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시가 층-향 등급 공개 철회 이유는 [세종팀의 정책워치]

오승준 기자

입력 2024-03-26 03:00 수정 2024-03-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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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차이 ‘낙인효과’ 민원 우려에
이의신청 소유주에만 공개하기로
교차검증 등 투명성 확보방안 필요


정부가 아파트 공시가격 산정에서 층·향·조망 등에 등급을 매겨 전면 공개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한다고 25일 밝혔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부터 층(최대 7등급)과 향별(8개 방향) 등급을 공개하기로 했는데, 이를 철회한 겁니다. 그 대신 공시가격에 대한 이의 신청이 들어오면 소유주 당사자에게만 공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공동주택의 경우 한국부동산원이 연말에 공시가격을 조사해 이듬해 3월 공개합니다. 보통 조사 시점의 실거래가가 공시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죠. 그런데 같은 아파트라고 해도 1층과 로열층(고층)은 실거래가가 수억 원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이런 차이를 부동산원 자체 기준으로 공시가격에 반영해 왔는데,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려 한 것이죠.

그간 공시가격은 산출 기준이나 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공시가격은 부동산 관련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책정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부동산원에는 주로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같은 층인데 내가 공시가격이 더 높게 산정된 이유가 뭐냐” 등의 민원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2019년에는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포레’ 공시가격이 담당자 실수로 층별 차이를 반영하지 않고 산정돼 나중에 230채 전체 공시가격이 통째로 변경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다만 시행을 앞두고 개인 자산을 정부가 등급으로 평가해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공시가격을 통해 특정 층, 특정 방향이 더 가치가 높다고 정부가 확정해 버리는 일종의 ‘낙인효과’가 발생할 거라는 우려도 컸습니다. 층과 향별 차이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근거를 갖고 객관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공시가격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공시가격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60개가 넘는 행정제도의 근거가 되고 시세와 연동되는 만큼 부동산의 가치에도 영향이 있죠. 근거 공개는 철회됐다고 하더라도 공시가격 산정 과정에 대한 교차 검증 등 투명성을 확보할 다른 방안이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기억하길 바랍니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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