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세월 품은 일제시대 정미소, 시와 예술을 품다
익산=김태언 기자
입력 2022-11-21 13:51 수정 2022-11-21 14:14
전북 익산시 춘포면에는 108년 된 폐공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 1998년 폐업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있던 공장이 이제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관객을 맞이한다.
그 주인공은 ‘기억’을 소재로 사진, 회화 등을 작업해온 조덕현 작가(65).
조 작가는 지난해 7월 15일 출사를 나갔다가 차 사고가 나 방황하던 중 공장을 발견했다. 소유주인 서문근 씨와 논의해 전시를 열기로 했다.
올해 4월 열린 개인전이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다. 총 54점이 놓인 전시장은 도정시설이 있었던 중앙 공간과 좌우에 각각 놓인 창고 세 칸, 공장 앞에 놓인 정원 등을 모두 활용했다.
16일 만난 조 작가는 “이 공간은 격변의 세월을 지나오며 막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잊힌 공장의 공간성과 그에 관한 기억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의 실마리는 이춘기(1906~1991)라는 인물을 찾으면서 풀렸다.
춘포면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춘포에서 살았다. 이춘기는 춘포교회를 앞에 모인 지역민들의 초상화 ‘&memoir’(2022년)에 등장한다.
조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돼있는 이춘기의 30여년 치 일기 중 일부를 스캔해 삼각기둥에 붙였다. ‘&diary’(2022년) 속 글과 낙서 같은 그림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양육과 노동의 고단함,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겼다.
이춘기라는 무명인의 예술은 동시대 시인의 시로 이어진다.
조 작가는 “그렇게 예술적인 몸부림을 치며 도달하고자 했던 분”으로 김용택 시인(74)을 떠올리고 올해 1월 연락을 취했다. 시인의 허락 하에 작가는 미발표 시집 2권 중 28 작품을 10월부터 메인 전시장과 정원에 선보였다.
특이한 점은 투명 아크릴 판에 새겨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지금 시대의 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그런 시”라고 말했다.
시는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시분(詩盆)’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그릇 바닥에 시가 쓰여 있어 낙엽, 꽃잎이 떠다니는 빗물 사이로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김 시인은 “여린 시들이 자연에 묻히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시 옆 잎 하나, 꽃 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다. 역시 예술은 죽어있는 것들을 살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전용 전시장이 아니기에 작품과 공간을 관리하는 것도 조 작가 몫이다. 개인전은 내년 4월 22일에 끝나는 장기 전시다.
작가는 “1년간 정원사처럼 전시장 내·외부 작품과 공간을 수시로 손본다. 버려진 창고와 화장실, 돌멩이 하나까지 다 예술로 살아나는 이 공간의 장소성과 시간성을 느끼는 실험적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올 때는 이곳의 개망초와 풀, 나무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궁금하다”고 말한다.
작품 중 약 30점은 전북 완주시 오스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춘포도정공장 전시 입장료는 5000~1만 원.
익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일제강점기인 1914년,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 1998년 폐업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있던 공장이 이제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관객을 맞이한다.
그 주인공은 ‘기억’을 소재로 사진, 회화 등을 작업해온 조덕현 작가(65).
조 작가는 지난해 7월 15일 출사를 나갔다가 차 사고가 나 방황하던 중 공장을 발견했다. 소유주인 서문근 씨와 논의해 전시를 열기로 했다.
올해 4월 열린 개인전이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다. 총 54점이 놓인 전시장은 도정시설이 있었던 중앙 공간과 좌우에 각각 놓인 창고 세 칸, 공장 앞에 놓인 정원 등을 모두 활용했다.
16일 만난 조 작가는 “이 공간은 격변의 세월을 지나오며 막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잊힌 공장의 공간성과 그에 관한 기억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의 실마리는 이춘기(1906~1991)라는 인물을 찾으면서 풀렸다.
춘포면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춘포에서 살았다. 이춘기는 춘포교회를 앞에 모인 지역민들의 초상화 ‘&memoir’(2022년)에 등장한다.
조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돼있는 이춘기의 30여년 치 일기 중 일부를 스캔해 삼각기둥에 붙였다. ‘&diary’(2022년) 속 글과 낙서 같은 그림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양육과 노동의 고단함,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겼다.
이춘기라는 무명인의 예술은 동시대 시인의 시로 이어진다.
조 작가는 “그렇게 예술적인 몸부림을 치며 도달하고자 했던 분”으로 김용택 시인(74)을 떠올리고 올해 1월 연락을 취했다. 시인의 허락 하에 작가는 미발표 시집 2권 중 28 작품을 10월부터 메인 전시장과 정원에 선보였다.
특이한 점은 투명 아크릴 판에 새겨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지금 시대의 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그런 시”라고 말했다.
시는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시분(詩盆)’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그릇 바닥에 시가 쓰여 있어 낙엽, 꽃잎이 떠다니는 빗물 사이로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김 시인은 “여린 시들이 자연에 묻히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시 옆 잎 하나, 꽃 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다. 역시 예술은 죽어있는 것들을 살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전용 전시장이 아니기에 작품과 공간을 관리하는 것도 조 작가 몫이다. 개인전은 내년 4월 22일에 끝나는 장기 전시다.
작가는 “1년간 정원사처럼 전시장 내·외부 작품과 공간을 수시로 손본다. 버려진 창고와 화장실, 돌멩이 하나까지 다 예술로 살아나는 이 공간의 장소성과 시간성을 느끼는 실험적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올 때는 이곳의 개망초와 풀, 나무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궁금하다”고 말한다.
작품 중 약 30점은 전북 완주시 오스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춘포도정공장 전시 입장료는 5000~1만 원.
익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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