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할머니 “내 인생 부침개 같더라고, 확 뒤집어져뿌렀당께”

안미은 여성동아 기자

입력 2017-04-22 03:00 수정 2017-04-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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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화제]71세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

《“요즘 누가 가장 재밌는데?”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유튜브 동영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 하는 질문이다.

올봄 대한민국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박막례 할머니”라고. 박 할머니는 올해 71세의 뷰티 유튜버다. 요즘은 ‘크리에이터’라는 별칭도 있다.

개성 있는 화장법뿐 아니라 말 그대로 여러 가지를 ‘창조’한다. 방송학을 전공한 손녀 김유라 씨(28)가 올해 1월 할머니와 단둘이 떠난 호주 여행기를 3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게시했는데, 그게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하루아침에 SNS 스타가 됐다. “염병” 하는 할머니의 리얼한 욕과 차진 전라도 사투리, 소소한 일탈이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다.

22일 발매되는 ‘여성동아’ 5월호는 할머니의 화보 촬영 현장 스케치와 인터뷰를 실었다.》
 
‘여성동아’ 화보 촬영에 도전한 뷰티 유튜버 박막례 씨. 연예인처럼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차도녀’로 변신했다. 스튜디오이스키 최승광
호주 여행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메이크업’ ‘박막례 할머니의 라이언 초콜릿 만들기’ ‘계모임 갈 때 메이크업’ ‘옥희 생일파티 갈 때 하는 네일아트’ ‘파스타를 처음 먹어봤어요’ ‘양계장 갱스터’ 등 유튜브에서 본 적 없던 ‘할머니’ 코드로 풀어낸 이야기들은 솔직함과 정겨움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이미 23만 명을 넘어섰다.

박 할머니가 이번엔 톱스타들만 하는 ‘화보 촬영’에 도전했다. ‘여성동아’의 제안으로 시작된 생애 첫 화보 촬영일, 트렌치코트에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박 할머니가 손녀와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곱슬한 머리카락을 베레모로 감춘, 우리 모두가 기대한 ‘파워 유튜버 박막례’의 등장이었다. “워메! 내가 살다 살다 이런 델 다 와 보고.”

촬영 중간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포토그래퍼를 향해서는 “뭔 놈의 사진사가 엎어져서도 찍고 의자에 올라가서도 찍고, 서커스만치 누워서도 찍고 한디야”라고 말할 줄 아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변신을 위해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에 머리카락을 붙여서 긴 생머리를 연출하자 20대 이후로 처음이라며 소녀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할머니 피부가 참 좋다. 뷰티 유튜버답다.

박막례=얼굴은 못나도 우리 엄마가 피부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낳아 줬지. 가끔 유라가 얼굴에 축축한 걸(팩) 붙여주는데, 그런 거 한다고 피부 좋아지는 거 아니야. 타고나야 돼.

김유라=
할머니는 천생 여자세요. 특별한 날엔 풀 메이크업을 하는데, 무조건 입술과 볼을 뻘겋게 칠하는 게 포인트예요. 친구들이 “너 볼딱지가 왜 그러냐? 갱년기 왔냐?” 하고 묻는다고 화를 내시면서도 열심히 ‘볼딱치(볼 터치)’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어요.

사실 메이크업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가장 흔한 소재 중 하나다. 그런데 박 할머니가 하면 예상치 못한 재미가 나온다. 예를 들면 ‘시간 절약을 위해 스킨과 로션을 섞어 발라’ ‘화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해야 지워지지 않아’라는 황당한 팁이나 속눈썹을 올리기 위해 이쑤시개를 라이터로 태우는 ‘불 쇼’ 장면 등에선 입이 벌어진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요즘 화장법을 역주행하는 박막례식 화장법은 그러나 묘한 설득력이 있다. 화장한 티를 확실하게 내주고, 그 어느 메이크업 전문가보다 따라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메이크업’의 경우 조회 수가 160만 건을 넘었다.


―메이크업 영상 게재 뒤에 구독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인기를 실감하나.

박=다 늙은 사람이 나와서 화장하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할까 몰라. 신기하지. 생전 모르는 사람이 식당으로 찾아오니까 얼떨떨하고.

김=할머니의 이런 엉뚱한 면에 사람들이 끌리는 거예요. 영상을 찍으면서 할머니도 젊은 사람들처럼 똑같이 예뻐 보이고 싶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 떨고 싶고,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할머니는 제가 뭔가 하자고 할 때 “싫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취향 차이 때문에 투덜거릴 땐 있어도요(웃음).


―진부한 소재도 박막례 할머니가 하면 특별해진다.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도 남다를 것 같다.

김=할머니 건강에 대한 걱정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요. 올해로 일흔한 살이 된 할머니께 병원에서 치매를 조심하라고 하는데, 덜컥 겁이 났어요. 이모할머니 두 분이 치매여서 내심 걱정이 됐거든요.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호주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일주일 휴가를 낼 수가 없더라고요. 미련 없이 퇴사했어요(웃음). 나중에 두고두고 보려고 할머니 여행 영상을 찍었는데, 그걸 편집해 놓으니 정말 웃기는 거예요. 혼자 보기 아까워서 유튜브 채널에 올린 거죠.

박=회사를 관둔다고 해서 말렸는데, 벌써 관뒀다 그러네. 그럼 뭐 짐이라도 싸야지. 짐 싸고 있으니까 막 카메라를 가져와 들이밀대. 그때 요상하게 심장이 쿵쾅대더라고. 호주는 참말로 좋더라. 바다에 자빠져서 스노클링도 하고, 헬멧 같은 걸 쓰고 물고기 밥도 주고. 손녀 복 있다는 얘기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해.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 씨가 인터뷰 뒤에 끌어안고 감격스러운 기념사진을 남겼다.



―박 할머니의 젊은 시절 꿈은 뭐였을까.

박=결혼해서 우아하게 현모양처로 사는 게 꿈이었지. 우리 친정이 농사를 여러 가지 지어서 잘살았어.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친정 올케가 서울로 부르데. 서울 인심이 얼마나 야박한지 식구들이 많다고 전세방을 안 준다잖아. 그래서 올케가 나를 중매로 시집 보내 버렸어. 결혼하고 잘살 줄 알았는데, 일만 죽도록 해 버렸네(웃음).


―결혼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나.

박=유라 아빠가 다섯 살 정도 됐을 때 서울에 왔어. 남편은 다른 여자 만나서 집 나가 버리고, 혼자 내 손으로 3남매를 키웠지. 우리 애들 공부 하나는 어딜 가든 기죽지 않게 시키려고 안 해본 일이 없어. 파출부로 일하다가 리어카에서 채소 팔고, 길거리에서 떡도 팔아 보고. 버스요금 아끼려고 매일 반포동에서 사당동까지 걸어 다녔지. 하도 힘들게 사니까 경기도 용인 사는 친구가 음식 장사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 묻더라고. 그 길로 이사해서 지금까지, 식당 문 연 지 벌써 42년이나 됐네. 남편 없이 혼자 식당 한다는 말 안 들으려고 참 억세게 장사했다. 그러니 내가 욕이 입에 붙어, 안 붙어?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세상 풍파 다 겪고 행복하실 일만 남았다. 지금 할머니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뭔가.

박=유튜브 하는 거지. 멀리 사는 친구가 몸이 아픈데, 밤마다 그 친구 아들이 내 영상을 틀어줘서 웃다가 잠든다고 하더라. 이런 게 행복이지 뭐야. 서울 사람들이랑 이렇게 모여서 재미있는 촬영도 하고. 눈꼬리를 귀때기까지 죽죽 그리고, 머리를 막 떼었다 붙였다 하는데 꼭 오페라 보러 가는 우아한 부인 같지 뭐야.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지우나.

김=할머니가 아까부터 계속 “나 머리 감지 말고 내일 계모임 때 이대로 갈까” 하고 물으세요. 할머니가 그저께 자신의 인생이 부침개 같다고 하셨어요. 확 뒤집어졌다고요. 일흔한 살이 되어서야 자기 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고요.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로 서 있는 할머니를 보니까, 감격스러워서 제가 자꾸 눈물이 나요.

박막례 할머니 인생 최초의 화보 촬영 동영상도 물론 손녀 김유라 씨가 찍었다. ‘여성동아’ 5월호가 발매된 뒤에 유튜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또 하나의 걸작이 되길 기대한다.
 

▼‘파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 동영상 베스트 5▼

[1] 치과 들렀다가 시장 갈 때 메이크업

-조회 수 165만6108회


4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커리어 우먼 박막례 할머니. 민낯으로 손님을 만나게 될까 봐 치과나 시장에 갈 때도 메이크업은 필수. 신속한 손놀림으로 스킨케어를 하고 단숨에 아이와 립 메이크업을 완성한 다음 셰이딩으로 마무리하는 포인트 메이크업의 진수를 보여준다.


[2] 계모임 갈 때 메이크업

-조회 수 72만5706회


계모임처럼 중요한 자리에서 돋보이고 싶을 때 연출하기 좋은 메이크업. 뒷담화가 심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특성도 있다. 메이크업 원칙은 ‘무조건 진하게’다. 과도한 볼 터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오지라퍼들을 향한 할머니의 하소연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3] 라이언 초콜릿 만들기

-조회 수 69만7209회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생애 처음 초콜릿 만들기에 도전했다. 초콜릿 양이 적다고 구수한 욕을 내뱉는가 하면, 가게로 뛰어 내려가 가니시(장식)로 사용할 아몬드를 가져오는 등 할머니의 엉뚱한 모습이 웃음을 준다. 13분 가까이 되는 긴 영상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4] 옥희 생일 파티 갈 때 하는 네일 아트

-조회 수 60만4394회


친구 옥희 할머니의 칠순 잔치에 가기 위해 셀프 네일 아트를 선보인 박막례 할머니. 빨간색 매니큐어에 흰색 매니큐어로 일명 ‘땡땡이’ 네일을 완성했다. 식당 일로 부르튼 할머니의 손과 어설픈 네일 아트가 대비된다. 헌법재판관의 ‘헤어 롤’을 떠올렸다는 사람도 많다.


[5] 파스타를 처음 먹어봤어요

-조회 수 56만5865회


할머니의 파스타 첫 경험을 영상으로 담았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맛있다며 파스타를 즐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나의 할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애잔함이 있다. 공짜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과 음료에 감동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안미은 여성동아 기자 labri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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