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의 잡학사전]색깔 다른 네모 찾기…아프리카 부족의 색깔론
황규인 기자
입력 2017-07-24 18:25:00 수정 2017-07-24 18:57:35
아래 그림에서 색깔이 다른 네모를 찾아보세요.

제 눈에는 오른쪽 하나가 전혀 다른 색으로 보입니다. 왼쪽에도 다른 색이 들어 있을까요? 글을 읽으면서 정답을 알아봅시다.
●호메로스는 색맹?
빅토리아 왕조 시대 영국 총리를 네 번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톤(1809~98)은 평생 책을 2만 권 넘게 읽은 걸로 유명합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광팬이었죠.
글래드스톤은 반복해 호메로스 작품을 읽다가 재미난 사실을 발견합니다. 당연히 푸르러야 할 에게해(海)를 호메로스는 ‘진한 와인 빛(wine dark)’이라고 표현했던 것. 물론 문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녹색 꿀, 겁에 질린 녹색 얼굴 같은 표현이 계속 등장하면서 글래드스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와인빛 에게해는 이런 느낌?
그래서 호메로스 작품에 등장한 색깔을 직접 세봤습니다. 그랬더니 검은색 170번, 흰색 110번, 빨간색 13번을 제외하면 다른 색깔은 10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파란색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죠.
깊은 고민에 빠진 글래드스톤은 호메로스가 색맹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문호만 색맹이어서는 안 되겠죠?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두 색맹이었다고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언어학의 반격
당연히 그럴 리가 있나요? 20세기 들어 언어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냅니다. 사람이 직접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언어 체계가 재해석한 세상을 본다는 거죠.
이게 색깔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언어학자들은 고대 문서를 가지고 어떤 색깔이 언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지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언어에서 똑같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고대 문서에 처음 등장한 건 검은색과 흰색이었습니다. 그 다음 빨간색이 나옵니다. 이어서 녹색과 노란색. 맨 마지막이 파란색이었던 겁니다.
언어학자들은 녹색과 파란색을 구분하지 않는 언어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우리말도 그렇습니다. 푸른 하늘은 파란색에 가깝겠지만, 푸른 숲은 녹색에 가까우니까요. 파란색 또는 파랑은 순우리말이지만 녹색(綠)은 한자어입니다.
●힘바족(族) 사례
그렇다면 푸른색을 아예 구분하지 않는 언어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를 알아보려고 언어학자들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북부에 사는 힘바족을 찾아갔습니다. 그 다음 맨 처음에 등장한 그림 두 개를 주고 똑같은 질문은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힘바 족 사람들은 왼쪽에서는 손쉽게 다른 색깔을 찾아냈지만 오른쪽에서는 못 찾았습니다. 네, 왼쪽에도 다른 색깔이 섞여 있던 겁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오른쪽에서는 못 찾으면서 왼쪽에서만 다른 색을 찾아낼 수 있는 걸까요? 다시 그림을 보시죠.

정답은 이들이 쓰는 ‘언어’ 때문입니다. 영어를 비롯해 현대 언어에서는 기본 색깔을 11가지로 구분합니다.

힘바족이 쓰는 말에는 기본 색깔이 5개뿐입니다. 이들은 색깔을 아래 그림처럼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힘바 족 사람들에게 왼쪽 그림에는 부로우(burou)에 둠부(dumbu)가 섞여 있는 거지만, 오른쪽 그림은 전부 부로우 뿐이었던 겁니다. 색약 또는 색맹 증상이 있는 분들 중에서도 왼쪽에서만 다른 색깔을 찾아내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포토샵 같은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면 왼쪽 그림에도 분명히 다른 색깔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세상을 자기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뇌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겁니다.
여전히 믿기지 않으신다고요? 색깔을 나타내는 낱말이 없다고 저렇게 다른 색을 못 보는 게 말이 되냐고요? 아래 드레스는 무슨 색으로 보이십니까? 검정과 파랑? 아니면 흰색과 금색?

서로 다른 색깔로 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못 보는 건 정말 못 보는 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제 눈에는 오른쪽 하나가 전혀 다른 색으로 보입니다. 왼쪽에도 다른 색이 들어 있을까요? 글을 읽으면서 정답을 알아봅시다.
●호메로스는 색맹?
빅토리아 왕조 시대 영국 총리를 네 번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톤(1809~98)은 평생 책을 2만 권 넘게 읽은 걸로 유명합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광팬이었죠.
글래드스톤은 반복해 호메로스 작품을 읽다가 재미난 사실을 발견합니다. 당연히 푸르러야 할 에게해(海)를 호메로스는 ‘진한 와인 빛(wine dark)’이라고 표현했던 것. 물론 문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녹색 꿀, 겁에 질린 녹색 얼굴 같은 표현이 계속 등장하면서 글래드스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호메로스 작품에 등장한 색깔을 직접 세봤습니다. 그랬더니 검은색 170번, 흰색 110번, 빨간색 13번을 제외하면 다른 색깔은 10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파란색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죠.
깊은 고민에 빠진 글래드스톤은 호메로스가 색맹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문호만 색맹이어서는 안 되겠죠?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두 색맹이었다고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언어학의 반격
당연히 그럴 리가 있나요? 20세기 들어 언어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냅니다. 사람이 직접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언어 체계가 재해석한 세상을 본다는 거죠.
이게 색깔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언어학자들은 고대 문서를 가지고 어떤 색깔이 언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지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언어에서 똑같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고대 문서에 처음 등장한 건 검은색과 흰색이었습니다. 그 다음 빨간색이 나옵니다. 이어서 녹색과 노란색. 맨 마지막이 파란색이었던 겁니다.
언어학자들은 녹색과 파란색을 구분하지 않는 언어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우리말도 그렇습니다. 푸른 하늘은 파란색에 가깝겠지만, 푸른 숲은 녹색에 가까우니까요. 파란색 또는 파랑은 순우리말이지만 녹색(綠)은 한자어입니다.
●힘바족(族) 사례
그렇다면 푸른색을 아예 구분하지 않는 언어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를 알아보려고 언어학자들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북부에 사는 힘바족을 찾아갔습니다. 그 다음 맨 처음에 등장한 그림 두 개를 주고 똑같은 질문은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힘바 족 사람들은 왼쪽에서는 손쉽게 다른 색깔을 찾아냈지만 오른쪽에서는 못 찾았습니다. 네, 왼쪽에도 다른 색깔이 섞여 있던 겁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오른쪽에서는 못 찾으면서 왼쪽에서만 다른 색을 찾아낼 수 있는 걸까요? 다시 그림을 보시죠.

정답은 이들이 쓰는 ‘언어’ 때문입니다. 영어를 비롯해 현대 언어에서는 기본 색깔을 11가지로 구분합니다.

힘바족이 쓰는 말에는 기본 색깔이 5개뿐입니다. 이들은 색깔을 아래 그림처럼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힘바 족 사람들에게 왼쪽 그림에는 부로우(burou)에 둠부(dumbu)가 섞여 있는 거지만, 오른쪽 그림은 전부 부로우 뿐이었던 겁니다. 색약 또는 색맹 증상이 있는 분들 중에서도 왼쪽에서만 다른 색깔을 찾아내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포토샵 같은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면 왼쪽 그림에도 분명히 다른 색깔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세상을 자기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뇌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겁니다.
여전히 믿기지 않으신다고요? 색깔을 나타내는 낱말이 없다고 저렇게 다른 색을 못 보는 게 말이 되냐고요? 아래 드레스는 무슨 색으로 보이십니까? 검정과 파랑? 아니면 흰색과 금색?

서로 다른 색깔로 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못 보는 건 정말 못 보는 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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