문에 지적인 오동식을 선택했고, 그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연극 ‘백석우화…’의 한 장면. 배우 오동식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받았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연희단거리패는 창단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집단생활을 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이러한 불문율을 처음으로 깬 사람이 오동식이다. 오동식은 “극단에 애정이 깊지만, 집단생활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연출은 “백석 역시 공동체적 삶을 거부하다 북한에서 배제당한 인물”이라며 “백석과 오동식의 개인적인 성향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평안북도 정주 출생인 백석의 말투를 자연스럽게 구사해내는 것 역시 오동식의 강점이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이 정주라 어릴 때부터 정주 말을 듣고 자라 익숙했다”고 설명했다.

오동식은 “눈물이 없기로 유명한 이 연출이 ‘백석우화…’ 첫 리딩 때 처음으로 단원들 앞에서 눈물을 보여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 연출은 “시인 백석은 남북한 양쪽에서 예술가로서 활동이 금기시된 블랙리스트 예술가 1호”라며 “한국에서 예술가는 어떻게 사는가를 생각하니 막막했고, 서럽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기인 이 연출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공개 지지에 나섰다는 이유로 각종 지원사업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쓴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은 문예위의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사업에서 희곡 분야 최고점을 받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제됐다. “정치와 예술은 본래 조화로울 수 없죠. 백석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시민 문학가였지만, 북에서 삼수갑산으로 유배당할 때에도 자신을 희생하며 지조를 지켜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을 주는 예술인입니다.”

내년 1월 14일까지. 전석 3만 원. 02-766-9831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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