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영조의 알레르기 비염 잡은 ‘생맥산’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7-04-24 03:00 수정 2017-04-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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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황사 미세먼지 꽃가루 등 온갖 이물질이 부유하는 봄철, 우리 몸은 콧속에 1차 방어전선을 구축한다. 코털과 콧물(점액)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마치 해변의 소나무 숲이 바닷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막아주듯 방풍림 역할을 한다. 코털은 0.5μm 이상의 비교적 큰 입자를 막지만 그보다 작은 입자는 점액이 막는다. 점액은 파리를 잡는 끈끈이주걱처럼 미세먼지, 꽃가루 같은 이물질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 병원체를 흡착해 파괴하거나 씻어 내린다. 인간은 하루에 1L 이상의 콧물을 분비하는데 그 안에는 뮤신이라는 찐득한 기름 성분과 병원체를 죽이는 각종 면역세포, 수명을 다한 생체분자를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처럼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이물질과 병원체를 방어하는 면역 기능의 대부분은 콧물과 같은 점액이 담당하는데, 입에서는 침, 눈에서는 눈물, 위에서는 위액이 그런 역할을 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피부와 귀에도 극미량의 점액이 나온다.

한방에선 면역의 첨병인 점액을 보충하기 위해 주로 ‘생맥산’을 처방했다. 그 속에 들어가는 핵심 약물은 맥문동, 오미자, 인삼 등 세 가지. 우선 오미자는 신장의 기운을 북돋워 찐득한 기름기 성분의 콧물 분비에 큰 도움을 준다. 오미자를 쪼개 보면 실제 돼지 콩팥을 닮았다. 오미자는 그 이름처럼 다섯 가지 맛이 고루 나는데, 그중 대표적인 맛은 신맛이다. 신맛은 침을 고이게 하고 진액을 만든다. 양방적 분석에서도 각종 유기산과 영양물질이 포함돼 세포 면역 기능 촉진 작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맥산의 또 다른 재료 약물인 맥문동은 보리처럼 겨울에도 푸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양기가 강하고 형태는 찐득하고 촉촉하며 기름지다. 다량의 포도당과 점액질을 함유하고 있어 진액을 보충하는 작용을 한다. 인삼은 의서에 그 약효를 ‘진액을 만들고 갈증을 없앤다’고 쓰여 있을 정도로 점액 생산에 탁월하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조선의 왕들은 진이 빠진 증상이 나타나면 생맥산을 상황에 맞춰 처방해 먹었다. 침 치료로 피곤해하거나, 더위에 지쳐 진이 빠질 때, 호흡기가 건조해졌을 때 등 무려 871번이나 쓰였을 정도로 조선 왕실의 베스트 처방이었다.

특히 영조는 즉위 11년 4월 꽃가루가 날리는 봄날, 심하게 재채기를 하고 콧물이 저절로 흘러 곤욕을 치렀는데 이런저런 처방으로도 낫지 않다가 결국 어의들이 처방한 생맥산을 먹고 증세가 나아졌다. 지금으로 치면 봄철에 유행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았던 듯하다.

뿌연 미세먼지와 황사가 극성을 부리는 요즘, 만약 알 수 없는 이유로 호흡기가 불편하다면 영조처럼 생맥산을 먹어 볼 것을 권한다. 맥문동, 인삼, 오미자를 2:1:1로 넣고 달여 먹거나 차로 끓여 먹으면 되는데, 설사가 잦거나 찬 음료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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