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유니버스’의 일본도전기 “성공인가, 실패인가?”
동아경제
입력 2015-11-04 08:00 수정 2015-11-04 08:00
“어 이름이 만화 ‘식객’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네요?”
“제가 만화 속 성찬이 보다 음식은 못 만들겠지만, 아마 차는 더 잘 팔 겁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일본 도쿄 도심 한복판 현대자동차 일본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법인장의 명함에는 눈에 익은 이름이 들어있었다. 현대자동차 상용차부문 이성찬 법인장인데, 그는 2년 전 일본으로 발령을 받았다.
현대차 상용차의 일본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대차는 지난 2009년 일본 고속·관광버스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우자동차 대형버스가 2005년 먼저 일본에 진출했으나, 1년여 만에 배출가스 등의 문제로 철수하고 만다. 그러나 대우버스의 철수가 4년 뒤 현대차 버스의 발목을 잡을 줄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대우버스가 일본에서 모두 철수한 뒤 애프터서비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일본 내 한국산 버스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나빠졌다. 특히 부품을 조달하지 못해 대우버스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결국 차를 폐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며, 한국 버스에 대한 이미지가 최악인 상황이었다.”
#현대차, 유니버스 첫해 33대 판매
이런 환경에서 현대차는 당연히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진출 첫해 받아든 성적표는 유니버스 33대 판매. 국내에서는 “그것도 실적이냐”면서 철수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당시의 상황을 볼 때 33대라는 숫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본 내 분위기를 볼 때 ‘그 정도면 선방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보면 숫자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이다.”
일본 내 버스 판매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버스 1대마다 좌석배치와 구조, 시트소재, 옵션, 페인팅 등 모든 것을 소비자가 요구하는 데로 하나하나 맞춰야 한다. 때문에 시간도 걸리고 품도 많이 든다. 여기에 일본 업체들의 가격 경쟁과 텃세까지 더해져 결국 적게 팔아서는 남는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이유로 다임러 등 유수의 글로벌 업체들은 일본 진출에 실패하고, 현지 업체들의 지분을 사들이는데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진출 이듬해부터 다양한 시장공략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우선 서비스 네트워크를 재정비하고, 정비기일을 줄였다. 또한 현지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춘 제품을 신속하게 공급하는데 공을 들였다.
#버스 1대 주문하면 6개월 이상 걸려
이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아직까지 판매 대수는 만족할 수준이 아니지만, 현대차 유니버스에 대한 인식이 상당부문 바뀐 것이다.
“아직 멀었지만 유니버스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최근에는 대리점에 찾아와 구매 조건이나 애프터서비스에 대해서 묻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것이 증거다.”
최근 이 법인장은 각 지역별 애프터서비스 망을 구축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또한 버스의 납품일 당기는 것에도 관심이 크다. 현재 버스 1대를 일본에서 주문하면 길면 일본산 버스는 1년6개월, 현대차 유니버스는 6개월가량 걸려야 소비자에게 인도된다.
“현재 분위기라면 애프터서비스 망을 제대로 갖추고, 버스 납기를 조금 더 당긴다면 일본차들과 한번 싸워볼만 하다. 이를 위해 각 지역별로 서비스센터를 정비하고 있으며, 본사에도 제품 납기일을 당겨달라고 독촉하고 있다.”
#일본 시장은 외국산 버스의 무덤
일본 상용차 시장은 다임러와 볼보가 주주로 참여한 후소와 UD트럭, 도요타 계열의 히노, 히노와 이스즈가 합작한 J버스 등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닛산과 마쓰다가 화물차를 생산하고 있어 유니버스를 제외하면 독자적인 외국산 상용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유니버스가 포진한 고속·관광버스는 유니버스를 제외하면 J버스와 후소가 지배한다.
2009년 시장점유율이 99%에 달했던 J버스와 후소는 유니버스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아지자 가격 인하로 대응했다. 이 때문에 처음에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던 차량 가격이 올해에는 비슷한 수준까지 맞춰졌다.
“일본 업체들의 가격 인하는 잠깐 거쳐 갈 것 같았던 유니버스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시장을 야금야금 침범하자 내려진 결단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격을 내려도 우리의 판매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유니버스, 내년 목표 200대 판매
유니버스는 지난해 70대를 팔았다. 연간 판매 대수가 가장 많았던 2010년 80대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 예상은 101대, 그리고 내년 목표는 200대에 누적 판매대수 658대를 달성할 계획이다.
“유니버스가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의미 있는 성장을 하고 있다. 완벽한 품질, 고도의 내구력, 까다로운 옵션을 요구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유니버스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내년에는 유니버스를 올해 대비 2배 이상 팔 계획이다.”
최근 유니버스의 판매가 급성장한데는 중국 관광객들의 영향도 컸다. 중국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관광버스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차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일본 정부가 관광객 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도쿄 소재 중국인 상대 관광업체가 하루 700대의 관광버스를 대절한 일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의문이 들었다.
“엔저에 따른 중국 관광객 수요가 당분간 더욱 늘어날 전망이고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신규 버스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의 증차가 계속되고 있다. 최소한 2020년 도쿄올림픽 때까지는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이후도 대비해야 한다. 이런 호황일 때 신뢰를 쌓아야 거품이 꺼지고 난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유니버스, 품질 내구성 일본차에 뒤지지 않아”
일본 버스와 비교할 때 유니버스가 내세울만한 강점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유니버스는 경쟁차에 비해 힘이 좋다. 급경사나 험로를 달리 때는 어느 버스도 따라오지 못해 운전사들이 선호한다. 최근엔 내구성도 좋아져 경쟁차와 비교해 뒤질게 전혀 없다. 앞으로 역량을 가진 딜러만 많이 확보하면 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현대차 상용차의 선전이 일본 시장에서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이성찬 법인장은 말하지 않았지만, 일본 시장에서 현대차 상용차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다면 언젠가는 승용차의 일본 진출을 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숫자는 작지만 유니버스는 지난 7년간 일본 시장에서 인정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수한 품질과 질 좋은 서비스로 일본 도로에서 현대차 상용차를 많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 아울러 현대차의 전체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노력할 계획이다.”
도쿄=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