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파리로 초대합니다…‘이건희 컬렉션’ 해외미술품 전시 

김태언기자

입력 2022-09-20 14:03 수정 2022-09-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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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컬렉션-모네와 피카소’ 21일 개막

전시장에 놓인 가로등 불이 깜빡거린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곳. 마치 흐린 날 프랑스 파리의 노천 카페에 온 듯 하다. 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관람객들을 19세기 말 파리로 초대한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장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 전시는 마르크 샤갈, 호안미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선보인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해외미술작품 중 피카소의 도자 22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다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했던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 출품됐던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을 제외하면 모두 첫 공개다.

이들 8명의 작가는 모두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 파리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이는 국제 미술의 중심지였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로, 선후배와 동료로 만나 각자의 성장을 거듭했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국적 다른 8명의 거장들이 파리에서 만나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폴 고갱, 센강 변의 크레인, 1875, 캔버스에 유채, 77.2×119.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전시장 초입에 놓인 피사로와 고갱은 유명한 사제지간이다. 피사로는 고갱의 초기작 ‘센강 변의 크레인’(1875) 등을 접한 뒤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피사로는 당시 증권 중개인이었던 고갱에게 직접 풍경화를 지도하고 전시회 참가 기회를 주는 등 전업 화가의 길로 이끈다. 파리 근교의 전원 풍경과 아이 손을 잡고 강변을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포착한 ‘센강 변의 크레인’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시장 풍경을 그린 피사로의 ‘퐁투아즈 곡물 시장’(1893)과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이유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곡물 시장, 1893, 캔버스에 유채, 46.5×39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작가들 사이에서도 큰 주축이 되는 작가는 피카소였다. 미로와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처음 파리를 방문한 작가들이다. 세 사람은 모두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서로를 처음 만나 교류했다. 이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마 종족인 켄타우로스를 주제로 한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과 피카소의 도자 ‘켄타우로스’(1956), 사람과 새와 별이 있는 밤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미로의 ‘회화’(1953)와 피카소의 ‘큰 새와 검은 얼굴’(1951)은 작가들 간의 접점을 보여준다.

호안 미로, 회화, 1953, 캔버스에 유채, 96×376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22

파블로 피카소, 큰 새와 검은 얼굴, 1951,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50x47x3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2022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르누아르는 피카소가 뒤늦게 매료된 작가다. 피카소는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를 발견하곤 1919년 존경의 마음을 담아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샤갈은 피카소를 1910년부터 피카소를 만나고자 노력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불발되다 1940년대 말 피카소가 도자를 제작하던 남프랑스에서 처음 조우한다. 연인과 꽃 등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담은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은 피카소가 꽃다발이나 비둘기 등을 그려낸 도자와 겹쳐봐도 좋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 1917-1918, 캔버스에 유채, 46.5×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작가들 간 관계성이 전시 기획의 착점이 됐지만, 작품은 개별로 관람하기에 더 적절하게 꾸려졌다. 원형 전시장은 3개의 레이어로 나뉘어 외벽에는 회화 작품을, 가운데에는 피카소의 도자를, 가장 안쪽에는 카페처럼 공간을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피카소의 도자들은 1948~1971년에 제작된 ‘피카소 도자 에디션’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피카소의 도자에는 그가 회화, 조각, 판화작품에서 활용했던 다양한 주제와 기법들이 응축돼있어 피카소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볼 기회다. 내년 2월 26일까지. 무료.

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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