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에 누워 ‘녹색샤워’… 바람에 춤추는 건 나뭇잎일까 내 마음일까

글·사진 제주=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입력 2021-10-09 03:00:00 수정 2021-10-09 03: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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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웰니스 명소 제주 숲길

제주 서귀포시 치유의 숲길 쉼팡(쉬는 곳)에서 한적하고도 느긋한 분위기를 즐기는 관광객들.

《제주도 해안을 빙 둘러보는 올레길이 제주의 아름다운 겉옷이라면, 한라산 중산간 숲길은 제주의 감추어진 속살 같은 곳이다. 화산석과 원시림이 무성한 제주 숲길에는 조선시대의 말 목장과 잣성(방목용 돌담장), 도자기 굽던 가마터, 화전민들의 집터 등 제주인의 삶과 역사도 만나볼 수 있다. 그런 숲길을 걷다 보면 절로 몸과 마음이 힐링된다. 코로나19 시대에 제주 숲길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비대면 여행지이자 웰니스 관광지로 급격히 부상 중이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멍때리기

서귀포시 호근동 한라산 자락(시오름)에 자리한 ‘서귀포 치유의 숲’은 총 174ha(약 53만 평) 규모에 15km의 숲길이 조성돼 있다. 서귀포시가 2016년 6월에 개장한 이 숲은 수령 60년이 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편백군락과 삼나무군락을 비롯해 난대림, 온대림, 한대림 등 제주 고유의 자생식물을 품고 있다. 이 숲은 천연의 자원 덕분에 ‘201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고, 연이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Wellness) 관광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영양·휴식·치유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숲의 속살을 체험하도록 조성한 숲길은 총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의 방문자센터부터 시작되는 1.9km의 길을 ‘가멍오멍 숲길’이라 부르는데, 이 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형태다.

사람들이 쾌적하다고 느끼는 320∼760m 지대에서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와 삼나무숲길을 걷다 보면 공기 맛이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상큼하다. 산책길은 야자수 껍데기로 엮어 만든 매트와 나무가 깔려 있어 걷기에도 편하다. 코스가 길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곳곳에 ‘쉼팡(쉬는 곳)’을 마련해 놓아 숲을 감상하며 충분히 쉴 수 있다. 아예 편안하게 누워서 쉴 수 있는 편백나무 매트와 해먹이 설치된 공간도 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경쾌한 새소리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는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영유아 등 보행 약자를 배려한 숲길도 따로 마련돼 있다. 서귀포시 산림휴양관리소 양은영 산림치유지도사는 “관광취약계층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노고록 무장애나눔길’(1.5km)을 마련해 놓았는데 호응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이 숲길은 지난해 문체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 선정됐다.

치유의 숲이란 이름답게 다양한 산림치유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코로나19로 지친 가족들을 위한 ‘가족 산림치유’, 직무 스트레스 해소와 정신 건강을 위한 ‘직장인 산림치유’, 몸의 이완과 면역력 증강을 위한 ‘일반인(성인) 산림치유’ 등 원하는 프로그램을 사전 예약하면 이용이 가능하다. 프로그램에는 ‘산림휴양해설사’라는 이름의 마을 주민이 동행해 숲 해설은 물론이고 제주의 구수한 문화와 역사를 덤으로 들려준다.

원래 이 숲은 조선시대에 말과 소 등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고 이후에는 제주 화전민들의 삶터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화전민들을 쫓아내고 목재로 쓰기 위한 편백과 삼나무를 이 숲에 대량으로 심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방목용 잣성과 화전민들이 살던 집터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치유의 숲은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며, 하루 방문 인원도 제한된다(주중 300명, 주말 600명).

○원시의 비경, 고살리숲길과 이승이오름

좀 더 한적한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고살리숲길(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과 이승이오름 산책로(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가 좋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동쪽으로 10여km(자동차로 20분 거리) 거리의 고살리숲길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나홀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비대면 안심여행지다.

한라산에서 흘러온 효돈천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길이가 2.1km로 길지 않지만 원시의 비경을 담고 있다. 숲길은 삼나무, 감탕나무 등 쭉쭉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로 우거져 있고 바닥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듯 이끼 낀 돌들로 미끄럽기까지 하다. 조심조심 숲길을 걸어가면 나무숲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서귀포시 하례리에 있는 고살리숲길 속괴(연못). 폭포절벽과 바위 위의 적송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고살리숲길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속괴’라는 연못. 건천(乾川)인 효돈천이 흘러들어 생성된 속괴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지형이다. 깊이를 모를 깊고도 거무스레한 물은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속괴 왼쪽으로는 누군가 촛불을 밝혀 놓은 기도 터가 있다. 제주사람들 사이에 이른바 기도발이 잘 듣는다고 소문난 곳이라고 한다. 풍수적으로 속괴 주변으로는 명당 기운이 형성돼 있다. 속괴는 특히 비가 내릴 때의 폭포수가 장관이고, 폭포 절벽 위쪽 네모난 바위 옆의 적송(赤松)도 운치를 더해준다. 자연의 온갖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바위틈에서 꿋꿋하게 자란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서귀포시 신례리에 있는 이승이오름의 명소 ‘해그문이소’에서는 물빛에 반사되는 경관이 환상적이다.
고살리숲길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이승이오름 산책로(2.5km 순환코스) 또한 비대면 안심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승이오름은 인근의 ‘신례천 생태로’와 ‘한라산 둘레길’과도 연결돼 있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서편 능선 하단부에 흐르는 작은 하천이 빚어놓은 천혜의 비경이 압권이다. 특히 높이 20m 남짓한 하천 절벽 아래로 흘러내린 폭포가 3∼5m의 소(沼)를 이룬 ‘해그문이소’는 요정이 살았을 법한 영화 속 원시림 배경 같다. 검푸른 물 빛깔의 해그문이소는 소를 덮은 나무들이 빽빽하고 울창해 한낮에도 해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끼를 잔뜩 머금은 바위와 검푸른 물빛은 태곳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화산암 덩어리를 뿌리로 감싸 안은 나무들 또한 신비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승이오름 산책로에서는 반지하식 석축요 형태의 숯가마 터와 일본군 진지 동굴,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 덩어리인 화산탄(火山彈) 등 제주 고유의 흔적도 살펴볼 수 있다.

○몸으로 체험하는 웰니스 여행, 취다선리조트

취다선리조트의 요가 장면. 이곳의 투숙객들은 무료로 명상, 요가,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다.
제주의 자연과 충분한 교감과 힐링의 시간을 가진 후 직접 몸으로 변화를 느껴보고 싶다면 제주 취다선리조트의 명상과 요가, 다도(茶道)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취다선 리조트에 투숙한 이들은 누구나 이른 아침 지하 1층 명상룸에서 차를 마시며 명상에 들어가는 ‘차 명상’, 요가, 감정 치유 아로마세러피 등 여러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다도를 원하는 이들은 차실에서 ‘티 마스터(Tea Master)’로부터 차를 우리는 것에서부터 일상에서 즐기는 방법까지 모두 배울 수 있다.

제주자연생태공원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갈대밭. 갈대밭을 지나면 제주의 화산 폭발로 생성된 저지대 분화구도 볼 수 있다.
제주 웰니스 관광 사업 시찰차 이곳에 들른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박호형 의원은 “제주도는 관광과 힐링을 함께할 수 있는 세계적인 웰니스 관광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에는 제주자연생태공원의 갈대밭 길, 수목원인 상효원의 곶자왈(나무숲+자갈) 원시림과 사시사철 꽃밭길 등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보면 분위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웰니스 관광 자원이 넘친다.





글·사진 제주=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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