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으스스한 평화의 나라 브루나이

ES투어 여행큐레이터 박재아

입력 2017-02-20 03:00 수정 2017-02-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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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술 마시거나 캐럴 부르면 구속되는 나라


브루나이에 다녀왔다. 그 계기로 거리와 시간외에도 문화와 역사, 개념의 거리 차이에 따른 여행의 개념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루나이는 신기하지만 애매한 나라다. 놀고, 먹고, 쉬는 여행지로서의 일반적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매력이 없다거나 가볼 가치가 없는 곳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 이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고 전세기가 뜨고 7성급 호텔에 묵는다는 기대하나만으로 무작정 떠난다면 아쉬운 구석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브루나이의 정식 국명은 말레이어로 브루나이 다루살람이며 ‘평화의 땅 브루나이’라는 뜻이다. 보르네오 섬 북단에 자리잡고 있고,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다. 국토면적은 보르네오 섬의 100분의 1인 5770km²로 경기의 면적이 약 1만 km²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 작은 나라다. 인구 역시 40만 명이 조금 넘는데, 의정부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인종 구성은 말레이가 67%, 중국계 말레이는 10%, 언어는 영어와 말레이어를 쓴다.

브루나이의 복지 수준은 해외토픽 감이다. 모든 브루나이 국민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혜택을 받는다. 60세부터는 연금이 지급되는데 이것도 내는 돈이 전혀 없다. 가구 당 차가 4대 지급되기 때문에 대중교통은 구간을 막론하고 1달러를 내면 탈 수 있는 버스와 수상가옥들 사이를 오가는 보트뿐이다. 택시는 전국에 48대 뿐이라 콜택시로 운영된다. 30만원만 내면 4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축구장 크기만한 수상가옥을 평생 임대할 수 있다. 브루나이에서 고칠 수 없는 병은 주변 국가로 보내 끝까지 고쳐주고, 유학도 보내준다. 설날에는 국왕이 직접 세뱃돈을 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복지의 절정은 브루나이에 매장된 14조 배럴의 원유와 천연가스 덕분인데, 50년간 국민에게 세금 한 푼 받지 않아도 먹여살릴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국왕의 소비 수준은 당연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국왕의 저택은 개인이 소유한 집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인 23㎢로 5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과, 1770개의 방, 260개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안 뜰에는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 승용차 7000 대가 주차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사는 동안 모든 차를 한 번이라도 타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든다.

이쯤되면 자연스레 브루나이로의 이민에 관심이 생길 법하다. 브루나이대사관의 홈페이지를 보면 ‘형식상 신청 자격은 제한이 없으나, 취득하는 것은 개별 심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취득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적혀 있다. 브루나이 국민이 될 수 있는 ‘제한적인 조건’은 세 가지가 있는데, 재미있다 못해 황당하다. 첫째는 브루나이 남자와 결혼해 15년 이상 사는 방법이다. 둘째는 꾸란을 통째로 외워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는 것이다. 세째는 33자나 되는 국왕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에는 한 번 도전해 볼 만할 것 같다. 무슬림은 평생 4번의 결혼을 할 수 있는데, 국왕 역시 이 율법에 따라 3번의 결혼을 했고 마지막 한 번의 결혼 기회가 남은 터라 전 세계에서 미혼 여성들의 이력서가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강력한 무슬림 국가답게 20세기 들어 이슬람 형법인 ‘샤리아’를 채택한 나라는 브루나이뿐이다. 브루나이 정부는 2013년 10월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에 기반을 둔 샤리아 형법의 도입을 공포했다. 샤리아 형법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국적에 관계없이 브루나이 영토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적용된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미풍양속을 훼손하는 행위 또는 옷차림도 처벌을 받는다. 2015년부터는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는 물론이고 캐럴을 부르는 것도 안 된다. 어기면 최고징역 5년에 처한다고 엄포를 놨다. 이보다 더 신기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많지만 직접 방문해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여백으로 남기고자 한다. 여행지로서 브루나이의 매력에 대한이야기는 다음 호에 이어진다.

ES투어 여행큐레이터 박재아 DaisyPark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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