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투성이’ 아파트 광고… 입주 땐 낭패 볼 수도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입력 2016-08-16 03:00 수정 2016-08-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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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파트 분양은 꽤나 독특한 방식이다. 사업자들은 아파트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수요자들을 모집하고, 수요자들은 또 거리낌 없이 사전 계약을 마치곤 한다. 경우에 따라선 100대1의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할 때도 종종 있다.

최근 신규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면 온통 호재뿐이다. 또 무척 살기 좋은 동네로 포장하기 급급하다. 하지만 실상은 겉보기와 다를 수도 있어 예비 청약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과장광고’ 유형을 짚어봤다.


○ 대다수 수도권 아파트 ‘서울’ 접근성 강조

아파트 분양에서 성패를 가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입지조건이다. 특히 수도권 및 광역 도시 주변 단지 일수록 교통여건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대도시 주변 아파트의 광고 단골 소재는 우수한 교통편 소개다.

지난달 분양한 ‘송도 SK 뷰(VIEW)’는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SK건설은 이 아파트를 분양을 하면서 △여의도·잠실역 구간 M버스 노선 2개 추가 신설 △인천지하철 1호선 랜드마크시티역(2020년 예정) △서울 신촌 노선 서울역 연장 운행 방안 추진 등을 내걸고 ‘서울’ 중심부와의 접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송도에서 서울역까지 45km가 넘는 거리고, 출퇴근길 자가이용과 대중교통 모두 약 1시간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통행량이 많아질 경우 목적지까지 이동 시간은 더더욱 길어질 수도 있다.

삼성물산 역시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 분양 당시 우수한 강남 접근성을 꼽았다.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는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맨션1차 아파트를 재건축해 들어설 예정. 7월 22일 래미안갤러리에서 만난 솔베뉴 분양 관계자는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는 우수한 강남 접근성은 물론 교육여건과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춰졌다.”고 말했다. 서울 동쪽 가장 끝자리에 위치한 이 단지에서 강남역까지 상습 정체구간을 거쳐 총 16.48km(명일역 출발 기준)를 이동해야하는데, 이는 경기도 안양에서 강남까지 도달하는 거리(16.85km)와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종로나 명동, 신촌 등과는 대중교통으로도 한 시간 가량 걸려 서울 중심지역으로의 접근성이 좋다고 보기 어렵다.

경기도 남양주시 지금동·도농동·진건읍 일대에 신도시급 규모로 조성중인 공공주택사업지구 다산신도시도 서울과 가까워 이동이 수월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자연앤e편한세상 △자연앤롯데캐슬 △유승한내들 △아이파크 △반도유보라 △한양수자인 △자연앤e편한세상자이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쳤고, 올해 6월 힐스테이트 진건을 비롯해 유승한내들2차 등도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하반기에는 지금지구 금강펜트리움과 에일린의뜰이 분양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이곳은 서울 중랑구에서 5km 떨어져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다. 다산 신도시 사업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약 1.5km 떨어진 서울외곽순환도로와 북부간선도로가 만나는 구리 나들목(IC)을 통해 서울 강동·중랑구까지 가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며 “강변북로와 연결되는 토평·수석 나들목도 가까워 종로 등 서울 도심까지 40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 지역이 극심한 교통정체 구간이라는 것. 지하철(8호선 연장선 별내선) 이용도 오는 2022년이 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입주가 시작되는 2018년 이후 4년 이상은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남양주와 서울을 잇는 북부간선도로나 서울외곽순환도로, 강변북로 등은 출퇴근길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교통 혼잡이 심한데다가 약 3만1900가구, 8만6000명의 인구가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산신도시가 가세할 경우 정체구간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수도권고속철도(SRT)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오는 2021년 개통 예정인 경기도 동탄이나 평택 등 아파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같은 신규 노선 호재로 해당 지역 아파트는 ‘미분양 무덤’에서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SRT·GTX를 이용하고 기존 지하철로 환승해야하는 시간도 고려할 부분이고, 만만찮은 교통비가 실거주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SRT와 GTX노선이 운행되면 동탄에서 수서까지 12분, 서울 삼성역까지는 20분이 소요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 대부분 역과 떨어져 있어 예상 시간을 단정지을 수 없다. 또 구체적인 이용 요금도 나와 있지 않은 상태다. 현재도 이들 지역에서 서울 중심권으로 이동하려면 왕복 차비만 5400원 이상 들고 있다.


○ 실체없는 교육 프리미엄

아파트 분양 시 실체없는 교육 프리미엄을 강조한 사례도 늘고 있다. 전주시 송천동 일대에 지어지는 ‘전주 에코시티 데시앙 2차’ 12블록의 경우 도보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초·중·고등학교가 들어설 것으로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부지만 확보돼 있는 상태고, 구체적인 학교 설립 계획이 나와 있지 않아 변수가 존재한다. 또 지방 특성 상 고등학교는 거리가 멀어도 기존에 잘 알려진 지역 명문고를 선호하기 때문에 신설 학교를 장점으로 내세우기엔 약해보였다.
다만, 현행법상 ‘학교설립예정’ 아파트 분양광고를 막을 방법은 없다. 지난 2월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 입주자 147명이 “분양광고와 달리 아파트 주변에 초·중교가 설립되지 않았다”며 건설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한 바 있다.

해당 건설사는 2008년 7월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교육청 계획 등을 바탕으로 ‘지구 내에 초·중고교 등이 신설될 예정’이라고 광고했으나 2010년 입주가 시작된 뒤에도 학교는 들어서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 주택 입주가 저조하고 저출산 등으로 취학연령 자녀가 줄어서였다. 1, 2심은 원고의 주장대로 허위·과장광고로 보고 건설사가 세대별로 50만~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분양 안내책자에 학교 설립시기가 특정돼 있지 않아 신설이 계획돼있다는 정도의 인상을 줄 뿐”이라며 허위·과장광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치 학원가’라는 문구를 앞세운 광고도 주의가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지난 6~7월 분양을 마친 ‘반도유보라 동탄2 아이비파크 10.0’, ‘평택 지제역 동문 굿모닝힐 맘시티’ 등은 대치동 학원가 시스템 도입을 내걸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무늬만 대치동 학원 일뿐 ‘그냥 학원’을 아파트 홍보를 위해 과대 포장한 것이라고 경계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치동 학원 시스템이 특화된 이유는 체계적이고 세밀한 학원생 관리가 알려졌기 때문”이라며 “대치동은 스타 강사들의 집결지고 ‘규모의 경제’로 학생 개개인의 학습성향에 맞는 다양한 특성화프로그램이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안양시 동안구 호계 1동 977번지에 공급하는 ‘평촌더샵아이파크’는 전국 3대 학원가로 꼽히는 평촌학원가를 도보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게 사업자 측의 설명. 실제로 아파트 위치에서 학원가 중심까지는 1km 내외로 가까운 편이다. 성인 발걸음으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평촌더샵아이파크’에서 평촌학원가까지는 도보로 약 15분이 소요되며 왕복 8차선이 있는 횡단보도를 반드시 건너가야한다.

하지만 학원가로 가기 위해선 서울외곽순환도로 고가 밑 왕복 8차선을 건너야하기 때문에 보행자가 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특히 이곳은 수원과 서울방향 차량 통행이 많고, 신호체계도 복잡해 차량과 보행자가 서로 뒤엉키는 경우도 종종 목격되는 곳이다. 평촌더샵아이파크 본보기집을 찾은 주부 박모 씨는 “광고에서 평촌 학원가를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을 갖았다”며 “실제 현장을 둘러보니 차들도 많고 8차선 횡단보도를 건너야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걸어서 학원을 가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 조망권 확보의 두 얼굴

신규 아파트들은 주변 자연 환경을 강조하면서 조망권이 뛰어나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두산건설이 지난달 계약을 모두 완료한 ‘가천대역 두산위브’는 성남 수정구 태평동 건우아파트에 자리하는데 이곳은 뒤쪽 영장산 녹색 조망권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한 같은 기간 1순위 경쟁률 89.54대1로 흥행에 성공한 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 대림산업 ‘아크로 리버하임’도 일부는 한강을 내려다 보는 단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망권은 특정 세대에 한정될뿐 저층이나 단지 위치에 따라 해당 사항이 없는 세대가 대다수다.

바다 조망권을 앞세운 초고층 아파트들 역시 논란거리다. 특히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부산 해운대 101층짜리 랜드마크타워와 민영주택 ‘엘시티 더 샵’은 환경단체로부터 해안경관을 해치고,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끊임 없이 받아왔지만 사업을 강행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밖에 동백 두산 위브더제니스(우동, 48층)·동원아파트(우동, 45층)·마린시티자이(우동, 49층) 등도 해운대 주변 초고층 아파트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 화려하게 치장된 본보기집

아파트 분양 전 사업자들은 본보기집을 먼저 공개하고 소비자들의 계약을 유도한다. 일반적으로 본보기집은 최고급 인테리어로 ‘치장’한다. 자동차로 치면 ‘최상위 옵션’으로 맞춰진 것.

우선 본보기집 유닛에는 ’발코니 확장‘이 기본 적용돼있다. 발코니 확장을 하면 거실과 방 등을 기준 평수보다 보다 넓게 활용 가능해 수요자들 대부분이 선택한다. 그런데도 사업자들은 이를 유상 옵션으로 설정해 놓고 이익을 챙기고 있다.

유닛 안의 방과 거실은 고급 벽지에 창틀, 침대, TV, 냉장고 등으로 꾸며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업자들의 ‘꼼수’가 숨겨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좁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려고 작은 책상과 소형 침대를 전시해 놓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본보기집의 인테리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자신의 가구가 들어갈 공간이 맞는지, 구조는 실생활에 정말로 유익한지 등을 체험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모든 사업자들은 본보기집 내부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중요 정보 외부유출을 막기 위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제재는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가로 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본보기집 내 사진촬영 금지는 소비자 알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도면을 유출하거나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사진촬영을 처벌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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