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해외공장 국내 유턴 ‘리쇼어링’ 열풍… 지속적 효과 보려면

정리=김성모 기자 , 신호정 고려대 경영대 교수 hojung_

입력 2020-09-16 03:00 수정 202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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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손재주’ 활용, 제조업 다각화 기회로

최근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던 각국 정부가 해외 생산 공장을 다시 국내로 이전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공급사슬 단절 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자국을 중심으로 기업 생태계를 재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국가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리쇼어링이 화두로 떠오르며 정부와 각 지자체가 리쇼어링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국내 제조업의 경영 및 투자 환경이 악화되면서 리쇼어링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역시 만만찮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한 기업을 다시 불러들일 수도 없는 현 상황에서 리쇼어링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산업 다각화하고 ‘히든 챔피언’ 늘려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리쇼어링은 장기적으로 국내의 제조업, 특히 경공업의 부활을 알리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산업 다각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대기업 중심의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조선업으로 집중돼 있는 등 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태다. 쉬운 예로 우리 제조업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수소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으나 국제 경쟁력을 가진 모터사이클이나 자전거도 생산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로 진화했다. LNG 선박 제조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도 정작 레저용 요트조차 제대로 알려진 브랜드가 없다. 다양성이 결여되고 ‘히든 챔피언’이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제조업의 현주소다.

다행히 국내 몇몇 기업들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대구 우산 클러스터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폐망의 길을 걸었다. 600개를 웃돌던 국내 제조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시장이 환골탈태했고 ‘두색하늘’ 같은 토종 우산 제조업체를 만들었다. 두색하늘은 주로 수입차 업체들 또는 패션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VIP 고객 증정용 제품이나 판촉물을 생산 판매하는데, 주문량이 늘면서 거의 독점 수준으로 판매를 늘려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관련 우산 제조, 판매 시장의 가능성을 인지한 스타트업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산 수제 기타를 만드는 지우드(Gwood), 자전거 수제 생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루키바이크(Rookey Bike)도 한민족이 지닌 손기술의 저력을 이어가는 기업들이다.

카메라, 모터사이클, 요트처럼 다품종 소량 생산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 영역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음을 독일과 대만의 기업들이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는 100조 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는 대기업 하나보다 매출 1조 원을 기록하는 중견기업 100개를 육성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다. 또한 산업 다각화를 통해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특정 산업의 경제력 집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 변동성과 경기 변동의 위험을 분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따라서 리쇼어링이 제조 산업의 다각화와 궤를 같이할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 중소기업들이 보여준 가능성

한때 신발 산업이 우리나라 경공업의 간판스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1974년 나이키는 부산에 소재한 ‘범표’ 삼화고무와 첫 계약을 맺는다. ‘에어 조던’ 신발이 출시될 무렵에는 리복도, 나이키도 일본을 거치지 않고 ‘말표’ 태화고무, ‘왕자표’ 국제화학(국제상사 전신), ‘기차표’ 동양고무(화승 전신) 등과 협업을 시작했다. 한국은 리복과 나이키 발주 물량의 80% 이상을 소화하는 거대 공룡이 됐다.

나이키와 리복은 1980년대 후반 원가 상승, 노동 이슈 등으로 한국을 떠났다가 품질 문제에 직면하면서 다시 한국에 역외생산을 위탁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한국의 신발 제조 기술과 나이키 브랜드의 공생 관계는 태광실업과 창신Inc 같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태광과 창신은 나이키의 신발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세계 4대 주요 기업이다. 나이키의 매출이 급신장하고 고가의 신발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태광과 창신의 국내 활동도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2014년 설립된 미국 친환경 슈즈 브랜드 ‘올버드’도 부산의 노바인터내쇼널에 생산을 전량 위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CEO 운동화’로 불리는 올버드는 양모와 캐스터 기름 같은 친환경적인 천연 소재에서 극세사를 추출해 신발을 제조하려는 비전을 세웠다. 하지만 처음 함께 개발을 시도했던 이탈리아 ODM 기업은 18개월이 넘도록 시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를 수개월 만에 완성한 노바인터내쇼널은 한국 신발 제조업의 기술 수준과 위상을 뽐내는 주역이라 할 만하다.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들의 재등장과 재성장은 거의 사장될 뻔한 산업의 부활이자 실질적인 리쇼어링이며, 정부가 그리도 바라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구조의 건전성 제고에도 장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해외에서 이미 연착륙한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만이 리쇼어링은 아니다. 오늘내일 해외로 진출하려는 제조 기업들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국내 생산 기지 증설을 독려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광의의 리쇼어링으로 이해해야 한다. 부산 사상공단의 성장을 이뤄낸 부산시의 정책을 벤치마크하는 중앙정부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대 교수 hojung_shin@korea.ac.kr

정리=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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