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도는 기업금융 시장… “대기업도 회사채 만기 겨우 막아”

김자현 기자 , 김도형 기자 , 이새샘 기자

입력 2020-03-25 03:00:00 수정 2020-03-25 05: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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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기업들 돈줄 막혀 전전긍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업금융 시장 등에서 자금 융통이 막히는 신용 경색이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이 팔리지 않아 대기업마저 자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글로벌 증시 폭락이 계속되며 증권사들까지 단기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신용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기업금융 시장에 돈이 안 돈다

24일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10대 그룹 계열사 2곳에 1000억 원 안팎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간신히 막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기업금융 시장이 꽉 막혀 우량기업들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돈맥’이 끊기다시피 한 건 회사채가 돌지 않기 때문. 기업들은 채권이 만기도래하면 그 금액만큼 새로 채권을 발행하는 식으로 전체 회사채 물량을 조절한다. 지금은 기관과 개인투자자를 막론하고 채권을 기피하고 있어 차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타를 맞은 항공사는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갚아야 하는 차입금은 각각 4조3542억 원, 1조1700억 원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이 중 4950억 원이 회사채인데, 절반가량인 2400억 원은 다음 달 만기가 다가온다. 최근 직원들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하기 힘들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발전시장 침체와 탈원전 정책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대규모 희망퇴직 및 휴업을 검토하고 있는 두산중공업 역시 시장에서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다음 달 27일 외화공모사채 5억 달러(약 6280억 원), 5월 초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4000억 원이 돌아온다.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24일 이 회사 노동조합이 직접 호소문을 내고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산업과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도록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대통령과 정부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했다.

최근 신용등급이 AA등급인 우량기업들마저 회사채 투자 수요 확보에 실패하는 등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규 회사채 발행을 망설이거나, 만기가 다가와도 자금 조달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다음 달 초 1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워낙 시장이 경색돼 있어 쉽게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에서 돈이 돌지 않자 은행권 대출을 받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24일 주요 시중은행 5곳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이달 20일 기준 78조6732억 원으로 2월 말보다 1조7819억 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회사채 등 자금시장 경색 조짐이 보이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이전에 열어놓았던 한도대출에서 실제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으로 치면 마이너스통장을 쓴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사채 등 여타 자금시장의 상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출을 늘리는 기업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 증권사들 중심 ‘연쇄 신용경색’ 우려

靑 2차 비상경제회의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제2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기업과 금융시장에 당초 계획보다 2배 많은 100조 원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는 단기자금 경색 움직임이 시장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조 원대 자기자본을 가진 대형 증권사들마저 일시자금난으로 ‘흑자 도산’하게 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연쇄 신용위험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수십조 원대의 해외 주가연계증권(ELS)을 발행해온 증권사들이 헤지(위험 회피)를 위해 사들인 파생상품에서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이 발생하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당장 현금이 필요해진 증권사들이 기업어음(CP) 등 단기채권을 시장에 대거 내놓으며 유동성 마련에 나섰지만,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리스크가 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시장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증권사들의 유동성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정 기업이 파산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위기의 프레임이 달라지게 된다”며 “한 업종에서 시작된 파산이 시장 전반의 실업 문제는 물론이고 계열사, 납품업체 등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단기자금 시장의 경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김도형·이새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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