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가짜 세상’에 사는 사람들 [홍은심 기자의 낯선 바람]
동아일보
입력 2019-12-11 03:00 수정 2019-12-11 03:00
리플리 증후군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았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자신을 날조했다.”
30대 한인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에 오르며 ‘한인 신화’로 불렸던 미나 장. 그의 오랜 친구가 그의 과거 이력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한 말이다.
미나 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부 분쟁안정국(CSO) 부차관보 자리를 꿰차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학력·경력 위조 논란이 불거지면서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이 꾸며낸 허구의 세계만을 믿는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기 때문에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죄책감도 없다.
3번의 이직을 하면서 임원 승진을 한 A 씨. 임원 제의를 받고 회사를 옮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화려한 인맥이 한몫을 했다. 평소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과와 인맥에 대해 자주 언급했는데 어느 날 그의 성과 대부분이 거짓이었다는 걸 동료들이 알게됐다.
그날도 그는 동료들을 모아놓고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자신이 만든 기획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또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자랑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회사 동료 중 하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어, 그거 제가 전에 아는 분 이야기라고 했던 얘기잖아요.”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기억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어느덧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 떠벌렸다. 그러다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해준 당사자에게까지 말하다 거짓이 들통나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리플리 증후군이 주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나 열등감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다가 스스로 진실처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점점 정도가 심해지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 작가 퍼트리셔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1955년에 쓴 ‘재능 있는 리플리 씨’라는 범죄 심리소설에서 따온 말이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재벌 아들인 친구를 죽이고 죽은 친구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해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간다. 리플리는 자신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여러 차례 살인을 하고 화려한 결혼까지 한다.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가벼운 행동과 거짓말을 하지만 계속될수록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급기야 자신이 만든 환상이 진짜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완전무결한 환상적인 대상이 있다. 흠모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만을 동경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만 흉내 내기에 집착하면 미성숙한 부분은 그대로 남게 된다. 이런 거짓된 모습은 학력 위조, 스펙 위조 같은 사회적인 문제로도 나타난다.
리플리 증후군은 성공지향적인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하지만 열등감과 자신의 한계에 절망해서 ‘이건 내 삶이 아니다’라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부, 권력, 명예만을 좇아가는 물질만능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도 문제다.
화려하고 성공한 사람만을 조명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관계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정찬승 마음드림 원장(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았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자신을 날조했다.”
30대 한인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에 오르며 ‘한인 신화’로 불렸던 미나 장. 그의 오랜 친구가 그의 과거 이력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한 말이다.
미나 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부 분쟁안정국(CSO) 부차관보 자리를 꿰차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학력·경력 위조 논란이 불거지면서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이 꾸며낸 허구의 세계만을 믿는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기 때문에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죄책감도 없다.
3번의 이직을 하면서 임원 승진을 한 A 씨. 임원 제의를 받고 회사를 옮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화려한 인맥이 한몫을 했다. 평소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과와 인맥에 대해 자주 언급했는데 어느 날 그의 성과 대부분이 거짓이었다는 걸 동료들이 알게됐다.
그날도 그는 동료들을 모아놓고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자신이 만든 기획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또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자랑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회사 동료 중 하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어, 그거 제가 전에 아는 분 이야기라고 했던 얘기잖아요.”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기억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어느덧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 떠벌렸다. 그러다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해준 당사자에게까지 말하다 거짓이 들통나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리플리 증후군이 주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나 열등감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다가 스스로 진실처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점점 정도가 심해지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 작가 퍼트리셔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1955년에 쓴 ‘재능 있는 리플리 씨’라는 범죄 심리소설에서 따온 말이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재벌 아들인 친구를 죽이고 죽은 친구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해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간다. 리플리는 자신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여러 차례 살인을 하고 화려한 결혼까지 한다.
리플리 증후군은 지극히 자기 자신의 이득이나 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속인다. 자기만족을 위해 선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가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또 다른 거짓말을 하거나 심지어는 절도와 사기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 외모지상주의-물질만능주의가 만든 ‘현대인의 病’ ▼
사실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드물지 않다. 이런 거짓말이나 허언이 습관적으로 심각해질 때 ‘병적 거짓말’이라고 부른다.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가벼운 행동과 거짓말을 하지만 계속될수록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급기야 자신이 만든 환상이 진짜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완전무결한 환상적인 대상이 있다. 흠모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만을 동경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만 흉내 내기에 집착하면 미성숙한 부분은 그대로 남게 된다. 이런 거짓된 모습은 학력 위조, 스펙 위조 같은 사회적인 문제로도 나타난다.
리플리 증후군은 성공지향적인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하지만 열등감과 자신의 한계에 절망해서 ‘이건 내 삶이 아니다’라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부, 권력, 명예만을 좇아가는 물질만능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도 문제다.
화려하고 성공한 사람만을 조명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관계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정찬승 마음드림 원장(정신건강의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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