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실거주 입증’ 법원 판결도 갈팡질팡
김자현 기자
입력 2023-08-02 03:00 수정 2023-08-02 03:00
전세 계약갱신요구권 도입 3년
갱신 거부사유 바꿔도 다른 판단
사례별 하급심 판결 엇갈려
세입자-집주인 등 혼란 커져
서울 중랑구의 빌라 3층에 살던 세입자 A 씨는 지난해 2월 전세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아래층에 살던 집주인 B 씨로부터 “계약이 끝나면 집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입자가 위층에 있어 자신이 옥상을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A 씨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며 전세계약을 2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B 씨는 거절했다. 또 A 씨가 집을 비우지 않자 퇴거 소송을 제기하며 말을 바꿔 “손자가 그 집에 살 것”이라고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본인 또는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A 씨가 낸 소송을 심리한 서울북부지법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집주인이) 제3자에게 임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B 씨가 거절 사유를 바꾸긴 했지만 실거주 목적이 분명한 만큼 계약갱신을 거절한 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2020년 10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계약갱신요구권(세입자가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할 권리)이 인정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 측이 실거주할 때만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데, 실거주 여부를 사전에 입증하기가 어렵다 보니 하급심 판례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1심 판결 후 A 씨 측은 “이미 퇴거당한 임차인은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B 씨의 말이) ‘옥상 사용’에서 ‘손자 거주’로 바뀌는 등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항소했다. 2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동욱)는 지난달 14일 항소를 기각했고, A 씨는 상고했다.
반면 인천지법은 “아파트를 팔겠다”며 세입자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가 “실거주하겠다”고 말을 바꾼 집주인이 세입자를 상대로 낸 퇴거 소송에서 2021년 5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계약갱신 거절 사유를 바꾼 걸 보면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므로 계약갱신 거절은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 목적임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실거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약갱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급심 판례가 엇갈리다 보니 세입자와 집주인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세입자 김모 씨(32)는 올 초 아파트 전세계약을 갱신하려 했지만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했다. 그는 “집주인이 이미 같은 단지의 넓은 평수 아파트에 살고 있어 ‘실거주’ 사유가 의심스러웠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 (소송 등을) 포기하고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반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를 임대하고 다른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임대인 박모 씨(53)는 “자녀의 대학 입학 후 원래 아파트로 돌아가려 했지만 세입자가 ‘실거주 예정 증거를 보여 달라’며 계약갱신을 요구해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할 경우 임차인은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확인해 다른 세입자가 들어온 건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임대인이 실거주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임차인은 월 임차료 3개월분 한도 등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전출 후라 현실적인 구제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실거주 목적을 의심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 등에 대한 대법 판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갱신 거부사유 바꿔도 다른 판단
사례별 하급심 판결 엇갈려
세입자-집주인 등 혼란 커져
서울 중랑구의 빌라 3층에 살던 세입자 A 씨는 지난해 2월 전세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아래층에 살던 집주인 B 씨로부터 “계약이 끝나면 집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입자가 위층에 있어 자신이 옥상을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A 씨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며 전세계약을 2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B 씨는 거절했다. 또 A 씨가 집을 비우지 않자 퇴거 소송을 제기하며 말을 바꿔 “손자가 그 집에 살 것”이라고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본인 또는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A 씨가 낸 소송을 심리한 서울북부지법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집주인이) 제3자에게 임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B 씨가 거절 사유를 바꾸긴 했지만 실거주 목적이 분명한 만큼 계약갱신을 거절한 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 재판마다 다른 ‘실거주’ 요건
2020년 10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계약갱신요구권(세입자가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할 권리)이 인정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 측이 실거주할 때만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데, 실거주 여부를 사전에 입증하기가 어렵다 보니 하급심 판례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1심 판결 후 A 씨 측은 “이미 퇴거당한 임차인은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B 씨의 말이) ‘옥상 사용’에서 ‘손자 거주’로 바뀌는 등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항소했다. 2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동욱)는 지난달 14일 항소를 기각했고, A 씨는 상고했다.
반면 인천지법은 “아파트를 팔겠다”며 세입자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가 “실거주하겠다”고 말을 바꾼 집주인이 세입자를 상대로 낸 퇴거 소송에서 2021년 5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계약갱신 거절 사유를 바꾼 걸 보면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므로 계약갱신 거절은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 목적임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실거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약갱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엇갈린 하급심 판단에 세입자-집주인 혼란
하급심 판례가 엇갈리다 보니 세입자와 집주인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세입자 김모 씨(32)는 올 초 아파트 전세계약을 갱신하려 했지만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했다. 그는 “집주인이 이미 같은 단지의 넓은 평수 아파트에 살고 있어 ‘실거주’ 사유가 의심스러웠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 (소송 등을) 포기하고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반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를 임대하고 다른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임대인 박모 씨(53)는 “자녀의 대학 입학 후 원래 아파트로 돌아가려 했지만 세입자가 ‘실거주 예정 증거를 보여 달라’며 계약갱신을 요구해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할 경우 임차인은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확인해 다른 세입자가 들어온 건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임대인이 실거주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임차인은 월 임차료 3개월분 한도 등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전출 후라 현실적인 구제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실거주 목적을 의심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 등에 대한 대법 판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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