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김재영]연 수만 % 악질 사채… ‘단속·엄벌’ 엄포만으론 못 잡는다

김재영 논설위원

입력 2023-12-05 23:45 수정 2023-12-0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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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울리는 불법 사금융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신음하는 취약계층을 노린 불법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가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달 30일 국세청은 살인적인 고금리와 협박, 폭력을 동원한 추심으로 민생을 위협하는 불법 사금융업자 163명을 1차 표적으로 삼아 전국 동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9일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에 대해 ‘노예화’ ‘인질화’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자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이 총동원돼 불법 사금융 뿌리 뽑기에 나선 것이다. 서민을 착취하는 악질 범죄에 적극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론 불법 사금융이 기생하는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단속과 엄벌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수만 % 고금리에 악질 추심… 잔혹해진 불법 사채

최근 국세청이 조사에 착수한 사례를 보면 불법 사채업자들의 수법은 갈수록 잔혹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불법 사채업자 A 씨는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취업준비생이나 사회초년생을 상대로 ‘연 2000∼2만8000%’에 달하는 이율로 돈을 빌려줬다. 처음엔 수십만 원에서 시작하지만 돈을 제때 못 갚으면 이자가 원금으로 바뀌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채업자 B 씨는 연 이자율 5000%에 시간당 연체료까지 붙였다. 7일 만기로 15만 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채무자의 빚은 한 달 만에 5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입금이 늦어지면 악랄한 추심이 시작됐다. 채무자의 얼굴에 타인의 나체를 합성한 전단을 가족과 지인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채무자 사진을 수배자 전단처럼 만들어 협박하거나 채무자의 신생아 사진을 보내며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결국 한 채무자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다.

온라인 대출중개사이트는 불법 사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온라인 플랫폼에 급전 문의를 하면 미등록 불법대부업체들의 연락이 이어진다. 이들은 광고에 태극마크를 달고 ‘정부지원’ ‘햇살론’ 등의 문구를 붙여 정책금융상품으로 오인하도록 하는 수법도 쓴다. 이른바 ‘휴대폰깡’으로 불리는 내구제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도 성행하고 있다.

불법 사금융 피해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불법사금융 피해상담·신고건수는 2019년 5468건에서 2022년 1만913건으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6784건으로 2019년의 연간 건수를 넘어섰다. 역대 정부마다 강력한 처벌과 단속에 나서지만 효과는 잠시뿐이다. 지난해 8월에도 윤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 척결을 지시하고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지만, 1년 3개월 만에 다시 강도 높은 발언을 해야 할 정도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최고금리 높여야” vs “지금도 높다”

전문가들은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저신용자와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불법 사금융으로 향한 저신용자는 최대 7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불법 사금융 이용자의 77.7%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급전을 구할 방법이 없어 빌렸다고 답했다.

최근 들어 서민들의 대출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의 대출이 깐깐해져 고신용자들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고,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을 이용하던 중·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는 대출 문을 닫아 버린 상태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묶인 상황에서 기준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자금조달 금리가 높아지고, 연체율 상승으로 대손비용이 증가하자 대출을 급격하게 줄이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주요 69개 대부업체가 올해 9월 한 달간 신규 취급한 대출액은 834억 원으로, 지난해 1월에 비해 78% 감소했다.

이에 따라 대부업체들의 금융 공급이 막히지 않도록 법정 최고금리를 인상하거나 시장과 연계해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는 2018년 2월 27.9%에서 24%로 인하됐고, 2021년 7월부터는 20%가 적용되고 있다. 4일 국회입법조사처는 “대부업체의 과도한 이자수취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도입된 법정 최고금리 규제가 금리 인상기에 역설적으로 취약계층 금융소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법정 최고금리를 법령에서 직접 명시하는 것보다 금리변동에 따른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연동형 최고금리 제도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연동형 최고금리 제도는 프랑스 등 선진국 주요 국가에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대출상품의 종류와 금액에 따라 12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중앙은행이 분기별로 공시하는 그룹별 시장 평균금리의 1.33배를 최고금리로 정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연동형 최고금리제를 도입할 경우 올해 6월 기준 법정 최고금리는 목표이익률을 고려해 최소 24.6% 이상은 돼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법정 최고금리가 올라갈 경우 서민들의 금융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법정 최고금리 수준에서 대출을 받고 있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차주의 대출금리가 연쇄적으로 인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동형 최고금리 규제를 도입할 경우에는 최고금리 상한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워 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는 현재 금리 수준도 높아 서민들에게 부담이 크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회에는 법정 최고금리를 10% 초반대까지 인하하는 법안도 다수 발의돼 있는 상태다.

● 정책금융 등 통한 제도권 신용공급 확충도 필요

최고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면 정책금융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저신용자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금융당국도 최고금리 인상보다는 정책금융을 통한 기존 제도 보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이 올해 3월 출시된 ‘소액생계비 대출’이다. 신용평점 하위 20%이면서 연소득 3500만 원 이하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최대 100만 원을 연 15.9%로 직접 대출해 주는 상품이다. 대출 상담 예약 첫날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최저 신용자에게 한 번에 최대 500만 원을 빌려주는 최저 신용자 특례보증도 매달 초 ‘오픈런’이 이어지며 한도가 소진되고 있다. 문제는 정책 대출은 정부 예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차주가 3개월 이상 연체를 하는 등 부실이 발생해 정부가 대신 갚아준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이 상생 금융 차원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도입된 ‘서민금융 우수 대부업자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할 만하다. 저신용자 신용대출 실적이 70% 이상인 경우 등 일정 요건을 만족하는 ‘우수 대부업자’에게 은행에서 적절한 금리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조달금리가 낮아지면 수익성이 높아져 그만큼 대출 여력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평판 리스크를 우려한 시중은행들이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주길 꺼리고 있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은행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 등을 통해 대출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불법 사금융의 유통 경로인 온라인 대부중개 사이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또 이번 기회에 금융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자금 공급의 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적절한 금리 수준과 결정 방식에 대해 사회 전체적으로 충분히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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