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경영혁신]사업조정·부채감소… 튼튼해지는 대한민국 공기업

김준일 기자

입력 2014-08-28 03:00 수정 2014-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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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높은 경영혁신 현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연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서 “공공기관들이 부채 감축 기조를 유지하되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기업 개혁의 고삐를 죄면서 동시에 공기업의 투자 등을 통해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공기업 개혁은 올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강조했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다. 공기업 부채가 정부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데다 공기업들의 방만경영에 따른 생산성 악화가 국내 경제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처방이었다.

전 경제팀은 이에 맞춰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새 경제팀은 부채 감축을 강요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공기관의 투자를 유도해 내수 활성화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역개발, 임대주택사업, 에너지개발, 전력·가스·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담당하는 공기업들이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사업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공기업들은 이 같은 정책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성장할 수 있는 체질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부의 공기업 개혁을 계기로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온 방만경영에서 탈피하고 생산성을 높이도록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도 높은 개혁 속에 빠른 속도로 부채를 줄이고 있는 공기업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부채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 감축 속도가 두드러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월 한국전력,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공사 등 산하 11개 에너지 공기업에 대해 올해 8월 말까지 4조4602억 원의 부채를 줄이라는 강도 높은 요구를 한 바 있다. 11개 에너지 공기업은 올해 5월 말까지 이중 약 77% 수준인 3조4242억 원을 줄였다. 정부의 계획대로 부채 감축이 이뤄진다면 연말까지 부채는 183조8000억 원에서 175조9000억 원으로 줄어 7조9000억 원의 감축 효과가 생긴다.

5월 말 기준으로 이들 에너지 공기업은 정부 시책으로 무리하게 벌였던 사업을 조정해 1조8660억 원을 줄였고 경영 효율화로 7456억 원, 자산 매각으로 6182억 원을 감축했다.

한국전력은 해외사업과 전력사업의 규모와 시기를 조정해 2413억 원을 줄였으며 경상경비와 사업비용을 절감해 2264억 원을 추가로 감축했다. 또 구사옥 등을 팔아 179억 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석유공사는 92만 m² 규모의 울산비축기지를 에쓰오일에 매각해 5190억 원을 부채에서 덜어냈고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벌이던 광구를 팔아 490억 원을 추가로 줄였다. 특히 울산비축기지 부지는 에쓰오일이 8조 원을 들여 중질유 분해시설과 복합 석유화학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공기업의 부채도 줄이고 기업의 투자까지 이끌어낸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업조정으로 부채 2595억 원을 줄이는 한편 신규 원전 건설투자 합리화(967억 원), 경쟁 입찰 강화(356억 원) 등으로 부채를 절감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해외사업 조정을 통해 부채를 감축하고 있다. 해외 신규 사업에 대한 참여를 보류해 2454억 원을 감축했고 캐나다 광구 개발 사업을 축소해 741억 원을 줄였다. 이 밖에 중부발전 등 발전 5사는 사업조정으로 4603억 원, 경비 절감으로 3500억 원의 부채를 각각 줄였다.

경영혁신으로 체질 개선

공기업들은 부채 감축뿐만 아니라 내부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부채를 줄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공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직원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방만경영에서 정도경영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됐던 무역보험공사는 지난해 1인당 591만 원이었던 복리후생비를 401만 원으로 32.1% 감축했다. 또 대표적인 공기업 방만 후생제도로 꼽히던 경조사비 및 학자금 지원, 휴가제도 등 11개 사항을 공무원 수준으로 낮췄다. ‘철밥통’이라는 인식이 강한 공기업에서 성과가 저조한 간부직원을 보직 해임하는 강수도 뒀다. 이 같은 자구 노력 끝에 무역보험공사는 지난달 말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에서 해제됐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노조는 “남들이 하고 나서 우리도 따라 하지 왜 앞장서서 하느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무역공사 경영진은 18회에 걸쳐 직원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거나 지사별 순회미팅 등을 통해 소통에 나섰다. 그 결과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 계획안 통과를 묻는 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직원 약 400명 중 67%가 찬성표를 던졌다.

역시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된 한국마사회는 지정 직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비대위를 통해 단순히 복리후생비를 축소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의식문화 혁신과 제도 혁신, 실천 혁신 등을 이뤄낸다는 ‘제2창업’을 준비했다. 무사안일을 막고, 변화에 대한 저항에 저항하며, 갑의 입장을 버린다는 3개 핵심과제를 바탕으로 경영체제 전환을 진행했다.

먼저 연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승진, 급여, 보직의 연공서열을 없앴다. 부서별로 실천과제를 두고 이에 맞춰 혁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방만경영의 여지를 없애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경영혁신에 대한 거부감과 노조의 반발이 있었지만 기관장이 노조위원장을 직접 설득해 한국마사회는 500인 이상 대형 공기업 가운데 최초로 전년 대비 41% 규모로 복리후생비를 축소하는 데 합의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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